2012년도 1학기 서울대학교 차익종 교수의 글쓰기 강의에서는 색다른 형식의 글쓰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저자를 직접 만나 책에 관해 묻고, 인터뷰 형식을 빌어 서평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인터뷰 서평'인데요. 책과 저자, 그리고 학생들의 생각까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되도록 편집 양식을 그대로 살려 게재했습니다. (편집자 주)
차익종 선생님의 깊은 배려로 다른 조는 모두 남녀학생을 골고루 섞어 짜였거늘, 어째선지 우리 1조만은 땀내나는 남정네만 3명이 뭉쳤으니, 이를 두고 머리를 번개같이 스쳐지나가는 그들의 또다른 이름. 그것은 바로 놈.놈.놈!
그렇다, 비록 남자끼리 뭉쳤으나 서로 다른 재주와 열정을 합쳐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낼 팀이니, 이것 또한 하늘의 안배이리라.
지금부터 긴장하시길, 최고의 놈들이 온다!
조용한 놈(?), 황은석!
식품생명공학과 08학번. 1조에서 유달리 조용한 남자. 하지만 조용한 가운데 해야 할 일은 어느 샌가 처리해놓는 놀라운 재주를 보인다. 선생님과의 교섭도 혼자 도맡아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말수는 적은 편이지만, 그 와중에도 신중하게 검토하다 내놓는 질문은 그야말로 핵심을 찌르고 있으니, 가히 1조의 주인공이라 봐도 좋을 ‘조용한 놈’!
까칠한 놈(?), 추경돈!
사회대 인류지리학과군 12학번. 셋 중에서는 가장 어리나 그만큼 열정과 패기로 넘쳐나는 인물. 무심한듯 시크하게 내뱉는 날카로운 질문공세가 전장을 지배한다. 셋 중 가장 역사에 흥미가 많고 사전 지식도 풍부해 다양한 관점의 질문을 던지며, 차갑고 도도한 도시...는 좀 애매하고 관악구 학생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1조의 공세 담당 ‘까칠한 놈’!
시끄러운 놈(?), 위효준!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06학번. 명색이 셋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데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사정으로 선생님과의 약속을 수정하게 만드는 등 민폐만 잔뜩 끼친 캐릭터. 게다가 말까지 많아서 시끄럽다......하지만 덕분에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1조의 애물단지 ‘시끄러운 놈’!
선생님과 만남
화창하다 못해 덥기까지 한 일요일 오후 2시 30분경, 삼총사... 아니 놈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한 놈의 활약(?) 덕분에 선생님과 잡았던 약속 일자가 변경되기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예정 시간인 3시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놈들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애초에 선정 도서가 바뀐 적도 있고, 조원도 바뀌는 등 자잘한 걸림돌이 많았는데, 최종 인터뷰 저자로 선택한 김기협 선생님이 ‘아~주 꼼~꼼한 분이라’ 무려 수업 담당 선생님인 차익종 선생님께‘내 책을 선정한 이유를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하셨다니, 저자 인터뷰 경험이 전혀 없는 놈들로서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
그래도 용기를 짜내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웃는 목소리로 곧 나오겠다고 하셨다. 머지않아 편한 복장으로 나오신 선생님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잘 웃으시고 유머감각도 갖추신 분이었다. 조용한 곳이 좋을 테니 선생님 댁에서 하자고 하시면서도, 집에 대접할 게 아무것도 없다며 쑥스럽게 웃는 선생님께서는 놈들이 준비해간 음료수를 바로 나눠주셨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김기협 선생님(이하 김기협) : 음, 어디 보자. 다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라고 했죠? 자기소개를 부탁할 수 있을까?
황은석(이하 황) : 예, 서울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08학번 황은석이라고 합니다.
추경돈(이하 추) : 사회대 인류지리학과군 12학번 추경돈입니다.
위효준(이하 위) : 저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6학번 위효준입니다.
김기협 : 오, 그래요. 황 군, 추 군, 위 군이네요. 어쩌다보니 셋 다 성이 독특해서 기억하기 쉽겠어요. 나는 흔한 성씨인 김 씨인데 말이죠. 아, 말을 놓아도 괜찮을까?
황, 추, 위 : 예, 물론입니다.
김기협 : 그래. 그럼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는 건가?
황은석 : 그 전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가 인터뷰 서평 작성을 위해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를 녹음하고 싶은데, 괜찮을지요?
김기협 : 아, 물론이지.
추경돈 :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말씀하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은데요.
김기협 : 어? 사진을 찍는 건가? 이것 참, 미리 말해줬으면 좀 잘 차려입었을 텐데.(웃음) 편할대로 해.
위 : 예, 그럼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저희가 오늘 드리고 싶은 질문도 많고, 듣고 싶은 말씀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책을 내민다)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일동 웃음)
김기협 : 어디보자... 사인할 만한 것이... (펜을 찾으신다) 위 군 이름이 뭐랬더라...?
위 : 예, 위효준입니다.
김기협 : 위... 효... 준...
위 : 감사합니다!
황 : 저도 사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책을 내밀며) 황은석입니다.
김기협 : 한 번 쓴 내용을 똑같이 쓰면 불편하겠지?
황 : 아뇨! 괜찮습니다.
김기협 : (사인하신다)
황 : 감사합니다!
시끄러운 놈의 적절한 개입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 조금이나마 편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놈들. 그러나 선생님과 펼치는 진검승부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엘리트 계층과 책임 의식
황 : 우선 저희가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특히 책 뒤표지에도 적혀 있듯이, ‘남북 분단상을 비롯해 100년 전의 충격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직도 현대 사회에 많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요, 혹시 다른 문제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예를 들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김기협 : 그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문제는 대한민국의 엘리트 계층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겠지. 엘리트란 본래 똑똑하기만 한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재력이나 정보력 등을 상대적으로 많이 갖춘 계층이야.
그런데 그런 상대적인 우위를 지닌 계층이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 질서의 지속을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는 법 아니겠어? 반대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계층이라면 세상이 확 뒤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하겠지? 하지만 우월한 위치를 누리는 계층이라면 그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할 동기가 더 강하겠지? 그래서 인류 역사 어느 시기를 보더라도 그 엘리트 계층의 역할이 중요했지.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그런 엘리트 의식이 참 부족한 것 같아. 예를 들어 4대 강 사업을 볼까? 그 사업이 과연 이 한국이라는 시스템에 어떠한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일까? 그에 관해 충분한 철학적 검토가 되지 않은 채로 강행되고 있잖아? 그 외에도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소행이라고 동네방네 떠벌리는 것만 봐도 이 나라의 엘리트 계층에게 안보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거지. 이러한 문제를 보자면 우리나라 엘리트 계층들은 사회 질서의 지속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할 수 있어.
한국의 역사에서 이러한 것과 가장 비슷한 예를 찾아보자면, 13~14세기에 걸친 몽고 지배기를 들 수 있겠어. 이 시기의 100년 동안 사회 경제적 조건은 발전하고 변화했지만, 그에 걸맞은 충분한 대응이 일어나지 못했어. 분명 다들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으니, 왕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시도하지. 그렇지만 정작 개혁 세력이 그 잘못된 시스템의 혜택을 보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 결과는 특권 세력의 교체만으로 끝나 버렸지.
일제시대를 봐도 나라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관해 조선인들에겐 발언권이 없어서, 일본인들이 발언을 하게 되는데, 정작 당사자였던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되건 말건 그저 일본인들에게 맡겨놓고만 있었지. 그러던 버릇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은 미국이 책임지고 있으니까 그 한도 내에서 우리는 뭘 해도 상관없다는 의식이 한국 엘리트 계층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거지.
결국 예나 지금이나 엘리트 의식과 노력의 부족은 식민지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있어. 물론 ‘반식민지 논쟁’도 있긴 하지만, 내가 볼 때 적어도 의식면에서는 반식민지가 아니라 완전식민지 상태인 것 같아. 아직까지도 식민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거지.
위 : 저희가 오늘 인터뷰를 하기 위해, 블로그 등지에서 다른 독자들의 감상문을 조사해봤는데, 많은 독자들이 ‘아직도 식민지 상태’라는 표현에 강한 공감을 표했습니다.
김기협 : 오, 그래? 많이 준비했구먼.
위 : 예, 도중에 선생님께서 직접 댓글을 다신 감상문도 있어서 당황했지만요.(웃음)
김기협 : 하하, 그런 일이 있었지.
추 : 선생님께서 언급하셨다시피 한국 역사에서 한 왕조의 멸망은 엘리트 계층의 도덕적 부패와 그로 인한 사회질서의 붕괴가 항상 연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식민지 상황에서 일어난 엘리트 계층의 도덕성 상실이라고 한다면, 주변 국가가 강성할수록 그러한 문제점이 커지게 될 테고, 따라서 국가의 망조가 가속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원나라나 일본이 한창 강성할 때 고려나 조선의 망조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 전성기에 가장 부흥했던 신라나, 명·청나라의 전성기에 오히려 부흥했던 조선의 사례를 본다면 이는 인과적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인 것 같은데, 이에 관해 설명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김기협 :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나와 천하 체제에 대한 인식이 유사한 이병헌 씨가 며칠 전 프레시안에 글을 실었지. 그 글을 참고하면 좋을 듯한데,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보자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국제 관계란 것은 국가를 원자론적으로 인식하고서 생겨난 근대적인 발상이지. 반면 전근대적 천하 체제에서는, 국가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었어. 즉 식민지적인 종속과 자주 독립을 완전히 흑백논리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 유기적인 관계라는 것은 가이아 이론이나 불교 논리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하나의 보편적인 관계야. 다만 근대의 원자론적 관점이 너무 강력해지다보니 그러한 관점에 대한 이해가 조금 약해진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해.
이러한 유기적인 관점에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더욱 이해가 쉽겠지. 예를 들어 조선이 명나라를 계속하여 종주국으로 떠받들기는 했지만, 200여 년의 시간 동안 명나라 군대가 조선 땅에 들어온 적이 없었어. 오직 임진왜란 때 조선의 간절한 요청으로 파병했을 뿐이지. 그러다보니 명나라를 추종하는 세력이 조선 내에서 활개를 칠 수는 없었던 게지. 조선의 일은 조선인이 책임을 져야만 했던 것이고. 이런 점에서 망국의 과정에서 일어난 종속과는 차이점이 있어. 예를 들자면 고려 멸망기에 득세를 위해 원나라 조정에다가 고려의 왕을 폐하고 종속국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던 세력도 있었어. 또, 명-청 교체기에 김자점 같은 자는 청나라에 조선의 북벌의지를 일러바치기도 했어. 이러한 것이 바로 망국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종속이란 거지. 이에 비하자면 중국을 종주국으로 받들었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종속의 개념과는 달랐다는 것이야. 외형적으로 중국이 조선보다 한 단계 위에 위치한 국가이긴 하지만, 그들이 내부 문제까지 간섭할 수는 없었거든.
추 : 그렇다면 예를 들어, 미국 집권층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FTA협의를 졸속으로 처리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외세 의존적인 종속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김기협 : 물론이지. 사실 내 아저씨 중 한분이 외무부 관리를 하다가 은퇴하셨는데, 그분은 정말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야. 생활의 감각 하나까지도 미국인에 가까워. 이분이 10여 년 전에 네팔 대사로 계실 적에, 생수를 양칫물로 쓰시더라고. 네팔 대사로 있는 한국인이면서 네팔 수돗물이 못 미더워서 생수를 쓰겠다는 그 감각은 도무지 한국인답지가 않잖아. 내가 그때 참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외무부 관리라는 양반들 중엔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이 또 많더라고.
황 : 그러고 보니 저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요새 대학생들이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중시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김기협 : (깊은 숨을 내쉬며) 얘기 중에 미안한데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해도 괜찮겠지?
황, 추, 위 : 예, 물론 괜찮습니다.
황 : 계속 말씀드리자면, 그래서 가장 걱정했던 점은 지금 이 세대가 나이를 먹고 사회를 책임지게 될 수 있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상부 계층들의 도덕 강화와 의식 제고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기협 : 도덕성이 강한 사회라고 꼭 좋은 것은 아니지. 도덕성이 지나치게 강한 사회는 그만큼 전체주의 분위기에 빠지기가 쉽다는 우려가 있어. 일반인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당위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회는 편안한 사회라고 할 수가 없어.
『예기』에 나오는 대목이네만, ‘형벌은 대부에게까지 이르지 않고, 예법은 서인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어. 다시 말하자면 서인의 행동은 형벌로 통치하고, 엘리트 계층의 행동은 예법을 통해 통치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 중간 계층인 존재가 바로 사士지.
그런데 형벌의 경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비롯해, 그 폐단을 억제할 수단이 마련되어 있잖아? 즉 시행은 칼날같이 하되, 무리는 억제하는 장치를 갖춘 것이 형벌이었어. 반면에 적용 범위는 광범위하지만 적용 대상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예법이었지.
그런데 현 정부의 정책을 보고 있자면, 예법으로 움직여야만 할 사람들이 자꾸 형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만 들어. 요사이 통합진보당 사태만 보더라도, 증거가 있으면 가져오라는 식으로 형법을 적용해서 회피하려고만 들지.
다시 말하지만 형벌이란 것은 제도가 바뀜에 따라 쉽게 수정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해. 그러나 예법이란 것은 무슨 십계명처럼 기록된다고 해서 규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지. 결국 우리나라는 식민지 사회를 겪으면서 엘리트 계층의 도덕의식이 많이 무너져버렸고, 식민지 사회를 경험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해본다면 지금 상황이 많이 열악해진 게 사실이야.
그렇지만 사람 사는 사회란 것은 어떻게 돌아가도 복원력이 있게 마련이니까, 비록 남들이 부러워할 수준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까지는 복원력이 작용할 것이고, 이제 시민들의 정치의식 성향만 보더라도 그런 복원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봐. 국제 관계는 물론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만 있던 독재 사회와 비교해보자면 큰 진전이지. 독재자가 마음먹은 대로 행하더라도 그 길이 최선이라 믿고 자기 보신이나 하려들던 것이 그 시대였는데... 그러나 일단 독재 시대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각자 책임지려는 의식이 발전하기 시작한 걸로 보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정한 도덕을 갖춘 엘리트의 요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무작정 고리타분한 원칙이라고 회피하려기보다는,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왕조를 지탱할 수 있었던 기본 규범에서 가치를 찾아내야만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도덕 교육조차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버렸으니 큰일이다. 다시 한번 도덕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