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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부흥을 위해 국가가 앞서서 나선다고 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교육기관에서의 교과서 속 국악의 비율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실정이다. 2023년 4월에 나왔던 음악 교과서의 1차 시안에서 국악이 교과서 편찬 기준이 되는 ‘성취 기준’에서 빠지고 해설에만 들어가 있어 논란이 되었다.
거문고로 국악의 이면을 바라보다
처음 국악관현악 공연을 접했을 때의 일이었다. 거문고 전공자인 지인의 초대로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공연을 보러 갔는데,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다른 악기들과 달리 구석에서 박자에 맞추어 손을 움직이는 거문고 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들렸던 소리는 퍽, 퍽 하며 장작을 패는 소리와 같았다. 이후 친구의 연습실에서 거문고 독주를 들어보니 거문고는 손을 미세하게 흔들어 다양한 농현弄絃을 만들어내는, 깊은 소리를 내는 매력적인 악기였다. 그때 들었던 장작 패는 소리는 대모玳瑁, 거문고를 연주하는 도구인 술대가 닿는 부분를 때려 음을 강조하는 소리였다. 그때의 필자가 듣는 귀가 없었나 싶어 국악 작곡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후에도 여러 국악관현악 무대들을 감상하였지만, 항상 거문고는 손만 움직일 뿐, 다른 악기들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서양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는 대부분의 현악기들은 활로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이기 때문에, 관악기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으며 드러날 수 있다.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 비교적 소리가 작은 발현악기는 서양 오케스트라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다. 간혹 사용되는 하프, 클래식기타 등의 악기는 대부분 협연의 형식으로 진행되어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국악관현악의 핵심 현악기인 가야금, 거문고 등은 발현악기이기 때문에 서양 오케스트라 속 현악기들처럼 잘 드러나지 못한다. 이 악기들은 큰 소리를 내는 관악기와 타악기 사이에서 겨우 존재만 알리는 작은 신호를 드러낸다.
이런 거문고의 모습에서 국악 전공자인 필자, 나아가 사회에서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리 없이 아우성을 지르는 거문고처럼, 국악 또한 대중음악에 묻혀 일부 향유층 사이에서만 연주되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인 국악은 명색이 무색하게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지인들에게도 물어보면, 비전공자들 중 국악을 찾아서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악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악기인 가야금, 거문고, 피리 등도 사회에서는 그저 특수 악기로만 다루어지고, 심지어는 전통 국악기의 외형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지인들에게 거문고가 뭔지 아냐고 물어봐도 잘 몰라 웃으면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이제부터 살아갈 인생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라도 변화는 필요하다. 아니, 변화해야만 한다. ‘국가의 음악’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지만 대중에게 잊혀지는 국악의 현실이 이제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국악이 놓인 현실의 문제점들
국민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는 절반 수준이고, 전통문화를 보다 더 향유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관심, 흥미가 없어서라는 대답이 21.4%, 관련 정보가 부족해서라는 응답이 17.4%로 뒤를 이었다.1 관련된 정보가 부족해서 전통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국악 교육은 더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악의 부흥을 위해 국가가 앞서서 나선다고 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교육기관에서의 교과서 속 국악의 비율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실정이다. 2023년 4월에 나왔던 음악 교과서의 1차 시안에서 국악이 교과서 편찬 기준이 되는 ‘성취 기준’에서 빠지고 해설에만 들어가 있어 논란이 되었다.2 또한 7차 교육과정 개정에서 교과서 속 국악과 서양음악의 비율을 처음보다 대폭 확대된 4:6으로 하자는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하지만 국악은 한국의 음악으로, 우리 국민이 향유하고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훨씬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 시대에 자문화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려면 국악교육의 중요성이 더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문화의 주인인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 문화를 잘 알아야, 더욱 소속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 문화 발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교과서 속 국악의 비율이 최소한 서양음악과 동등하게, 혹은 그 이상은 차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아이뉴스 24, 〈최근 20대, 한복·전통문화에 큰 관심없는 이유는〉, 2021.9.21.,https://www.inews24.com/view/1405939, 2023.12.22.
2 뉴스핌, 〈2022 교육과정 음악 교과 공청회, 결국 온라인으로… “비중 이견 못 좁혔다”〉,2021.9.21.,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21006001303, 2022.12.22.
‘음악’이라는 큰 분류 안에서 서양음악과 국악을 함께 교육하는 것이 아닌, ‘국악’이라는 분리된 과목을 신설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음악 교과 자체의 시수가 너무 적어 교과서 속 국악의 비율을 늘린다 한들, 실질적으로 교과서 속 내용들을 다 다루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국악 교육에 필요한 시간을 늘리고, 음악교과서에서의 비중이 더 늘어나는 등 공교육에서 국악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도록 변화하여야 한다.
어릴 때 부르던 아리랑이나 전래동화의 멜로디, 힘겹게 연습하던 단소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한다. 어려서 배운 것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어렴풋하게라도 기억으로 남는다.
그들만의 음악이 아닌, 모두가 즐기는 음악으로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온 음악인만큼, 일부 전공자들은 국악의 변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전통과 새로움의 적절한 혼합이 이상적인데, 이상적인 수준의 균형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화를 통해 전통을 지나치게 해하며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고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통에 갇혀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국악이 음악 박물관과 서재들에만 기록되어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것으로 남을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사랑에 빠져 청춘을 바친 전공인 만큼, 국악이 대중들한테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관심받는 음악이 되었으면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오랜 시간을 거쳐 전래되며, 여러 수난을 겪어오며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국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 방향으로의 노력과 발전이 이루어지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불리는 음악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