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제발 살려주세요!” 2013년 어느 겨울날 서울의 한 아파트 앞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외쳤다. 사형선고를 받은 존재는 그 아파트 지하실에 사는 길고양이들이었다. 한 해 전에 이 아파트 지하실은 “고양이들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 반년 만에 문이 열린 그 곳에서는 바짝 말라 버린 수십 구의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었다. 당시 동물보호단체와 일부 주민들의 목소리에 고양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만들어졌지만 얼마 전 겨울철 동파 방지라는 이유로 그 작은 생존 통로조차 막혀버렸다. 사람들은 이 날 고양이 생매장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건이 특별히 세상에 드러났을 뿐, 보기 싫다는 이유로 길고양이가 죽음을 당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길고양이를 죽여 달라는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아끼는 사람들 간에 갈등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완벽한 합의점은 없지만 양쪽 다 고개를 끄덕일 법한 합의점으로 ‘개체수 조절’이 있다. 더 이상 수를 늘리지 말고 지금 이 정도는 같이 살아보자는 것이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개체 수가 늘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길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도 같은 의견이다. 도시 환경은 본래부터 고양이가 먹을 것이 부족한 법인데, 입이 늘어나면 굶주리는 고양이가 늘기 때문이다. 결국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은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나, 고양이의 생존권 보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핵심적인 과정이다.
그동안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다. 그 중 유일하게 효과가 검증된 것은 TNR, 즉 고양이를 포획하고Trap 중성화시켜Neuter 원래 살던 곳에 방사하는Return 방식이다. TNR은 외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사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와 일부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다. 2007년부터 용산구 한강맨션에서 TNR을 시행한 결과, 80~90마리에 이르던 길고양이가 2013년에는 50~60마리까지 줄어들어 약 35%의 감소율을 보였다. TNR은 길고양이의 개체 수 조절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길고양이의 최소한의 생존권까지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TNR이 윤리적인 방법은 아니다. 길고양이를 사람 마음대로 중성화시키는 것은 분명히 생명 윤리와 다음 세대를 이어나갈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도 인간과 길고양이의 공존을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답이다. 길은 길고양이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TNR은 그런 길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가득 채워가고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이기적인 배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타협의 선이다.
중성화이고 뭐고 싹 다 잡아 죽이라는 민원이 많다고 한다. 꼭 죽여야만 하는 걸까? 그들은 꼭 죽어야만 하는 걸까? 2013년 봄에 동물보호법이 공포되었다. 보기 싫다고 죽여도 될 만큼 의미 없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지는 않는다. 동물보호법의 목적에는 동물의 생명 존중 등 ‘국민의 정서를 함양’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은 동물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분명 의미가 있다. ‘국민의 정서 함양을 위해 동물을 보호하자’는 법에 길고양이는 죽여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하여 포획장소에 방사하는 등의 조치 대상이거나 조치가 된 고양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