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오늘도 삼겹살을 먹는다. 문득 이 돼지들을 키우는 농장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꿀꿀. 새끼 돼지들이 어미와 함께 한 공간에서 평화롭게 자라는 모습이 그려진다. 과연 이 낭만적인 그림이 현재 우리의 돼지농장 모습이 맞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 그림처럼 낭만적으로 ‘되어야 하는’ 현실에 있다. 현실의 돼지는 철제 칸막이인 ‘스톨(stall)’에서 한 마리씩 감금 사육된다. 스톨은 폭 60cm, 길이 210cm의 크기로 돼지가 제 몸 하나 옆으로 돌려 누울 수도 없게 ‘꼭’ 맞는 돼지 맞춤형틀이라 할 수 있다.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스톨 사용을 당장 중단하고 방목형 사육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스톨은 대량생산을 위한 도구이지만, 돼지의 기본적인 생활조차 억제하여 돼지가 스트레스를 받고 쉽게 질병에 걸리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더 많은 항생제를 돼지에게 투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방목 사육을 하면 최대한 돼지의 습성대로 움직이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돼지의 면역력이 좋아지고 생산성을 위한 인위적인 의약품의 투여도 줄일 수 있다. 그 결과 돼지는 돼지대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소비자는 더 질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런 인식에 따라 세계적으로 항생제 투여 금지, 스톨사육 금지 등의 동물복지 관련법들이 만들어지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사육체계의 변화를 마냥 늦출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장 ‘낭만 방목형’ 사육으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땅이 좁고, 1년간 1인당 돼지고기를 19.5kg(2010년 기준) 소비할 정도로 수요가 많다. 현재의 돼지고기 공급은 스톨사육을 통해 효율적이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방목 사육으로 바꾸려면 농장 설계부터 쉽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게 된다. 그리고 공장식 사육으로 가능했던 대량 공급이 어려워져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고 수입도 증가할 것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육질로 공급량을 맞추기가 어려우니 공급자인 농장주와 소비자 모두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돼지를 관리하는 일도 문제가 있다. 분만을 위한 스톨은 갓 태어난 새끼가 어미에게 깔려 죽는 일을 막을 수 있으나 방목형은 이 문제에 대한 손쉬운 대책이 없다. 또한, 무리지어 돼지를 키우면 자기들끼리 서열경쟁을 하게 되어 다치거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급작스런 사육체계의 큰 변화는 돼지와 돼지고기 산업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국내 실정과 돼지 사육 현황을 고려하여, 사육 방식을 바꾸는 것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톨을 조금 넓혀 두세 마리의 돼지를 같이 사육할 수도 있고, 농장 자체의 구조를 바꿔 관리체계를 고칠 수도 있다. 한동안은 스톨 사육을 인정하되 점차 방목형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나간다면 머지않아 스톨이 사라진 미래가 올 수 있을 것이다. 농장주와 관련 사람들의 많은 연구와 지원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더해진다면 돼지의 생활, 나아가 우리나라 가축의 생활에 평화와 낭만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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