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2002년, 도쿄의 지요다(千代田)구에서 길거리 흡연을 하던 행인의 담뱃불 때문에 한 어린아이가 실명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일본 전역으로 퍼져 일본 전 국민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덩달아 흡연자에 대한 비난도 거세졌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자는 여론이 급물살을 탔고, 길거리 흡연자에게 2만 엔(약 30만 원)의 벌금을 처음 부과한 이후 순차적으로 도쿄 전역의 거리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길거리 흡연 금지와 더불어 일본의 거리를 담배 연기에서 해방시켜 준 것은 바로 흡연구역의 설치였다. 지금도 일본의 많은 거리와 건물에서 흡연구역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흡연 관련 정책은 어떻게 시행되고 있을까. ‘국민건강증진법’은 제9조인 ‘금연을 위한 조치’를 통해 금연시설 및 금연구역의 기준만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금연구역은 날로 확대되어 관공서, 병원, 도서관은 물론 45평 이상의 식당, 호프집, 커피전문점 등에서도 점진적으로 흡연이 금지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 몇몇 지자체는 버스정류장에서 10m 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흡연자들은 갈 곳을 잃고 길거리로 나왔지만, 그마저도 길거리 흡연 금지안이 확대되고 있어, 흡연자들이 맘 놓고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또한, 과거와 달리, 혐연권을 주장하는 비흡연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흡연권과 혐연권의 평등성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혐연권이 흡연권에 대해서 상위에 있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혐연권이 아무리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 하더라도 흡연권이 박탈되는, 즉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흡연자를 배려하지 않는 정책은 위헌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흡연권과 혐연권을 모두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흡연구역의 설치이다. 특정 지점을 흡연구역으로 지정하거나, 혹은 나아가 흡연실을 설치함으로써, 흡연자와 비흡연자는 서로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재 흡연구역을 설치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비용의 문제다. 금연구역 지정에는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드는 비용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금연구역에 붙일 스티커 값 정도다. 반면에 흡연구역은 설치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 우선 많은 홍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금연구역을 피해 흡연할 곳을 찾아다니기에만 급급하고, 아직까지 흡연구역에는 낯선 흡연자들을 흡연구역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으며, 또한, 단순히 흡연구역 지정이 아닌 흡연실을 설치해도 설치비용뿐만 아니라 지속적 관리를 위한 유지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 하지만 이러한 비용만을 고려하여 정책 시행을 주저한다는 것은 단순한 근시안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비용들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흡연으로 발생하는 각종 사회경제적 비용이 흡연구역 설치 및 유지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며,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흡연자와 비흡연자 양측 모두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흡연구역의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비흡연자들의 찡그린 표정과 담배 연기만이 자욱했던 도쿄의 거리는 흡연구역 설치로 180도 바뀌게 되었다. 더 이상 금연구역 지정이라는 방법에만 얽매이지 말고, 우리도 이제는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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