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실험실 2
(…)
문이 아예 열려있는 랩실들이 있어서 걷다가 들어가 보니 사람은 없고 심해생물을 가둬놓는 탱크들을 열어서 도망치게 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유금이가 어질러진 랩 안을 흘긋 보고는 말했다.
“다 내보내고 갔네요.”
뒤따라 들어온 이지현이 신기하다는 듯이 비어있는 탱크 같은 걸 2초 정도 보다가 빠르게 랩실을 나가며 말했다.
“탈출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이런 게 연구원들은 생각이 나요?”
유금이가 걸으면서 이지현의 질문에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안 그러고 여길 나가면 평생 생각나겠죠.”
“물고기인데요?”
“물고기든 해파리든, 산호든 뭐든요. 실험에 굳이 해양생물을 이용하지 않고 연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제일 좋아요. 조직배양이나 모의실험 같은 걸로 대체할 수 없다면 최대한 기존의 실험 기록을 통계적으로 사용하거나 최대한 인도적으로 해양생물들을 다루어야 하죠. 그건 연구원들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윤리성이에요.”
“영혼이 없잖아요.”
“예?”
“걔네는 영혼이 없잖아요.”
유금이가 걷다가 그 말에 당황해서 멈춰 섰다. 유금이의 뒤에서 다리의 고통 때문에 더 천천히 걸어오던 김가영이 멈춘 유금이의 등을 두 손으로 밀자, 유금이가 그 손에 밀려 걸어가면서 조용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 내가 들은 개소리들의 대부분이 반은 종교나 권력을 끼고 있던데. 내가 등에 메고 있던 묵직한 가방을 의식하면서 물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비록 제 의견은 아니지만요.”
이지현이 약간 불편하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3층 건물 복도 중 ‘ㅁ’의 구조의 한쪽 복도를 다 걸어가자, 유금이가 찬찬히 이지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19세기 이전 지식인들은 동물들에게서 동정심을 느끼는 사람들을 비웃었죠. 동물은 외부 자극에 의해서 그대로 반응을 내뱉는 거라 생각했어요. 핸드폰 알람처럼 소리 나는 기계로 동물을 취급했죠. 개나 고양이를 때려죽여도 아무 죄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여성과 아프리카인, 아시아인도 동일하게 동물로 취급됐죠. 고통을 느끼는 존재들은 모두 평등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해요.”
유금이가 열려있는 랩실들을 보면서 계속 말했다.
“……사실 영혼은 제가 없을 수도 있죠. 내 손에 죄 없이 죽어간 해양생물들 수를 정확히 세지도 못하니까.”
―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문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