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협俠’은 ‘사람’ 인人과 ‘겨드랑이에 낄’ 협夾자가 더해진 글자다. 그것은 그 모양만으로도 약한 사람을 끼고 도는 행위이자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협’은 약자를 위한 정의로운 일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거는, ‘초월’과 ‘영원 지향’의 정신이라고 할 만하다. 사마천은 『사기』의 「유협열전」 편에서 유협의 정신을,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남의 위급에 뛰어들 때는 생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협’의 정신은 독재정부 타도와 혁명을 꿈꾸었던 1980년대 운동 세대들의 정신구조와도 닮아 있다. 미국문화원과 민정당사 점거 등 이른바 선도투쟁을 했던 학생들의 영웅적 행위는 불의한 위정자들에 맞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일종의 ‘협’의 실현이었다.
― 천정환, 『대한민국 독서사』, 서해문집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