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 임신 때 한영진의 시모는 노산, 노산을 입버릇처럼 말하며 한영진의 몸 상태를 아쉬워하고 아이의 상태를 염려하더니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병원으로 찾아와 울었다. 시부와 김원상, 유리창 너머로 신생아를 품에 안아 가족에게 보여주고 있는 간호사 모두를 의식하는 것 같은 동작으로 눈물을 닦고 유리창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아가, 아가, 하고 불렀다. 삼십여시간의 산통과 수술 후유증으로 휠체어에 앉은 한영진의 눈에는 시모의 그런 행동이 기묘해 보일 뿐이었다. 왜 울어? 저 아이를 언제 봤다고 저렇게 반겨? 그 시기에 한영진은 매순간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병실을 같이 쓰는 다른 산모나 그의 보호자, 간호사, 의사, 김원상, 시부, 시모, 눈치를 보듯 병실을 다녀간 친정 식구 모두에게 적의를 품었다. 아래 속옷도 없이 씻지도 못한 채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는 몸을 다만 씻고 싶을 뿐이었다. 새벽에 간호사가 혼곤히 잠든 한영진을 깨워 수유실로 들여보낸 뒤 가슴에 아기를 안길 때마다 모멸감을 느꼈다. 한영진은 그 아기가 낯설었다. 바뀐 것 아니냐고 다른 사람의 아기가 아니냐고 간호사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기가 젖꼭지를 제대로 물지 못해 빨갛게 질려 울어대고 그게 산모의 문제인 것처럼 간호사들이 한마디씩 충고할 때마다 한영진은 좌절했고 다시 분노했으며 죄책감을 느꼈다. 모든 게 끔찍했는데 그중에 아기가, 품에 안은 아기가 가장 끔찍했다. 그 맹목성, 연약함, 끈질김 같은 것들이. 내 삶을 독차지하려고 나타나 당장 다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타인. 한영진은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 걸,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7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