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떨어지고, 사라지려는 의지
재미와 놀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백통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의 등장인물. ― 편집자 주은 결정적인 순간에 갈등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거짓말을 실토하거나 심각한 순간에 웃음을 유발하여 이야기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감초 역할도 한다. …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년~1975년 사라짐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활동한 네덜란드 출신의 미술가다.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I’m too sad to tell you, 1970는 아더르가 비디오와 사진 그리고 친구들에게 보낸 엽서로 구성한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우는 얼굴을 사진이나 엽서로 보내거나 3분이 넘는 비디오로 만들었는데, 왜 우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저 서럽게 울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같이 슬퍼진다. 같이 울고 싶어진다.(14쪽)
아더르의 작업을 자유의지의 관점에서 읽으면, 그의 울음 또한 작가 자신의 실존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누군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예술을 하는지, 어떤 태도로 작품에 임하고 살아갈지 등 자신의 본질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슬프고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긍정적인 것이다. 다른 강호인들이 무림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갈등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동안 ‘놀이’를 선택해서 온몸을 흔들며 웃어젖히는 주백통처럼, 아더르의 흐느낌도 세상의 규칙과 속도와 상관없이 ‘떨어지고 사라지기’로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과 자신의 실존을 표현한 것이리라.
이야기에 숨구멍을 터주는 주백통의 놀이 의지나, 미술 시스템 밖으로 계속 튕겨나가려는 바스 얀 아더르의 낙하 및 실종 의지는 제도의 견고한 구조와 질서를 슬쩍 흔들어놓는다.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도망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는 멈추어 있고 고여 있는 모든 시스템을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는 운동성을 만들어낸다. 자유의지의 이러한 해방성은 바스 얀 아더르의 작업을 더욱 중요하고 흥미롭게 만든다.(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