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컴은 느닷없이 캘리포니아 중북부 원주민인 윈투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윈투족은 자기 몸을 말할 때 ‘오른쪽‘이나 ’왼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동서남북 방위를 쓴다고 했다. 나는 그런 언어가 있다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고, 그런 언어의 이면에는 자아란 세상과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만약 산과 태양과 하늘이 없다면 자아도 없다고 보는 문화적 관념이 깔려 있다는 점이 기뻤다. 도러시 리에 따르면, “윈투족이 강을 따라 올라갈 때 산이 서쪽에 있고 강이 동쪽에 있고 모기가 그의 서쪽 팔을 물었다면, 그가 거꾸로 내려올 때 산은 여전히 서쪽에 있지만 이제 그가 모기 물린 데를 긁으면 동쪽 팔을 긁는 셈이다.” 이런 언어에서 자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서 길 잃는 것처럼 길을 잃을 일이 없다. 방향을 모르는 상태, 산길뿐 아니라 지평선과 빛과 별들과의 관계를 추적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일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런 언어를 쓰는 사람은 관계 맺을 세상이 없는 곳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지하철과 백화점으로 이루어진 현대 도시의 어중된 세상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윈투족의 언어에서 고정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고, 자신은 오히려 일시적인 것, 환경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34~35쪽)
그 낭독회 날, 나는 친구 수지를 술집에서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그때 수지는 내게 눈가리개를 쓰고 천칭을 든 형상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수지는 타로카드의 의미를 한 장 한 장 다시 따져보면서 새로이 자신만의 카드를 그리는 중이었다. 고전 설화를 소개한 어느 책에 따르면, 정의의 여신은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옥의 문 앞에 서서 누가 그 속으로 들어갈지 결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곧 고통과 모험과 변화를 겪음으로써 더 나아질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 다시 말해 처벌의 길을 밟음으로써 변화된 자신이라는 보상을 받을 사람으로 선택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옥행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정의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계산하기 어렵다는 뜻일 터였다. 정말로 그처럼 끝에 가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게 맞춰지도록 되어 있다면, 그 끝이란 우리가 보통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며 우리가 보통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도달하기 어렵다는 뜻일 터였다. 게다가 안락한 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오히려 중도 실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뜻까지 암시했다. 그러니 지옥으로 가라. 다만 일단 들어가서는 쉬지 말고 움직여서, 반대편으로 나오라. 수지가 자신만의 정의의 카드에 그려 넣은 그림은 결국 모닥불에 둘러앉은 사람들 모습이었다. 정의란 우리가 그 여정에서 서로 돕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40~41쪽)
― 리베카 솔닛, 『길잃기 안내서』, 김명남 옮김, 반비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