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네-톰프슨 분류 체계에 따르면, 여러 설화 유형들 가운데는 “주인공이 초자연적이거나 위협적인 원조자의 진짜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를 물리치는 이야기”들이 있다. 먼 옛날 사람들은 이름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즘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무대책·무관심·망각을 눈감아주고, 완충해주고, 흐리게 하고, 가장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거짓말들을 끊어낸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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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상이 암울한 것일 때, 나는 호명을 일종의 진단으로 여긴다. 물론 진단된 질병이라고 해서 모두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내가 대면한 것의 정체를 알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 그 첫 단계로부터 연구, 지지, 효과적 치료가 진행될 수 있을 테고, 어쩌면 질병과 그 의미를 재정의 하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일단 질병에 이름을 붙이면, 같은 질병을 겪는 사람들의 공동체와 접촉할 수 있고 스스로 그런 공동체를 꾸릴 수도 있다. 게다가 가끔은 진단된 것이 정말로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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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다.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불린 독일 설화 속 난쟁이 룸펠슈틸츠헨은 자기파괴적 분노를 발작적으로 터뜨렸고, 그 덕분에 주인공은 그에게 강탈당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옛이야기를 보통 마법에 걸리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종종 그 이야기들의 실제 목표는 마법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주인공에게서 말하는 능력을 빼앗았거나, 그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모시켰거나, 심지어 인간의 형상을 잃게끔 만들었던 주술·환영·변신을 깨뜨리는 이야기들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유력 지도자들이 비밀리에 저질러온 짓을 정확히 호명하는 행위는 종종 그들의 사임과 권력 이동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