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시대를
함께 이겨내는 일
지난 2021년 11월 1일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오늘, 12월 6일에는 다시 사적 모임의 인원을 줄이고 방역 패스 적용 시설도 늘린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백신을 맞았으니 바이러스가 조금 수그러들 거라고 기대했는데,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왔다 하고, 감염자도 늘어난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이 끔찍한 역병疫病의 시대를 견디고 이겨내기는 쉽지 않은 일일 듯싶습니다.
(사)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의 사무국에서 보낸 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2020년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 사태로 더 이상 예전같이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도 그에 맞게 각종 사업설명회, 결과발표회, 포럼 등의 사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해 진행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저런 고민도 많이 했고 몰랐던 부분을 공부해보기도 하면서 고생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남겼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겨 비대면 시대를 의미 있게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 작은도서관 현장에서 이루어진 비대면 운영사례를 소개 및 정리한 내용을 자료집으로 만들 예정이며 책자로 발간하려고 합니다.”
반가운 편지였습니다. 어떤 분이 글을 썼는지, 어떻게들 코로나 시대를 이겨내고 계시는지 궁금했습니다. 도서관, 그것도 다른 도서관이 아니라 ‘작은도서관’의 현장에서 어떤 활동을 펼치고 계시는지,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감염병의 시대이지만, 우리가 이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함께 읽으면서, 서로 힘을 주고받는 일 자체가 무척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값진 활동을 펼치고 꼼꼼한 기록을 남겨주신 분께, 고맙다는 말씀, 고생하셨다는 말씀, 힘내시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하냐고?”
작년 초, 우리나라에서 한참 코로나 확진자 수가 생겨날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나서 전 세계에서 거의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았을 때였습니다. 도대체 이 감염병은 어떤 병인가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온종일 뒤져보던 때였습니다. 그때 만났던 글 가운데 제 눈에 띄는 글이 한 편 있었습니다. 제목을 사투리로 번역하자면,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하냐고?”라고 할 수 있는 글입니다. 2020년 3월 25일, 스위스의 소식을 전하는 영문 매체 ‘스위스인포’에 세르지오 로씨Sergio Rossi 프리부르대학 경제학과 교수님의 의견을 전하는 글이었습니다. “Coronavirus: What is essential?"
로씨 교수는 팬데믹 상황에서 공중보건을 위해 ‘본질적이지 않은 활동’을 중단한다고 각국이 조처를 내리고 있는데, 과연 인간에게 ‘본질적이지 않은 활동non-essential’이란 무엇이고, ‘본질적인 활동essential’은 어떤 것인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식료품을 구한다거나 의약품을 구하는 ‘필수 활동’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봉쇄하곤 하는데, 과연 인간에게 육체적 건강을 챙기고 생존을 유지하는 것만이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활동이냐? 과연 그런가? 하고 묻고 있었습니다. 로씨 교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위기 상황을 통해 개인이나 사회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간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로씨 교수의 문제 제기를 접하면서, 과연 책읽기와 도서관 활동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활동’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이 책자에 묶인 여러 사례는, 이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으며, 우리의 도서관 활동은 지속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읽기와 도서관 활동이야말로 우리가 단지 육체적 건강과 생존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정보와 지식과 지혜를 구하는 존재임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코로나19가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넘어서서 새로운 도서관서비스를 개발하고자 한 분들이야말로 K-방역의 영웅처럼 K-도서관의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기회이며
전환점입니다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입니다. 위기가 닥쳤다는 것은 위험에 빠졌다는 말도 되지만, 다른 한편 기회가 생겼다는 말도 됩니다. 이 말은 어려움이 닥쳤다고 주저앉지 말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영어의 ‘crisis’라는 말은, 질병이 한창 진행될 때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인지를 판단한다는 그리스어krisis에서 나온 말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전환점, 결단 등의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동서양이 모두 위기를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휴관과 제한적 운영을 반복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도서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초 미국 전역의 거의 모든98%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난 2년 동안 도서관 운영자들이 보여준 창의성과 헌신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맞게 도서관 서비스를 새롭게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감염병으로 말미암아 더 간극이 넓어진 지식정보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이 단지 책을 비롯한 도서관 자료를 빌려주고 받는 곳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통 공간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곳이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따뜻한 관계망을 만들어온 곳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이 점은 우리나라 작은도서관이 오랜 기간 힘을 기울여온 점입니다. 이 책자를 통해 우리는 도서관의 근본적인 본질과 지향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듯 보이지만,
결코 작을 수 없는
오늘날은 분명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펜데믹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처럼 전 인류가 함께 힘을 쏟아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위기가 우리 눈앞에 닥쳐 있습니다. 이 책자가 소개하고 있는, 작은 듯 보이지만 결코 작을 수 없는, 창의적인 노력과 헌신의 사례는 이런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밑거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언급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면서 우리가 선택하고 결단한 것이 우리의 도서관 문화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점입니다. 이 책자는 바로 그 전환점의 한 양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모두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택과 결단을 통해 우리 도서관 문화의 ‘작은 듯 보이지만, 결코 작을 수 없는’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작은도서관의 도전이 계속되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 이 글은 『작은도서관,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다』(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2021년 12월 31일 발행)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