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의 문제는 단순히 기억이 아닙니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정치 아닙니까?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기억하지 않을 것인가는 가장 정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언제나 자기들에게 유리한 기억을 주입을 하죠. 이것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8월달에 야스쿠니 참배 반대하는 모임에 가서 발표도 하나 했는데요. 야스쿠니하고 한국의 국립묘지가 뭐가 다르냐 이런 발표를 해달라고 해서 그 이야기를 조금 했습니다. 한국의 국립묘지도 야스쿠니와 닮은 점이 분명히 많습니다. 야스쿠니에 묻혀 있는,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로 죽은 사람들에게는 ‘네가 죽으면 국가의 신이 되고 혼이 된다. 호국의 신이 돼서 영원히 추앙받을 것이다.’, 조선청년들에게는 ‘조선에서 반도의 청년들이 차별 당하는데, 천왕폐하를 위해서 죽으면 내지인과 똑 같은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고 영웅이 된다, 신이 된다.’ 이렇게 해서 이 사람들을 결국은 전쟁터로 몰아가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죠. 그렇지만 거기에서 죽은 사람들은 사실 개죽음 아닙니까? 개죽음 당했는데도 국가는 그 사람들의 죽음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죽었다. 호국의 신이다.’ 우리나라도 사실은 마찬가지죠. 전쟁기에 군에 간 사람들은 물론 징집에 의해서 갔지만, 대개는 배가 고파서 갔습니다. 제주도 사람들 같은 경우는 레드컴플렉스를 지워버리려고, 빨갱이 과거를 지워버리기 위해서 군인으로 가기도 했고... 거기서 죽고 살아난 사람도 있지만, 돌아온 다음에는 다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갔을 때는 배가 고파서 갔고, 억지로 갔고, 살기 위해서 갔지만 돌아온 다음에는 그 사람들을 국가의 신인 것처럼 국립묘지에 안장을 하고, 포장을 합니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가족에게 가서 마이크를 대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어보면 개죽음이죠. 왜냐? 있는 사람들은 다 빠졌죠. 일제시제 때도 그렇고 해방, 6.25때도 그렇고, 베트남 전쟁 때도 그렇고, 힘 센 사람들은 군대에서 다 빠졌습니다. 국민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힘 센 사람들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갔다고 하더라도 그 전투 현장까지는 안 갑니다. 대개 벙커 안에 있거나 사단장, 대대장 차 몰고 있거나,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빽 없는 사람들이 군대 가지 않습니까? 6.25전쟁 때도 그런 속담이 있죠. 죽을 때 빽빽 하고 죽는다고… 그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총 맞아 죽을 때 빽빽, 빽이 없어 죽는다고... (웃음) 그러니까 알고 있지만 국가는 공식적으로 그렇게 얘기하지 않고 아주 대단한, 국가를 위해서 희생당한, 정말 고귀한 희생으로 그렇게 포장을 하죠. 여기에 전쟁의 딜레마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일본의 야스쿠니나 한국의 국립묘지나 그 점에선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물론 저는 그걸 동일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야스쿠니 같은 경우는 침략전쟁, 전쟁 범죄에 동원된 것이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전쟁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쨌든 북한이 먼저 전쟁을 벌여 동원된 사람들이니까, 방어전쟁이니까, 그렇게 범죄자라고 보는 건 아니죠. 물론 차이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쟁이 가지고 있는 쓰레기 같은 측면이 있는 거예요. 최근에 나온 <고지전> 같은 영화도 보셨겠지만, 거기도 그런 메시지가 있지 않습니까? 전투 현장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있고… 가해 군인들이나 피해 민간인들도 모두가 쓰레기장이 되는 거예요. 그 쓰레기장의 가장 적나라한 현장이 학살현장인 거죠.
지금도 사실 여기서 주로 피해학살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제가 무슨 특별히 이데올로기적인 바이러스가 있어 가지고 국군피해학살자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국군으로서 징집됐던 사람들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군인 갔다 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14살에서 17살까지의 나이에 군대에 동원된 사람이 2만5천 명이에요. 그런데 17살까지 전쟁에 동원한 것은 국제적인 규범 위반입니다. 전쟁법 위반이에요. 그래서 대한민국이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을 안 해요. 심지어는 여러분 <태극기 휘날리며>의 첫 장면 기억하시겠지만 초기에는 징집을 했지만 나중에 전선이 좀 몰릴 때는 길거리에 나와 있는 아이들을 그냥 붙잡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전투현장에 보냈어요. 그리고 한국남자들 중에서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꾸는 악몽이 있습니다. 뭐에요? 군대 또 가는 겁니다. (웃음) 제대했는데 군대 징집영장 또 나오는 거예요. 저는 제대하고 한 20년 동안 계속 그런 꿈 꿨는데... 그런데 실제로 제가 위원회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까 군대 또 간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이게 환장할 노릇인데. 학도병으로 갔다가 왔는데 기록이 없는 거예요. 분명히 군대에서 근무하고 왔는데 군번이 없지 않습니까? 군번이 없으니까 또 징집을 당해서 5년 심지어 7년까지 근무했어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있는 겁니다. 70대, 80대 할아버지 중에서. 정말 불행한 사람들이죠. 너무너무 불행한 사람들이죠. 그렇다고 이 불행한 사람들이 국립묘지에 묻히고 영웅대접 받느냐? 천만에요. 이 사람들에 대한 연금, 지금 한 달에 주는 돈 8만원 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8만원을 지급하는 것도 DJ정부부터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국가의 이름으로 거창하게 칭송을 하지만, 실제로 가족들이 겪는 현실은 초라한 겁니다. 저는 천안함 유족들도 마찬가지라 봐요. 단, 이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그 이야기를 못하는 겁니다. 피학살자들의 문제는 가장 처참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징집됐던 사람들, 보통 시민들, 다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람들 아닙니까? 박경리 선생이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박경리 선생 본인도 남편이 좌익 관련해서 일찍 사망하고 결국 홀몸으로 딸 하나를 평생 키우고 살았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하죠. 자기 남편이 좌익 경력이 있어서 박경리 선생이 끊임없이 사찰을 당하고 계속 끌려 다녔기 때문에 ‘파출소 앞에 파란 등만 봐도 겁이 났다.’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평생 거기에 주눅 들어서 산 그 가족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뤘던 건 학살 문제이지만,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될 것인가 라는 문제는… 전쟁이 우리 사회에서 무엇인가? 이것을 가해해서, 북한이 침략했으니까 모두가 불행했다는, 그거 아닙니다. 사실로 말하자면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부도 할 수만 있다면 이북에 올라가려고 했고요. 미군이 했던 역할은 이승만이 이북에 못 오르게 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또 최근에 있었던 NLL 논란도 참 어처구니 없는 것인데… NLL이 북방한계선이 아닙니까? 북방한계선을 없애는 것은 이승만이 이북으로 올라가는 걸 의미하고, 당시 이승만이 휴전협정을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사고칠까봐 막은 게 북방한계선의 측면이 있는 거에요. 그리고 북방한계선은 군사한계선도 아니에요. 해안선은 국경이 없는 겁니다. 이런 부분들이 분단이데올로기 때문에 마치 영토, 영해라인인 것처럼 포장을 해서 국민들에게… 그래서 전쟁이라는 것은 항상 잘못된 신화와 거기에 대한 권력의 일종의 속임수, 그리고 다수 국민의 희생과 희생당한 군인들의 침묵, 이데올로기를 유포함으로써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세력들, 그런 문제인 것이죠.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사상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미래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전쟁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나와야 됩니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경우 강제규 감독이 만들 때 저도 시나리오에 대해서 약간 관여를 했는데, 이런 영화가 10편 정도, 최소한 20편 정도는 나와야 됩니다. 그나마 노무현, DJ 정부 때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그런 영화 안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영화가 좀 더 많이 나와가지고 사람들에게 전쟁을 좀 더 생각하게 만들고,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분단의 비극을 생각하게 만들고,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좀 느끼고, 이런 것들이 일반화되어야만 평화운동도 활성화되고 우리 사회에서 광기에 가득한 종북 논쟁들도 종식될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본다면 한국전쟁에 대한 지식이나 이런 부분 자체가 너무나 취약하고, 현실의 역사의식 속에서 해석하는 것도 너무너무 취약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의 침략성만 부각시키는 식으로 이데올로기가 가고 있습니다. 정전 60년을 맞았지만 한국 전쟁을 통해서 우리가 도대체 뭘 배웠는지… 그런 것이 취약하기만 하고... 물론 전쟁을 겪은 외국의 경우도 다 비슷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독일같이 과거청산을 확실하게 해서 정말 나치 학살을 옹호하기만 해도 범죄자가 되는 그런 나라도 있는가 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참전군인들이 평화운동 시위에 항상 등장하고 또 참전군인들 중에서도 양심적인 내부고발자들이 굉장히 많은 미국 정도, 그런 나라들하고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은 전쟁에 대한 일종의 성찰을 생각할 수 없는 거의 무풍지대에 가깝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본다면 일본과 한국이 자기들이 그런 끔찍한 전쟁을 저질렀거나 혹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성찰이나 생각의 수준은 거의 초등학생 수준에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도 그 많은 군인들이 가서 그렇게 많이 죽고, 그 많은 사람들이 고엽제 피해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쟁을 다룬, 뭐 <하얀 전쟁> 이 있기는 합니다만, 제대로 된 소설, 영화, 논문 거의 없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학술논문, 옛날에 리영희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제외하고 그 이후에 나온 논문조차 거의 없습니다. 그게 우리 사회의 저 같은 연구자들의 큰 책임이기도 합니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도 느꼈고요.
제가 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할 무렵에 개인적인 한계를 참 많이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진실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그 조사보고서를 직접 볼 수가 있습니다. Jinsil.go.kr 이렇게 들어가면 됩니다. 들어가면 그 보고서를 읽을 수가 있는데요, 얼마 전에 보니까 소설가 김훈 씨가 이 보고서를 열심히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는데. 그 보고서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조금은 내용이 딱딱하고 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보고서에는 우리 사회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엄청난 내용의 컨텐츠가 있습니다. 제가 위원회활동 그만둘 무렵에 연구자로서 너무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이게 연구자들 논문 써봐야 읽지도 않고 하니까 소설을 써야겠다. 그래서 황해문화의 편집자 친구 김명인이 있는데 소설가들을 좀 모아라, 컨텐츠를 얼마든지 줄 테니까 소설 좀 쓰라고 해서 그때 한 5, 6명 모아왔더라고요. 그런 적도 있는데… 뭐, 딱딱한 옛날 전쟁소설을 쓰라는 게 아니라, 지금의 문제의식에 맞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내용이 참 많거든요. 왜냐하면 전쟁이라는 것은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다 전쟁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한국 전쟁도 너무너무 많은 컨텐츠가 있어요. 한국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복잡한 전쟁이에요. 이데올로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요. 여기에는 친일파 문제, 즉 민족 문제도 있고요. 그 다음에 계급 문제. 옛날에 머슴 살았던 사람들이나 혹은 집안의 하인이었던 사람들하고 양반들하고의 계급갈등도 있고, 그 다음에 이데올로기 갈등 있고, 그 다음에 거기에 씨족, 동네 사람들끼리 원한관계, 씨족 문제도 있고… 성, 젠더 문제가 있고, 온갖 복잡한 문제가 다 들어있는 우리 사회의 인간문제의 결정판이에요, 한국전쟁이라는 게. 그런데 그 중의 아주 일부만 가지고 계속 우리가 교육 받아온 거예요. 그런 측면들을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직업이 뭐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건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학자건 이걸 다뤄서 우리 사회를 보여주고, 이걸 또 세계적으로 보편화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좀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제가 그런 작은 시도까지 했었는데, 접근하기 참 부담스런 주제이기는 하죠. 부담스런 주제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많은 내용이 있어서 앞으로 좀 이런 주제에 많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요. 저로서는 폭력, 학살 문제에서 십몇년동안 활동하다 보니까 트라우마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생각에… 사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중요한 동기 중에 하나입니다. 빨리 정리 좀 하고 나도 도망가야 되겠다. 그런 생각도 좀 있습니다. 유족들은 도망가지 말고 계속 일하라고 하는데, 저는 빨리 도망가고 좀 젊은 사람들이… 하여튼 잘 읽어주시고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시면 저한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면 제가 이것저것 가지고 있는 정보라든지 앞으로 많이 드리겠습니다. 제 얘기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박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