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6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의실에서는 김동춘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 날 강의는 오랜 기간 '한국전쟁'을 연구하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한 김동춘 교수가 펴낸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사계절출판사)라는 책을 중심으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학살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의 의미, 민주화 이후 한국의 과거청산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가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성찰, 그리고 그것의 이론화 작업이 지닌 가치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강연록 전문을 게재합니다.
사회자
안녕하세요. 오늘 월요일이고, 한주를 시작하는 날이라서 굉장히 바쁘실 텐데 이렇게 자리를 찾아주시고 빛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처서가 얼마 전에 지났죠? 처서가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도 불고, 가을 느낌이 조금씩 나는데, 김동춘 선생님의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를 보면 휴전된 지 오래 지났고,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지 오래됐지만 아직 중요한 문제들에 안 풀린 부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볼 때 씁쓸한 기억들이 많고, 정리해야 될 것들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전쟁과 폭력에 대해서 가장 깊게 연구해오신 김동춘 선생님을 모시고,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관련해서 1시간 동안 강연을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질문이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고 질문을 해주시면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답변을 해주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박수로 김동춘 교수님 모시겠습니다.
김동춘
반갑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난 번 여기 왔을 때는 최장집 선생님 책(『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사회자 겸 논평자로 왔었는데, 오늘은 혼자 하게 됐습니다. 제 책을 둘러싼 이런저런 제 생각들을 좀 말씀 드리고, 또 여러분들과 의견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도 밝혔듯이 제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을 한 운동의 기록이고요, 2005년 12월부터 노무현 정부에서 진실화해위원회라고 하는 조직이 만들어졌는데요, 제가 그 조직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서 한 4년 동안 정부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그 기록입니다. 그걸 정리를 해서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순수하게 개인적이지 않고, 좀 객관화시켜서 연구자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죠. 성격은 좀 애매한데… 그렇게 학술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꼭 과거사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제 나름대로의 학문적인 고민들도 은근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선 민간인학살운동에 대해 먼저 조금 말씀 드리면… 아시는 분들도 아시겠지만, 한국전쟁기에 있었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절의 이야기죠. 최근에 나왔던 <지슬>이란 영화도 보신 분들 계실 텐데, 전쟁 발발 이전 제주 4·3사건부터 시작해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데올로기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또, 전쟁이 터지고 나서 ‘국민보도연맹원’이라고 해서 당시 한 30만 명 정도에 달했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학살을 당합니다. 저는 이걸 단군 이래 최대의 비극적인 동족상잔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6.25전쟁의 동족상잔보다 훨씬 더 비참한 학살이다, 지금 한국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는 이른바 레드컴플렉스의 기원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보도연맹원 학살 뿐만 아니라 전쟁기에 부역자, 이른바 서울수복 이후에 인민군에 협력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한 대량의 학살이 또 있었습니다. 부역자들에 대한 학살. 또, 노근리 사건. 여러분 <작은 연못>이라는 영화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그 노근리 사건과 같은 미군에 의한 피해. 물론, 이북의 좌익들이나 인민군에 의한 학살도 많았죠.
제가 1999년, 2000년 정도부터 4~5년 동안 운동을 했습니다. 유족들을 조직을 하고, 사회적으로 의제화하고,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부딪혔던 여러 가지 어려움들, 고민들, 이런 것들. 사실 뭐, 우리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정말 자기 희생을 해서 운동을 한 사람들에 비하면 제가 한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희생적으로 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의 어려움들이 많았습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장벽도 있었고, 피해자들 스스로 나서기 주저하는 것들도 있었고요, 또, 최근처럼 국방부의 강력한 반대도 있었고, 국회의원들의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모습들,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 두려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녹아 있는 현실이죠? 그런 것들을, 책에서 배웠던 현실을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느꼈던 그런 이야기들이 쭉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제가 생각지도 않았던 정부의 관리가 되어서 4년 동안 정부에 들어가서 직접 일을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건 굉장히 드문 경험인데요. 이른바 바깥에서 진보적인 학자라고 하는 사람 중에 직접 정부에 들어가 경험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직접 들어가서 조직운영에서부터, 예산문제부터 시작해가지고 온갖 일들을 정부관리의 입장에서 직접 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여기에 좀 담아낸 이야기죠. 그래서 저로서는 우선 정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록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바깥에서 사회운동을 하다가 정부에 들어간 사람들이 많지 않고, 그리고 밖에서 비판하기는 쉬워도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얘기를 그전에 많이 들었기 때문에 여기서 부딪히는 일들을 다 기록해야겠다 생각해가지고 매일매일 아주 시시콜콜한 것까지 4년 동안 다 기록을 했습니다. 그걸 우리 책(조사보고서)에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특별히 우리 독자들, 일반 국민들하고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메모를 했다가 이제 이 책으로 남긴 겁니다. 예전에 강준만 교수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이런 기록들을 남겨야 된다 라고 하는 제 나름대로의 사명감도 있었고, 향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른바 소위 민주세력들이 집권을 하거나 진보세력이 집권을 할 때 똑같은 문제에 부딪힐 것이다, 그런 거를 예상을 해서 하나의 역사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 그런 생각에서 제가 기록을 한 것입니다. 물론 같이 활동을 했던 분들이 지금 다 생존해있고, 내부의 인간적인 갈등도 많았기 때문에 그런 민감한 문제는 다 뺐습니다. 그러니까 제 기록은 100프로의 사실 기록은 아닙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의 70퍼센트를 하고 30퍼센트 정도 남겨뒀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적인 갈등이나 운동권 출신들이 제도권에 들어가서 생긴 문제점, 이런 것 중에 더 적나라한 부분들은 그대로 기록했다가는 운동진영에 누가 될 것 같기도 해서 그대로 남겨뒀고요, 우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만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쭉 읽어 보시면 몇 가지 테마가 이 책에 들어 있습니다. 뒤에도 있지만 이른바 피해자들, 즉 우리사회에서 굉장히 억울한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상황에 부딪히는가? 그리고 그 억울한 문제를 푸는 과정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라는 큰 줄거리가 있습니다. 이른바 여기서 유족들이지만, 이 유족은 그냥 전쟁의 피해학살 유족으로만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용산참사 피해자들로 생각하셔도 좋고, 쌍용 피해자로 생각해도 좋고, 아니면 태안 기름유출 피해자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곳곳에 있고요, 지금 여기 오신 분들 중에는 어쩌면 당사자도 계실 겁니다. 그러니까 공권력이나 거대한 자본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그 억울한 일을 헤쳐나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온갖 장벽들입니다. 그리고 또 그 사람들이 그 억울함을 풀어야 되지만, 그 푸는 과정에서 이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굴절되어 있습니다. 상처가 많죠. 특히, 이데올로기 전쟁 피해자들이나 고문 피해자들 같은 경우 특히 상처가 많습니다. 트라우마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피해자는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있는데요, 그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을 했고, 그리고 그 문제를 만약 제도적으로 해결하려 했을 때에는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가 하는, 그런 쟁점이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운동을 하다가 정부 조직이 만들어지고 하는 것은 일종의 제도화 과정이죠. 이 법과 제도라는 게 도대체 뭐냐는 질문을 제가 여기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처음에 그 문제를 던졌습니다. 헌법소원 문제로 시작해가지고 끝날 때까지. 이 법적 해결이란 게 이 사람들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화두를 물고 늘어지고 있고, 제 나름대로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고, 법에 전혀 문외한인 제가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생겼던, 그런 것이 있지요.
그 다음에 이른바 정치와 시민운동의 관계가 또 있습니다. 이것도 좀 보편적인 이야기인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민운동에서부터 시작해서 그걸 정치권에 연결하고 정치권이 이걸 받아서 법제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는데, 이 과정, 그러니까 시민운동, 정치권, 관료집단 세 집단들이 피해자들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가, 그런 쟁점이 하나가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내용 중간중간에 스며들어있지만 제 자신의 입장입니다. 연구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제가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했던 고민들, 뭐 이런 것이 밑에 쭉 깔려있습니다. 이건 뭐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개인적인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깔려있지요.
뭐, 하나의 사례로 보면 됩니다. 이게 ‘한국전쟁 피해학살’이라고 하는 아주 우리 사회에서 해묵은 과제고, 건드리기 어려운 이 문제를 건드리고 이걸 해결하려고 했던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제가 바라보고, 또 거기서 제 자신과 또 이런 사회운동이 가졌던 근본적인 한계와, 이것을 통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국가폭력이나 굉장히 큰 힘을 가진 기관들이, 지금 국정원 사태, 여러분들이 아마 보셨을 텐데… 그런 문제와 연관을 시켜서 과거의 문제를 현재화시키는 의제라고 할까 그런 거를 이 책에서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읽으실 때는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신 쪽으로 읽으셔도 상관이 없고, 거기서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여러분들 나름대로의 경험을 이끌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