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 학생들은 영영 '벌의 시간'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게 될 존재
좋은 삶을 경험하고, "나도 좋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욕망할 수 있어야
〈2020 청소년 책의 해〉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책 읽는 소년원 프로젝트’다. 전국 10개 소년원 중에서 안양소년원이 이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소년원은 교정과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법무부 소속의 특수 교육기관이어서 ‘○○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안양소년원의 교명校名은 정심여자중고등학교이다.
일 년 동안 안양소년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책 읽는 소년원 프로젝트’의 큰 흐름은 ‘함께 읽기’다. ‘함께 읽기’라는 큰 줄기에 도서관 공간 조성, 독서 수업 프로그램 진행, 자율독서동아리 운영이 포함되어 있다. 눈길이 머물고 마음도 머무는 매력적이고 예쁜 도서관 공간을 만드는 것, 주 1회 독서 수업을 통해서 친구들과 함께 읽고 좋은 삶의 길을 찾아보는 연습을 하는 것, 방호실 친구들과 같은 책을 읽고 책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매만져주는 경험을 하는 것. ‘책 읽는 소년원 프로젝트’가 하려는 일들이다. 사실, 좋은 삶의 길을 찾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고, 예쁜 도서관 공간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계량화할 수 없고 가시화할 수도 없다.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서 일어나는 일인 까닭이다. 하지만 삶의 가장 바탕에 해당하는 일, 삶의 정수에 맞닿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안양소년원에는 도서관을 조성할 만한 여유 공간이 없었다. 더구나 소년원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가 없다. 도서관을 만든다고 해도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와서 책을 보며 머물 수 없었다. 이 두 가지 한계와 특수성으로 인해서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에 도서관 공간을 꾸미기로 했다. 현재도 이 복도에 서가가 놓여있다. 학생들이 식사를 하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무는 곳이어서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책 읽는 소년원 추진팀’ 위원들은 책등이 아닌 책 표지가 보이는 방식으로 장서 배치하기, 매력적인 북 큐레이션 시도하기, 비록 복도 공간이지만 책을 떠올릴 수 있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아름다운 공간으로 조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간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마련된 상태이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못한 상황이다.
코로나 19의 영향은 소년원에도 고스란히 미쳤다. 독서 수업 진행을 맡은 두 명의 강사 선생님은 2월 하순에 독서 수업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80일이 지나도록 수업 시작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5월 19일에야 첫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독서 수업은 같은 책을 읽고 함께 대화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네 명의 작가박찬일, 이종철, 백영옥, 김동식를 순차적으로 초대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작가의 책을 읽고, 작가를 직접 만나는 것. 이 모두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좋은 삶에 다가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소년원은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방별로 네 명 정도가 함께 생활하고 있고, 저녁과 주말에 방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많다. 스마트폰이나 여타의 놀이도구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니 방 친구들과 같은 책을 읽고, 간단한 책대화를 하기에 참 좋다. 우리책 읽는 소년원 추진팀는 학생들에게 독서동아리독서모임로 책대화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바깥세상으로 나가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또 같이 읽는 일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이에 기록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인상 깊은 문장 한 줄만 적는 양식을 만들었다. 독서동아리는 매월 초에 방별로 신청을 받는다. 신청한 방에는 간단한 기록을 위한 리플릿과 이달의 책 2종을 (인원수만큼 복본으로) 준다. 학생들은 책을 선물로 받고, 월말에 기록한 리플릿을 제출하면 된다. 복잡하지 않은 과정이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 일이 아이들의 마음에 무늬를 아로새기게 될 것이다. 함께 책을 읽은 자들만이 아는 통함, 서로 다른 존재임을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는 끄덕임, 서로의 삶을 응원하게 되는 짜릿함은 그냥 흘러가지 않고 영혼에 각인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소년원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 가해자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에 대한 벌罰의 시간, 교정과 교화를 위한 시간을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영영 벌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곧 우리 곁의 이웃으로 살아가게 될 존재이다. 그러니 가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나도 좋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욕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책 읽는 소년원 프로젝트’가 그런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 〈책 읽는 소년원 이야기〉는 '책 읽는 소년원 추진팀'이 릴레이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