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년원 이야기 ②
소년원 수업을 준비하면서 주변에서 기대보다는 걱정과 의구심 어린 조언
막상 책을 좋아하는 친구도 많았고, 또래의 여느 친구들과 다르지 않아…
〈2020 청소년 책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책 읽는 소년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날. 3월부터 시작되는 독서 수업에 앞서 2월 18일에 아이들과 사전 만남을 가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100권의 책을 권하기보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1권의 책을 권하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애초에 ‘책을 싫어하고, 글을 읽으면 잠이 오는’ 아이는 없다. 엄마가 처음 읽어주는 책, 선생님이 처음 읽어주는 책, 아이가 스스로 처음 읽는 책 앞에서 아이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난다. 세상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호기심 많은 그 시기 아이들에게 책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세상의 그 무엇이다. “나는 원래 책이 싫어.” “글을 보면 잠이 와.” 이런 이야기는 대개 초등 고학년 이후 자발적인 독서가 필요한 시기부터 들린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 책을 읽어야만 하고, 책을 읽으면 답을 묻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책 앞에서 위축되고, 평가 앞에 초라해진다. 이런 구차한 기억 속에서 책은 지겹고 지긋지긋한 물건이 된다. 책에 대한 지겨운 기억은 아이가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다. 경쟁과 각자도생의 논리를 부추기는 어른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따뜻한 품과 목소리, 편안한 공간, 새로운 앎에 대한 경이로움, 몰입의 즐거움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책을 읽지 않아도 다시 책을 즐겨 읽을 수 있으리라. 아이들이 책에 대해 갖고 있는 지긋지긋한 기억을 걷어내고 다시 기분 좋은 시간을 만들고 싶다. 첫 만남은 가볍게. 되도록 즐겁게. 아이들의 분위기와 반응도 살펴보고 ‘책 읽는 소년원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를 통해 이후 이루어질 만남에 대한 동기부여도 할 참이다. 아이들이 그동안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우리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지 확인하고 최종 수업안을 매만질 요량이었다. 특수한 환경에서 보호받고 있는 친구들이라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책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나의 믿음을 가지고 즐거운 만남을 상상했다.
그런데 소년원 수업을 준비하면서 주변에서 기대보다는 걱정, 또는 의구심 어린 조언을 많이 해줬다. “소년원 아이들 무섭지 않아?” “걔네들이 책을 읽겠어?” 등등. 아이들이 책을 읽겠느냐는 질문은 지적 장애 아동 수업을 준비할 때도 들었던 말이다.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했던 분의 말이다. “어차피 도서관을 만들고 책을 줘봐야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무슨 책을 읽겠냐. 세금 낭비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을 자신이 아는 만큼의 시야에서 예단한다. ‘책 읽는 소년원 프로젝트’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인간의 정서적, 지적 활동인 책읽기를 독서량, 글쓰기 수준 등 눈에 띄는 잣대로 쉽게 효과를 정리할 수 있을까?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책을 접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독서량과 독서 수준에 대한 설문 및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았고, 독서량도 많았다. 물론 책과는 담을 쌓은 친구들도 많았다. 또래의 여느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읽고 싶은 책을 쉽게 구할 수 없고, 정보도 부족했다. 도서실도 잘 구비되어 있지 않아서 안정적으로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집단적, 규칙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새로운 자극 하나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다. 책 한 권을 자기 것으로 받는 것에 기뻐하고, 외부 강사의 말 한마디 정보 하나에도 귀 기울인다. 아이들을 존중해주고 스스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호응하고 움직인다. 아이들이 직접 책 읽는 시간에 대한 규칙을 만들고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활동 내용도 정리했다. 책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는 정답을 찾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니 누구나 자신 있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한껏 발랄하고 솔직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내심 마음에 있었던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긴장이 아주 보잘것없어졌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3월 첫 주부터 예정한 첫 수업을 하지 못하고 근 90여 일이 지나서야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만남. 첫 만남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기에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아이들은 첫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앉았던 책상 대형을 기억하고 교실에 오자마자 스스로 책상을 정리했고, 함께 나누기로 한 책 이야기를 했으며, 함께 만든 규칙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첫 수업 때 진행하기로 했던 카나페 만들기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나눈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기력할 것이라, 책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쉽게 단정할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책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현재의 자신보다 나은 미래를 꿈꾼다. 누구나 예쁜 것을 보면 감동하고 재미있는 것을 보면 즐길 줄 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 시간을 즐기자. 아이들만 믿고 가자. 책 읽을 환경이 부족하다면 환경을 만들고, 함께 읽고 얘기 나눠줄 사람이 있으면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책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읽기의 힘에 대해 신뢰할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 〈책 읽는 소년원 이야기〉는 '책 읽는 소년원 추진팀'이 릴레이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