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을 기억하다
첫 번째 인터뷰
2015년 5월 20일 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나온 후 7월 4일까지 메르스 환자 186명이 발생했으며, 그 가운데 36명이 사망했습니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신종 감염병 대응에 취약한 보건당국의 역량과 한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그대로 볼 수 있었고,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 전반의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한국의 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보건은 세계 최하 수준인 게 드러났다”라고 개탄했습니다. 비단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와 사회 시스템은 물론, 국민의 수준 또한 민낯을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몇몇 제도와 정책을 개선했다고 메르스 사태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이 사태의 성격과 파장을 고려했을 때 안이한 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제도 개선이라는 방식으로 후속 대책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의료계 현장에서 사태를 직접 경험한 의료인들의 목소리가 사라질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이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리고,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와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장래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의료인들이 모여 이번 사태를 복기했습니다.
첫 번째는 여는 인터뷰입니다.
메르스 사태 초기 의료인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요? 그리고 이들이 생각하는 문제점과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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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메르스 사태로 우리 사회가 크게 혼란스럽습니다.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와 한국 의료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는데요. 사태 초기 선생님들 각자 겪으신 일부터 자유롭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김홍빈(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감염내과 교수)
저는 첫 환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이희영 교수경기도감염병관리본부 부본부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예방의학과에게 연락받고 알았습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어요. 제가 경기도감염병관리본부에 자문하고 있지만, 대외비로 묶인 모든 내용을 들을 수는 없었죠. 재작년쯤부터 강의할 때마다 저는 신종 감염병에 대해 얘기해왔어요. “올 거다. 준비해야 된다”라고요. 그래서 연락을 받았을 때 ‘한 명 들어왔구나. 발견해서 다행이다’고만 생각했죠.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지승호
그 당시 선생님께서 겪으신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최고 수준의 의료, 최저 수준의 보건
김홍빈
첫 환자 소식을 듣고 난 일요일5월 24일이었어요. 두바이에 다녀온 한 아이가 열이 나 저희 병원 응급실을 찾았어요. 응급실에는 별도로 격리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고, 국가지정 격리병상도 없었어요. 첫 환자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응급실 내부에 격리할 수밖에 없었죠. 곧 환자 병력을 확인하고 보건소와 질병관리본부에 연락했지요. 음성일 것 같은데 확인해서 내보내자더군요. 음성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그날 오후 5시에 연락받고 병원에 갔습니다. 밤 10시까지 확인해서 (보건소에 확진 판정) 검사를 보냈어요. 다음 날인 월요일 새벽에 음성 메시지로 아니라는 결과를 들었어요. ‘그럼 그렇지. 사람들한테 잠깐 경각심을 일으키고 여기서 끝나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이곳저곳에 자문도 구했어요. 그때는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료에 근거해서 답했어요. 그곳 자료밖에는 없었으니까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겠다고 예상했죠.
그런데 경기도감염병관리본부에 있을 때였어요. 그곳에 있자니 온갖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 성빈센트병원이 쑥대밭이 됐다. 동탄성심병원도 난리가 났다……. 그때만 해도 환자 몇 명이 같은 병원에서 감염되었다고만 생각했지, 엉망으로 대처했다고는 전혀 생각 못 했습니다.
지승호
초기에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지리라고는 예상 못 하셨군요?
김홍빈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5월 마지막 주 금요일29일입니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학술 대회를 목요일과 금요일에 했어요. 저는 금요일 마지막 세션 발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저희 병원에 환자도 안 왔고 아무 정보도 없었어요. 학회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만 들었죠. 여의도성모병원이 어떻게 됐다더라…….
아무튼 학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뭔가 이상하다. 뭔가 놓치고 있나?’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이희영 교수에게 연락이 왔어요. “성빈센트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입원했던 분이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는데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습니다. 확인해보니 그 환자는 응급실을 거쳐 이미 5인실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 환자가 성빈센트병원에 다녀왔다는 것은 알았지만, 같은 병동에 확진 환자가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죠. 병동도 이쪽 끝 병실과 저쪽 끝 병실이 멀리 떨어져 있거든요.
아무튼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격리하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같은 병동에 이쪽 끝하고 저쪽 끝에 있었는데, 그게 위험도가 같으냐? 근거가 뭐냐?”라고 물었어요. 질병관리본부 방침은 격리라고만 하더군요. 할 수 없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했습니다. 환자분은 지금 아마도 무균성뇌수막염 탓에 열이 나는 것 같다. 다만 성빈센트병원에서 확진 환자와 같은 병동에 계셨기 때문에 국가에서 격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그때부터 상황을 파악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어요.
확인해보니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경기도 평택의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곳곳에 환자가 생기고 있었죠. 성빈센트병원에서 접촉자를 격리하기로 했다는데, 병원 응급실을 거쳐 올 때까지 아무도 상황을 몰랐죠.
지승호
이희영 교수 말고 질병관리본부 같은 기관 쪽에서 따로 받은 연락은 없었나요?
김홍빈
이희영 교수가 경기도에서 저를 들어와 달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가서 의견을 냈습니다. 역할 분담을 빨리 해라. 보건소, 1차, 2차, 3차 병원 등의 역할을 명확하게 나눠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공포심 탓에 사람들이 병원에 발길을 끊는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려달라. 평택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흩어놓으면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죠.
다음 날 경기도에서 SOS 요청이 왔어요. 어디 어디 가보라고 하더군요. 현장에 가서 상황을 살피는 와중에 이희영 교수와 이야기했어요. 동탄성심병원, 성빈센트병원, 분당서울대병원과 거론된 몇몇 병원에 문제가 있으니, 경기도에 있는 감염내과 선생들과 감염관리실장들이라도 당장 다 소집해서 정보를 알리고 역할을 분담해서 대처해야 한다고. 빨리 서둘러야 한다고요. 그때 질병관리본부와 경기도가 엇박자 내기 시작한 것을 알았어요. 의사소통도, 정보 공유도 전혀 안 되고 있었어요.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낀 것이 5월 말이었으니까, 초기 대처를 잘못한 거죠. 결국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어요.
지승호
선생님께서도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김홍빈
6월 3일이었어요. 청와대에서 민간 전문가 회의를 열었어요. 저도 갔습니다. 그곳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라. 신뢰를 회복하는 첫째 방법이다. 전 국민에게 병원명을 공개하기 어려우면 최소한 의료진에게는 알려줘야 대처한다. 환자를 선별해서 다른 피해를 막아야 한다. 실수를 만회하려고 무리수를 두면, 손발이 되어야 할 보건소가 못 움직인다. 그러면 결국 시스템이 마비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휴교다. 당장 휴교를 중단해라.
그런데 그러고 나서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어요. 즉각대응팀이 생겨 저는 한 달 반을 완전히 거기 매여 살았어요. 삼성서울병원에 두 번째 유행이 시작되어 이미 손쓸 수 없을 때였어요. 저는 제 병원 버리고 남의 병원 지키러 간 거죠. 삼성이나 평택 같은 상황이 생기면 안 되기에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 일했어요.
지금은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됐는데요. 그사이 있었던 일은…… 제가 우스갯소리로 누구한테 그랬는데, 며칠간 떠들어서 책 쓰라고 하면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웃음) 다들 고생해서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이번에 겪은 일을 그냥 잊고 지나가면 안 됩니다. 금년 가을이 될 수도 있고 내년이 될 수도 있고,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보건은 세계 최하 수준인 게 다 드러났죠. 의료는 물론이고 국가 시스템, 공공기관, 국민의 민낯까지 다 드러난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알았으니 이걸 바탕으로 다음을 대비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번처럼 대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승호
지금까지 한국 의료체계를 비교적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니 특히 공공의료 쪽은 정말 엉망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자본주의의 첨단에 있다는 미국에서도 공공의료는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합니다. 아무튼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정말 많이 고생하신 듯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조승연(인천광역시의료원 병원장)
메르스 말고 다른 얘긴데요. 저는 인천의료원에 있습니다. 인천은 항구와 공항이 있어 전염병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도시예요.
작년 추석 연휴 때 아프리카에서 온 에볼라 환자 하나가 의료원에 왔어요. 3박 4일 동안 환자를 데리고 있었죠. 그때 장관, 차관, 질병관리본부 간부 등 안 왔다 간 사람이 없었어요. 사진 한 장씩 찍고는 “모든 것을 지원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가더군요. (웃음)
3박 4일 동안 간호사, 의사 할 것 없이 거의 모두가 병원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추석 연휴였잖아요? 나중에 제일 베테랑이고 호봉도 높은 간호사 다섯 분하고, 감염관리 의사하고 중간 중간에 나온 진단의학과 분들까지 다 계산해보니까, 특근비가 대략 1,000만 원 정도 나왔어요. “모든 것을 지원해”준다고 했으니까, 거기에다 격려금을 얹어서 1,500만 원 정도 지원해줄 것으로 예상했어요. 그런데 신청했더니 예상한 금액의 반의반도 안 되게 준다고 하더군요. 저희 선생님이 보건복지부에 전화로 강하게 항의했어요.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게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그런데 규정상 진료비에 다 포함된 거랍니다. 연휴 기간 동안 병원을 비우고, 환자 한 명을 대여섯 명이 달라붙어서 봤다고 따졌더니, 자기들도 어쩔 수 없대요. 그래서 홧김에 저는 다시는 에볼라 환자 안 본다고 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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