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포르노 소설이
프랑스대혁명을 일으켰다고?
왜 혁명이 일어나는가? 가치체계는 어떻게 바뀌는가? 이런 질문이라면 그 누구도 간단하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단턴은 질문을 바꿔서 그 답을 찾아보았다.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베스트셀러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을 바꿨다면 그 이유는 책일 수밖에 없다. 교육기관도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고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도 등장하기 전이었다. 단턴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혁명 전, 그러니까 18세기의 금지된 베스트셀러를 26년 동안이나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세 종류의 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정치적 중상비방문과 SF, 포르노소설이었다. SF는 현재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간절한 바람을 새로운 세계 속에 담아내는 장르다. 당연히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 의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중상비방문 역시 현 체제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라는 점에서 그럴듯하다. 그러나 포르노소설이? ‘성적인 감정을 일으킬 목적으로 성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포르노소설이 프랑스 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놀라운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위대한 고전’들은 그 목록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 놀랍고 재미있는 것은 그 위대한 고전의 저자였던 계몽사상가들 역시 포르노소설이나 그에 버금가는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철학서간Letters Philosophiques』1734으로 유명한 볼테르1694~1778는 음란하고 외설적인 『오를레앙의 처녀La Pucelle d'Orléans』18세기 초를 썼다. 또 백과사전으로 유명한 디드로1713~1784는 루이 15세를 대놓고 풍자한 소설 『입싼 보석들Les Bijoux Indiscrets』1748을 썼는데, 여기서 보석이란 ‘말하는 음문vagina’을 뜻한다. 이 소설에는 만고귈이라는 콩고의 술탄이 등장하는데, 그는 여자 성기가 말하게 만드는 요술반지를 끼고 있다. 디드로는 이 포르노소설 때문에 뱅센Vincennes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리고 루소의 『고백록Confessions』1782~1789은 소설은 아니지만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그런데 이런 ‘외설적인 책들’이 베스트셀러였다고 해도, 그것이 그토록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경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 장 자크 루소의 연애소설
사실 장 자크 루소의 대표작은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신新 엘로이즈La nouvelle Héloïse』라는 연애소설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신 엘로이즈』는 1761년에 출간되어 40년 동안 115쇄를 찍었다. 로버트 단턴은 최소한 70쇄는 찍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린 헌트는 『인권의 발명』45쪽에서 프랑스 서지학 자료를 참조하여 115쇄라고 단정하고 있다. 115쇄라니! 그 당시의 문맹률을 감안하면 글자를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글자를 모르는 사람까지도 이 책을 읽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그 이유는 다음 쪽에 있는 〈크라코프 나무 아래〉라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책의 판본은 70종 이상이 있었으며 책을 시간 단위로 대여해도 모자랄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다. 프랑스대혁명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문화사학자 린 헌트Lynn Hunt, 1945~는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이 연애소설이 보편적인 인권을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비슷한 종류의 연애소설 역시 프랑스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해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논문이자 프랑스혁명의 성서’라고 평가받는 『사회계약론』은 1762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 프랑스대혁명이 있었던 1789년 이후 1791년에 한 번 더 찍었을 뿐이다. 그리고 학자인 조앤 맥도널드Joan Macdonald가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하고부터 2년 사이에 발표된 정치에 관한 소책자 1,114권을 조사한 결과, 겨우 12회 참조되었다.
이런 사실을 보더라도 ‘프랑스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대해 처음으로 연구했던 다니엘 모르네Daniel Mornet의 조사 결과가 설득력 있어 보인다. 모르네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조사하면서 18세기 개인 장서의 경매목록을 뒤졌다. 2만 권이나 되는 그 목록에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한 권 있었다. 겨우 한 권이라니! 로버트 단턴은 모르네의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만 권 가운데 한 권이라면 너무하지 않은가. 틀림없이 그 당시 사람들은 장 자크 루소를 계몽사상가라기보다 유명한 연애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루소의 『신 엘로이즈』는 원래 제목이 『알프스 산자락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두 연인의 편지』였고, 부제는 “쥘리, 또는 신 엘로이즈”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쥘리, 또는 신 엘로이즈”가 표지에 제목으로 등장했다. 이 제목이 당시 독자들에게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엘로이즈 이야기’는 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12세기 신학자였던 피에르 아벨라르는 제자인 엘로이즈를 사랑한 대가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삼촌에 의해 거세당했고 영원히 헤어져야 했다. 그 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편지들이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를 읽어보시라.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만남이 그랬듯, 『신 엘로이즈』에서도 두 주인공은 가정교사와 학생으로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다. 생프뢰는 가난한 평민 출신이었고, 쥘리는 스위스 귀족의 외동딸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신분의 차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생프뢰는 떠나야 했고, 쥘리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 러시아 군인 볼마르 남작과 결혼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볼마르 남작은 생프뢰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머무르게 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난 쥘리와 생프뢰는 서로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볼마르 남작이 있다. 쥘리는 남편을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이 소설은 쥘리가 물에 빠진 어린 아들을 구하고 갑자기 병들어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쥘리는 유서에서 “하루만 더 지났어도, 어쩌면 나는 죄를 지었을지 몰라요!”라고 고백한다. 이 결말을 두고 ‘정숙한 여인으로서 죽을 수 있는 기쁨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독자들에게 그런 기쁨보다는 가슴 저미는 고통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연스럽고 열정적인 사랑이 제도의 억압 때문에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면, 자신을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면 함께 울고 웃던 독자들이 그 폭압적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유서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면 더욱더 그런 확신이 든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갈라놓은 미덕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맺어줄 거예요. 저는 그런 행복한 기대 속에서 죽어요. 당신을 죄 없이 영원히 사랑할 권리를, 그리고 한 번 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권리를 제 생명과 맞바꾸어 얻게 되어 너무 행복해요.
― 『신 엘로이즈 2』, 473쪽
수많은 독자는 이런 쥘리의 죽음에 슬픔이 아니라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디드로 역시 “감성과 열정에 관해 그토록 많이 말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별로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이 작품이 검열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교황청에서도 이 소설에 대해 디드로와 같은 판단을 내리고 금서 목록에 올렸다. 그러나 그때도 ‘금서 목록’은 책의 명성을 드높이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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