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능이란 무엇인가
재능에 대한 이야기는 강의가 끝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예술가가 되려면 재능이 꼭 필요한가요?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겁니까?”
“강의가 끝났으니 간단하게 대답할게요.
재능은 꼭 필요합니다.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아니라
노력은 예술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선생님, 시간이 괜찮으면 좀 길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다행히 여유가 조금 있어요.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합시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서 마주 보고 앉았다.
학생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녹음을 시작했다.
이 글은 그 녹음을 풀어서 다듬은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충 생각해도 재능이란 게 분명히 있어요.
친구들을 떠올려보세요.
대화하는 모습만 해도 다들 조금씩 다릅니다.
태도나 말투, 기발한 정도, 생각의 속도, 표정,
유머러스함, 진지함 등등.
이렇게 다른 만큼 각자 다른 일에 좀더 적당한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소질이 확대되면 어떤 특별한 일에 대한 재능이 되겠지요.”
“선생님은 재능이 있어서 작가가 되신 건가요?”
“글쎄 그것 참 대답하기 어렵군요.
나는 어렸을 때 글을 잘 쓴다고 칭찬받은 적이 없습니다.
백일장에도 나가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텍스트에는 익숙한 편이었지요.
대답하면서 생각해보니 좀 묘한 데가 있긴 합니다.
우리 집에는 책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세 살 때부터 혼자 아장아장 걸어서
만화방을 찾아갔고 그때부터 책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온갖 종류의 책을 다 읽었죠.
읽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으니까요.
초등학교 시절이었을 겁니다. 선생님이 물었어요.
어떤 순간이 가장 행복하냐고.
‘새 책을 사들고 집으로 갈 때요.
책에 빠져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이렇게 대답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분위기가 싸늘하더군요.
왕따가 될 뻔했죠.
내가 처음으로 ‘글을 잘 쓴다’는 공개적인 칭찬을 받은 것은
스물다섯 살 때입니다. 그때는 돈을 벌어야 했어요.
너무나 가난해서 쌀 한 톨이 없어 굶는다거나
연탄 한 장 살 돈이 없어서 냉방에서 지내야 했으니까요.”
“그런 고생을 하신 분 같지 않아요.”
“그러나 그랬어요. 아무튼 그 당시 우연히 대학생현상논문
모집 광고를 봤습니다.
4·19혁명을 주제로 한 것이었는데, 상금이 꽤 컸어요.
50만 원이었는데 지금 가치로 보면 500만 원도 더 될 겁니다.
아마.”
“그 논문을 써서 상금을 받으셨군요.”
“그랬어요.(웃음)
그 당시에는 요즘과 달리 인터넷이 없었을 뿐 아니라
책 한 권을 읽고 그 내용을 실마리 삼아 또다른 책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만큼 자료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도서관도 폐가식이라 한권 한권 신청하고 기다렸다가
받아봐야 했어요.
볼 만하다 싶어도 충분히 빌려주지 않았죠.
자료를 뒤져보고, 참고할 만하면 복사를 해서 모았어요.
당시에는 복사비도 꽤 비쌌던 때라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논문을 써 내고 보니 라면 박스 두 개에 담아야 할 만큼
복사를 했더군요.”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면서 어떻게 그러셨어요?”
“필요할 때 돈을 빌려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가끔은 외상으로도 가능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당연히 상금을 받게 될 것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읽고, 생각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에 몰입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료를 준비하는 데 돈이 많이 들었지만,
상금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은 아예 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그랬더니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더군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 내가 산문을 비교적 잘 쓰나 보다.
그런데 혹시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더 해봤어요.
두 번째는 남북통일을 주제로 현상논문을 모집하더라고요.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써 냈죠.“
“두 번 다 현상금을 받으셨다는 말씀이죠?”
“하하 그랬어요.”
“그러면 선생님 말씀은, 무슨 일엔가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재능이라는 뜻인가요?”
“거칠게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음악도 좋아하고, 게임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해요. 가끔 그것들에 몰입하기도 하고.”
“악기로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려본 적도 있으세요?”
“피아노와 클래식기타를 아주 조금, 그림도 아주 조금
해본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고 즐거울 뿐 아니라 가끔 몰입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자주 깨어버리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연주를 하고 있다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잘하려면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괴로웠던 적이 있었어요.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는 내가
싫거나 미워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경우는 재능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건가요?”
“어쩌면 그럴 겁니다. 테니스 선수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지금은 다 못하는 일이 되어버렸죠.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글 쓰는 일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군요.”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애쓴 적이 별로 없어요.
즐겁게 독서하고 산책하며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있었어요. 오래전 일이지만 만화가 이현세 씨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가 그러더군요.
젊을 때 직장을 가졌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무실 서류 위에다가 온통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고.
그런 상황과 비슷했어요.”
“그렇다면 선생님, 어떤 일에 재능이 있다는 뜻은
저절로 몰입되는 것이로군요.”
“재능을 영어로 기프트gift라고도 하는데 적절한 표현입니다.
태어날 때 누구나 받게 되는 선물이거든요.”
“저는 제가 받은 그 선물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걸 제가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것도 당연한 겁니다. 누구나 어떤 재능을 타고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쉽지 않아요.
자기 것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고민스러운 겁니다.”
“왜 자기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것일까요?”
“그건… 발견되지 않고 발명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럴 리가요!”
“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만 짚어야겠어요.
몰입과 중독을 구별해야 합니다.
경계선이 아주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거칠게 규정하면
이렇습니다. 몰입하면 즐겁고 행복합니다.
강한 쾌감을 느끼는 거지요.
언제든 다시 하고 싶은 일이 됩니다.
반면 중독은 맹목적인 욕구나 습관의 노예 상태입니다.
하고 나서 후회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합니다.
통제가 되지 않는 거지요.
몰입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상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중독은 저절로 빠져듭니다.
헤어나오기 힘든 구렁텅이에 빠진 거지요.”
뜨거운 나의 마음제목을 보고 그림을 보면 더 뜨겁다.그림을 보는 마음에 제목이 상상력의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뜨거운 마음은 터질 듯 번진다.주체할 수 없어 감싸 안는다.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손은 파란색으로 느껴질 만큼 차갑다.재능은 이런 것이다.생각만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있따면 '그것'에 대해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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