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루주는 캄보디아 전 인구의 거의 4분의 1에 이르는 약 2백만 명의 캄보디아인들을 처형, 기아, 질병과 강제노동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책은 크메르루주의 대학살 시기, 나와 우리 가족의 생존 이야기이다. 이 책에 쓰인 사건들은 내 경험이지만, 내 이야기에는 캄보디아인 2백만 명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그 시기에 여러분이 캄보디아에 살고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또한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프놈펜
1975년 4월
프놈펜시는 태양이 안개를 뚫고 불볕더위를 쏟아내기 전에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맞으려 일찌감치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들은 아침 6시부터 먼지투성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부딪치며 달린다. 검고 흰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이 가게문을 활짝 열자, 국수장국 냄새가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노점상들은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만두며 훈제 소고기 꼬치구이며 구운 땅콩을 가득 쌓은 포장마차를 인도로 밀고 와서 그날의 장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인도에서는 색깔이 화려한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아이들이 포장마차 주인들의 불평과 고함소리를 무시하고 맨발로 공을 차고 있다. 넓은 대로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삐걱대는 자전거 소리, 여유 있는 부자들의 소형차 소리로 윙윙거린다.
정오쯤 기온이 38도에 달할 때에야 거리는 다시 조용해진다. 오후 2시에 일터로 다시 돌아오기 전, 사람들이 열기를 피해 점심을 먹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려 집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프놈펜 중심가에 있는 아파트 3층에 살아서 나는 차량과 소음에 익숙하다. 거리에 신호등이 없는 탓에 경찰들이 교차로 한복판에 돋워 올린 금속 상자 위에서 교통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도시는 늘 심각한 교통체증에 걸린 것 같다. 교통체증이 심해도 시클로를 모는 운전사는 어떻게든 뚫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엄마와 나에게 시클로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다. 시클로는 앞쪽에 자전거를 매단 커다란 휠체어와 비슷하다. 돈을 내면 시클로 운전사는 목적지가 어디든 데려다준다. 우리 집에는 자동차 두 대와 트럭 한 대가 있지만 시클로가 더 빠르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갈 때면 종종 시클로를 타곤 한다. 운전자가 혼잡한 도시의 거리를 뚫고 움직일 때면 나는 엄마 무릎에 앉아서 튀듯이 움직이며 소리 내어 웃는다.
오늘 아침, 나는 우리 아파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국수가게의 큰 의자에 앉아 있다. 차라리 친구들과 사방치기 놀이를 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큰 의자에 앉아 있으면 나는 언제나 뛰어내리고 싶다. 내 발이 공중에 떠서 대롱거리는 게 싫다. 오늘은 벌써 엄마가 두 번이나 의자에 서 있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의자 아래로 다리를 내리고 앞뒤로 흔드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
아빠는 출근하기 전 아침에 엄마와 우리를 데리고 국수가게에 가는 걸 좋아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게는 아침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손가락이 그릇 바닥에 부딪쳐 쨍그랑대는 소리, 뜨거운 차와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는 소리, 가게 안에 맴도는 마늘과 고추와 생강 냄새, 고기국 냄새에 허기진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우리 건너편에서는 한 남자가 젓가락으로 국수를 집어 막 먹으려던 참이다. 그 남자 옆에는 한 여자아이가 해선장 소스에 닭고기를 찍어 먹고 있고, 그 애 엄마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다. 국수는 캄보디아인들과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아침식사다. 우리는 주로 이 국수를 먹거나, 별식으로 아이스커피와 프랑스빵을 먹는다.
“가만히 앉아 있어.”
엄마가 대롱거리는 내 다리를 붙잡자 나는 엄마 손을 차버린다.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재빨리 내 다리를 찰싹 때린다.
“얌전히 좀 앉아 있지 못해? 넌 다섯 살이야. 아무튼 제일 말썽꾸러기라니까. 언니들 좀 닮아봐. 커서 어떻게 얌전한 숙녀가 될래?”
엄마가 한숨을 내쉰다. 예전부터 줄기차게 들어온 말이다.
아름다운 우리 엄마는 여자아이처럼 굴지 않는 나 같은 딸 때문에 힘든 것이 분명하다. 엄마 친구들은 엄마의 큰 키와 늘씬한 몸매와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를 부러워한다. 나는 엄마 친구들이 엄마의 아름다운 용모를 두고 떠들어대는 소리를 종종 엿듣곤 한다. 그들은 내가 아이라서 관심 없어 할 거라 여기고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엄마의 완벽한 반달눈썹과 아몬드 모양의 눈, 서양인처럼 높고 곧은 코와 계란형 얼굴에 대해 수다를 떤다. 키가 168센티미터쯤 되는 엄마는 캄보디아 여성들 사이에서 아마존이나 다름없다. 엄마는 자신이 온전한 중국 혈통이라 키가 크며, 따라서 중국 혈통인 나도 언젠가 키가 클 거라고 말한다. 지금은 일어서면 키가 겨우 엄마 엉덩이까지만 닿으니,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우리 캄보디아의 모니니아트 왕비님은 음전하시기로 유명해. 얼마나 조용히 걸으시는지 아무도 왕비님이 다가오는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하더라. 웃을 때도 이를 드러내지 않으시고, 말할 때도 사람들 눈을 빤히 바라보지 않으시지. 정말 고상한 분이셔.”
엄마가 나를 쳐다보며 머리를 흔든다.
“음…….”
나는 이렇게 대꾸하고 작은 병에 든 콜라를 벌컥벌컥 마신다.
엄마 표현에 따르면 나는 목말라 죽을 것 같은 소처럼 뛰어다닌다. 엄마는 나에게 어린 숙녀다운 얌전한 걸음걸이를 가르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맨 먼저 발뒤꿈치부터 땅바닥에 디딘 다음, 발가락을 오므려 앞발바닥을 땅에 땋게 한 뒤, 마지막으로 발뒤꿈치를 들고 발가락을 튕기며 걸어야 한다. 이 모든 행동을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조용히 해야만 한다. 나에겐 너무 까다롭고 고통스러운 주문이다. 게다가 나는 뛰어다니는 게 좋다.
“요전처럼 얘가 곤란해질 거예요.”
엄마가 아빠에게 말하다가 웨이트리스가 국수장국을 가져오자 입을 다문다.
“닭고기가 들어간 프놈펜 스페셜 국수와 뜨거운 물 한 잔입니다.”
웨이트리스가 감자국수가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맑은 장국을 엄마 앞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소고기 내장과 힘줄이 들어간 매콤한 상하이 국수 두 그릇입니다.”
웨이트리스는 자리를 뜨기 전에 생숙주와 얇게 썬 라임 조각, 잘게 채 썬 양파, 붉은 고추, 민트 잎이 수북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는다. 내가 양파와 생숙주와 민트 잎을 장국에 넣자, 엄마가 내 숟가락과 젓가락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냅킨으로 닦아서 건네준다.
“식당들은 깨끗하지 않지만, 이 뜨거운 물이 세균을 죽여줄 거야.”
엄마는 엄마 아빠의 숟가락과 젓가락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 엄마가 국수를 먹는 동안 나는 고추 두 개를 그릇에 넣는다. 아빠가 대견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릇 가장자리에 고추를 대고 숟가락으로 으깨면 내가 좋아하는 맛이 난다. 천천히 장국을 마시자 곧바로 혀가 화끈거리고 콧물이 떨어진다.
오래전에 아빠가 한 말이 있다. 매운 걸 먹으면 물을 더 많이 마시기 때문에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을 많이 마시면 땀을 더 많이 흘리게 되고, 땀은 몸속의 노폐물을 더 많이 씻어낸다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나를 향한 아빠의 미소가 마냥 좋다. 그래서 또 고추 접시로 젓가락을 가져다가가 소금통을 건드리는 바람에, 소금통이 떨어져 통나무가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가버린다.
“그런 짓 좀 그만해!”
엄마가 벌컥 화를 낸다.
“실수였잖소.”
아빠가 엄마에게 말하며 내게 미소를 짓는다.
엄마가 아빠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다.
“애를 부추기지 마요. 닭싸움 사건 잊었어요? 그때도 실수였다고 했는데, 얘 얼굴 좀 보라고요.”
엄마가 아직도 그 일로 화를 내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건 아주 오래전 내가 시골 외삼촌 집에 가서 옆집 딸과 놀 때 일어난 일이었다. 그 애와 나는 외삼촌네 닭을 갖고 가서 다른 아이들과 닭싸움을 벌이곤 했다. 내 얼굴에 여전히 큰 상처가 남아 있지 않았다면 엄마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거다.
“그런 일을 벌여도 잘 헤쳐나오는 게 얼마나 다행이오. 그게 바로 얘가 영리하다는 표시라오.”
아빠는 누구에게든 항상 내 편을 든다. 아빠는 영리함이 한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며, 내가 일으킨 그 모든 말썽이 실은 용기 있고 총명하다는 표시라고 말한다. 아빠 말이 옳든 그르든 나는 아빠 말을 믿는다. 아빠가 내게 한 모든 말을 믿는다.
엄마가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하다면 아빠는 너그러운 마음씨로 사랑받는다. 아빠는 키가 165센티미터이고 몸무게는 68킬로그램 정도로, 늘씬한 체형인 엄마와 비교해서 몸집이 크고 다부지다. 아빠를 안으면 부드럽고 푹신한 커다란 곰 인형이 떠오른다. 아빠는 캄보디아인과 중국인의 혼혈로, 머리카락은 검고 곱슬곱슬하며, 코는 넓적하고, 입술은 두툼하고, 얼굴은 둥글다. 눈은 보름달 모양에 땅처럼 밝은 갈색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은 입으로뿐 아니라 눈으로 웃는 모습이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만나서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좋아한다. 승려였던 아빠는 엄마가 물을 긷고 있는 시냇가를 우연히 지나가다가 첫눈에 엄마에게 반했다. 엄마도 친절하고 강인하며 잘생긴 아빠와 사랑에 빠졌다. 아빠는 승려 생활을 그만두고 엄마에게 청혼했고 엄마는 승낙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아빠가 피부도 검고 너무 가난하다며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집을 나와 아빠랑 둘이서 도망쳤다.
아빠가 도박에 손을 대기 전까지 두 분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살았다. 아빠는 처음에 도박을 잘해서 여러 번 돈을 땄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먼 곳까지 가서 집과 돈을 모두 걸었다. 아빠는 그 도박에서 모두 잃었고, 엄마는 아빠가 도박을 그만두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아빠는 가족을 잃을 뻔했다. 그 뒤로 아빠는 절대 카드 게임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카드 게임을 하거나 카드를 집에 가져오는 것도 금지한다. 그러다 걸리면 비록 나라도 아빠에게 엄청난 벌을 받을 거다. 도박했던 것 말고는 아빠는 친절하고 너그럽고 사랑이 깊은 분이다. 아빠는 헌병대장으로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아빠를 실컷 보기가 힘들다. 엄마는 아빠가 남을 짓밟고 성공한 게 아니라고 한다. 아빠는 가난했던 시절을 절대 잊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다. 사람들은 정말로 아빠를 존경하고 좋아한다.
“사람들은 로웅을 아주 지혜롭고 영리한 아이라 여길 거요.”
아빠가 이렇게 말하며 내게 윙크한다. 나는 아빠를 보고 씩 웃는다. 영리하다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세상에 대해, 이를테면 벌레와 곤충부터 닭싸움이라든가 엄마가 방에 걸어둔 브래지어에 이르기까지 호기심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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