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국민들:
미국 숙의 민주주의의 역사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가 꼭 직선적이진 않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계획하려면 그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다 보면 오늘날 미국이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와, 그것을 위한 노력들을 의심하게 하는 아픈 역사를 만나게 되리라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역사의 아름다운 면을 보는 게 좋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역사적인 검토를 해야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역사적 여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더 잘 깨달을 수 있다. 더욱이 자신의 역사를 겸손하게 평가해야만, 정제되지 않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무분별하게 수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식 역사 교과서에 따르면 미국은 끊임없는 문화적, 제도적 개선을 통해 조금씩 진전해왔다. 주식 가격이 장기적으로는 상승하더라도 단기간에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것처럼, 이 나라 미국은 지난 200년간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서서히 민주적 정치체제를 향해 움직여왔다. 독립을 선언한 뒤 곧 헌법을 제정했고, 또한 권리장전을 헌법에 포함시킴으로써 이제 막 국가를 만든 다양한 사람들에게 인권이 있음을 선언하여,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가능케 했다. 이후 헌법상 인권을 명시하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필수로 여겨진다. 원래 상원의원은 주의회에서 선출했으나, 1913년 수정헌법에 따라 상원의원도 국민의 직접투표로 선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 뜻과 국가정책 형성 사이에 있던 장벽이 제거됐으며, 유권자의 힘이 더 확대됐다. 동시에 많은 주정부는 주민발의 입법initiative, 주민 소환recall 등 직접민주주의 장치를 도입하고 실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제도들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란도 함께 일으키며) 실행되고 있다.
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와 종류도 점차 확대됐다. 1865년 미국 남북전쟁 종료 후의 흑인 시민권 인정, 1919년 여성 투표권 입법은 물론, 소수집단에게도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는 여러 시민권리 운동의 결과, 투표할 수 있는 시민의 범위가 점점 확대됐다. 투표 연령은 1972년에 18세로 낮춘 것은 투표 가능 인구를 더 넓혔다. 이후에도 유권자를 확대하기 위해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투표 등록을 더 쉽게 하고, 부재자 투표를 늘리고, 사전투표와 우편투표 등을 실시하며,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투표소를 지정하는 것 등이다.
선거권 확대를 넘어서, 최근의 수많은 변화들은 시민의 범위와 권리를 향상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인들은 집회 결사의 자유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명백히 거부해왔다. 즉 한때 미국 정부가 이른바 반정부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하원의회 산하에 ‘반미활동 조사위원회House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나 연방수사국 산하에 간첩방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 적이 있지만, 시민들의 저항으로 사라졌다. 워터게이트 사건 백서가 발행된 이후 정보자유법이 제정돼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확대됐고, 투표권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종류도 증가했다. 특히 최근에는 ‘투표권자를 위한 정보’ 등 여러 정보들이 인터넷에도 공개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점에 근거를 두고, 민주주의 이론가인 로버트 달Robert Dahl은, 미국의 역사가 민주주의로 가는 길 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다두정치polyarchy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혹은 그 대표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이슈들이 토론 의제도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지형에서 벌어지는 다른 몇몇 사건들을 보면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가 꼭 직선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런 이례적인 일들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걸 보면 민주화 과정이 잠시 혹은 장기간 쇠퇴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근래에 일어난 몇 가지 경향이나 사건들이 민주적 제도를 약화시킨 것 같다. 첫째, 신문이나 TV 등 언론 매체들은 19세기 이후 엄청난 기술적 변화를 겪어 왔는데, 그와 동시에 그들의 영업 구조도 바뀌어왔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언론사 소유권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됨에 따라 제4의 권력기관인 언론의 민주적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한다. 1850년대와 195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1900년 즈음에도 언론사가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이 전쟁을 치를 때마다 시민들의 자유에 제한이 가해졌다. 최근 사례로 2001년의 애국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제이 마틴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철학자 존 듀이가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한 이유는 전쟁이 날 경우 전체주의라는 광기가 불가피하게 힘을 얻을 것이고, 그러면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걱정했기 때문이다. 존 듀이는 언론활동 제한 같은 제도적 변화만 걱정한 게 아니다. 전쟁 중엔 시민들의 태도나 습관도 민주주의와 멀어질 수 있다는 점도 염려했다. 존 듀이는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시민문화가 생동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았다. 관용, 시민으로서의 의무, 공공문제에 깨어 있음, 정치적 효능감 등이 바로 그런 생동하는 시민문화의 요소들이다.
민주적 생활에서 이런 문화적 요소들이 매우 중요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요소들의 강약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민주적이고 공적인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수록 오히려 문화적 습관이나 전통을 잃고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tie en Amerique》에서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1830년대 미국의 문화적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다. 미국의 훌륭한 민주적 제도를 떠받치는 하부구조가 바로 그런 문화라고 그는 생각했다. 최근에 나온 학술서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로버트 퍼트넘Reboert Putnam이 지은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일 것이다. 민주적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며, 신뢰와 네트워크 등을 요소로 하는 ‘사회적 자본’이 미국에서 급격히 줄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사회적 신뢰와 시민 참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데 공감한다.
계속된 실험으로 발전하다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진보와 쇠퇴 둘 중 하나의 직선형 운동으로 보는 대신, 대중민주주의populist democracy에서부터 온건한 공화주의는 물론 엘리트 공화주의까지 넓은 범위의 연속선상에 있는 여러 지점에서 계속된 실험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유용할 것이다. 대중민주주의 즉, 근본민주주의radical democracy는 가능한 한 많은 시민들이 결정을 위한 투표에 참여할 것을 강조한다. 국민투표가 대중민주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대중의 의견이란 썰물과 밀물처럼 변하기에, 이와 별개로 선출된 대표자들이 숙의할 수 있는 제도를 강조한다. 우리가 보기에 미국은 대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사이에서 진동을 해왔다. 즉 처음 헌법을 만들 때부터 연방주의자와 민주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둘 사이의 균형을 정기적으로 다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진보의 시대’라 불렸던 1820년대처럼 대중민주주의 쪽으로 기울었던 때도 있었다. 다른 경우 미국은 좀 더 엘리트주의에 가까웠는데, 예를 들어 1700년대 말 건국 시대나, 1800년대 말 도금 시대Gilded Age 등이 그랬다.
대중민주주의가 잘못됐을 때 나타나는 폭민정치mobocracy, 혹은 엘리트 공화주의가 잘못됐을 때 나타나는 소수 독재금권정치라는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들이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또한 이런 안전장치들도 시대에 따라 수정되고, 폐지되고, 공격받거나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개념도 문화적 경향에 따라 한때는 대중주의로 기울었다가 또 한때는 엘리트주의로 기울기도 하면서 우리 사회의 제도와 사회적 실천을 형성해왔다.
이런 변화들은 단지 민주주의의 유행이나 취미의 변화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민주적 실천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거나 약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의 이상으로부터 진짜로 멀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는 민주적 실천들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민주주의를 정치 시스템에 다시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50년 동안 잠들었다 다시 깨어나기 시작한 숙의 민주주의라는 예술 작품이 그동안 어떻게 태어났다가 쇠퇴하고 다시 깨어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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