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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막걸리와 맥주는 사실 같은 술이었다?
1달러에 기적을 맛보게 하는 술
2019년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러시아 동료 고고학자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는 친구였기에 저녁 식사 장소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터였다. 식사를 하러 자리를 뜨려던 찰나, 러시아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1달러의 기적 같은 술이 진짜 있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친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한국에 오래 살았던 러시아 지인의 말을 들었다면서, 한국 내에서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이 있는데,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고, 가격도 1달러 정도이지만 정말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했다는 것이다. 시원하게 해서 먹으면 토카이헝가리의 화이트 와인으로 달콤한 맛이 특징의 청량감이 느껴지는 데다 독특한 곡물 향은 덤이고 여기에 유산균도 풍부해서 건강에도 좋다고 말이다. 친구가 말한 술을 막걸리였다.
사실 러시아인들에게 싼 술은 절대 피해야 하는 위험한 것을 뜻한다. 구소련 시절, 금주령을 피해 메틸알코올이 든 밀주를 먹다가 종종 인명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고 게다가 가격까지 싸다고? 친구는 지인의 말이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내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계획을 바꿔 친구에게 파전과 막거리를 대접했다. 나의 러시아 친구는 그동안 이렇게 좋은 술을 자신에게 단 한 번도 대접하지 않았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서운해했다.
제사에 쓰인 막걸리
막걸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탁주다. 탁주는 증류주를 만들기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만들어 마신 주종이다. 막걸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술 자체가 고고학 유적에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정보를 조합해 처음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던 시기를 짐작할 수는 있다. 막걸리의 기원을 따져보자면, 주재료인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이후에야 만들어 마셨을 테니 우리나라에서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시점, 즉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이후부터 주조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막걸리 재료가 꼭 쌀뿐인 것은 아니므로 그 전부터 만들어 먹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곡물이나 구근류칡이나 감자같이 뿌리를 먹는 식물, 과일이 풍부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만들게 되었다고 본다. 근동 지역에서는 1만 5,000년 전부터 야생에서 풍부하게 자라는 밀을 이용해 맥주를 만들었고, 이후 이집트 문명에서도 맥주를 널리 만들어 마셨다. 그런데 이때의 맥주는 지금처럼 청량하고 맑은 음료가 아니었다. 오히려 탁하고 걸쭉한 막걸리 같은 것이었다. 즉, 초기에는 맥주와 막걸리가 같은 종류의 술이었다.
유물로 현전하지 않은 술에 관한 정보를 고고학에서 알아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술을 만들고 담아둔 그릇을 발굴하는 것, 그릇에 남아 있는 술 찌꺼기를 찾아내는 것.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거나 만드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나 벽화를 찾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허난성 자후贾湖, Jiahu 유적에서 막걸리를 담았던 흔적이 남은 토기가 발견되었다. 출토된 토기 바닥에 남겨진 찌꺼기를 분석하니 쌀에 꿀과 과일을 섞은 막걸리였음이 밝혀졌다. 꿀과 과일은 발효를 위해 효모 대신 넣은 재료들이었다. 밀랍이나 당분이 풍부한 포도 같은 과일 껍질에는 맥주효모균이 붙어 있는데, 이 균들이 곡물 속 전분과 결합하고 발효되면 술이 만들어진다. 자후 유적의 제단 인근에 묻힌 17개의 토기를 분석해보니 모두 비슷한 성분의 쌀과 과일이 검출되었다. 학자들은 제단 근처에 술독을 묻어서 잘 관리하다가 제사 때가 되면 그것을 꺼내어 함께 마시면서 신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한다. 자후 유적의 토기를 통해 제사 때 음복하는 풍습의 역사가 1만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제사 시 음복하는 모습이 새겨진 유물이 발굴되었다. 대전에서 발견된, 약 2,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청동기 유물에는 농사짓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솟대에는 새가 앉아 있고, 그 앞쪽에는 벌거벗은 채로 밭을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밭을 가는 사람들 옆에는 술 단지가 놓여 있다. 이 청동기는 어딘가에 걸 수 있게 만들어졌는데, 샤먼이 이 청동기를 몸에 걸치고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밭을 가는 모습도 진짜 밭을 가는 장면이라기보다는 풍년을 기원하며 밭을 가는 일종의 의례를 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빨대로 빨아 마신 맥주
맥주와 막걸리는 사뭇 다르다. 탁한 막걸리와 달리 맥주는 청량감이 있는 시원한 맛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인들이 마시던 맥주는 막걸리와 마찬가지로 탁하고 걸쭉한 액체였다.
100여 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유적에서 맥주를 즐기는 모습이 묘사된 4,600년 전의 인장seal이 발견되었다. 지금의 맥줏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종업원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서 혼자 홀짝대며 마시는 혼술족이 있는가 하면, 둘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도 있다. 빨대의 수로 보아 아마 4명까지 마셨을 것 같다. 마치 대용량으로 술을 시키는 지금의 맥줏집과 너무나 흡사하다. 맥주를 빨대에 꽂아 마시는 이유는 막걸리처럼 탁하기 때문이었다.
빨대로 맥주를 마셨음을 보여주는 유물은 수메르 유적뿐 아니라 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도 발견되었다. 2022년 1월, 러시아 카프카스 초원 지역의 약 5,500년 전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빨대가 발견되었다. 마이코프 문화라 불리는 이 유적은 사실 130년 전에 이미 발굴된 것이었다. 당시 무덤 주인공의 옆에서 청동 막대기가 발견되었고, 막연히 청동비녀와 같은 장식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 끝에 구멍이 뚫린 건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 유물을 다시 분석한 결과, 구멍이 뚫린 쪽에서 보리 분말 흔적이 발견되었다. 맥주를 만드는 주재료인 보리의 기원이 근동이니 그곳의 맥주가 아마 카프카스 지역까지 전래되었던 것 같다. 즉, 이 무덤은 고고학 자료로 확인된 세계 최초의 맥주 애호가의 무덤인 셈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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