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사라지는 죽음을 계속 고민하다
김윤영
2010년부터 ‘빈곤 철폐를 위한 사회연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을 비롯한 빈곤정책과 주거권, 강제퇴거 반대 등을 이슈로 활동하고 있다.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악마화하니까
반빈곤연대활동을 줄여서 ‘빈활’이라고 부른다. 빈곤을 유발하는 사회적 구조를 파악하고 현장을 돌아보며 빈곤 철폐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활동이다. 소외된 사람이나 빈민이 발생하는 재개발, 철거 지역에 연대한다. 12년 차 반빈곤 활동가 김윤영을 만나 빈활에 참여하면서 생긴 고민을 풀어놓았다.
플씨
저는 빈활에 참여하면서 해소되지 않은 고민이 있었어요. 어떤 혐오, 즉 빈민은 ‘게으르다’, ‘더럽다’, ‘위험하다’ 이런 부정적 편견이 있잖아요. 이런 편견에 대응하는 방법의 하나가 빈민을 불쌍한 대상으로, 시혜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겠죠. 그러면 소위 ‘벤츠 노점상’이라든가 ‘자영업자 철거민’ 식으로 시혜의 시선에 안 맞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이런 시선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겨요. 빈활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고요. 처음 반빈곤운동을 접할 때의 딜레마,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질문에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윤영
부정적 편견, 예를 들어 ‘스스로 일하지 않는, 더럽고 냄새나는, 폭력적인’과 같이 몇몇 사람이 가진 특징을 전체의 이름으로 덮어씌울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들이 차별받는 집단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노숙인을 보고 다들 “저렇게 맨날 술을 먹는데 나아질 리가 있냐”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노숙인 모두가 술을 먹는 건 아니에요. 마시는 분들이 오랜 시간 거기서 머물다 보니까 눈에 띄는 거죠. 사람들은 쉽게 그걸 전체의 특징으로 치환하죠. 실제로 그런 모습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겪어온, 겪고 있는 빈곤의 결과이지, 그 사람이 가진 ‘본래 특징’이라고 보긴 힘들어요. 사람들은 ‘그래서 가난해졌다’라고 하지만 그건 선후관계가 바뀐 얘기죠. 예를 들어 빈곤층에 대해서 무력하다든지, 진취적이지 않다든지, 좀 더 장기적인 시선으로 계획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식의 비판이 특히 많고, 이런 점을 교정하는 정책이 탈빈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무력함을 극복하도록 돕는다’라고 얘기하는데, 그 무력함이 왜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보면 저는 너무너무 이해되거든요. 자신의 시도를 정당하게 보상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돈을 모으는 일도 월급이 500만 원인 사람은 100만 원씩 떼서 모으고 400만 원을 쓰고 살면, 그래도 1년이 지나면 1,200만 원이 모일 거 아니에요. 그에 비해 월급이 100만 원인 사람은 20만 원씩 모으려고 해도 일상에 엄청 스트레스가 오거든요. 그러다가 치과 한 번 갔다 오니까 100만 원 나갔어, 그러면 진짜 더 이상 돈 모으기 싫죠.
사람들을 다양하게 총체적으로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빈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결과인 현재 상태를 바라보는 구조적인 시선, 이 사람의 경험이 어땠는지 조금 더 상상할 수 있는 통시적인 관점이 필요하고요. 구조적인 시선, 통시적인 관점이 당장 이 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을까를 알려주진 않겠죠. 그래도 일단 그 위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게 필요해요. 빈민이 유일하게 인정 받는 고유성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딱 부합할 때잖아요. 그걸 벗어나면 악마화되기 쉬운 것 같아요. 꼭 노점상 철거민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열심히 연대했는데 “저 사람들 연봉 5,000만 원인데” 하면 갑자기 다들 띠용 하잖아요. “생산직 노동자 연봉이 5,000만 원이야?”라면서. 그래서 질문 주신 부분은 노점상 철거민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고 차별받는 집단 모두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금방 사라지는 죽음을 계속 고민하다
윤영이 활동하는 단체는 ‘빈곤 철폐를 위한 사회연대’이다. 2001년 최옥란 열사가 ‘민중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명동성당 앞에서 진행한 농성을 계기로 결성했다.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를 목표로 하는 연대체로, 생활소득 쟁취, 불안정주거민의 주거권·생활권 쟁취, 공공서비스의 시장화 저지를 비롯해서 사회 전체적인 빈곤 문제, 빈곤에 따른 차별 문제, 빈곤 정책이나 복지 정책의 보수화 문제에 대응하고 발언한다. 매년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행사, 홈리스 추모제, 반빈곤영화제, 반빈곤연대활동 등을 주관한다.
플씨
어떤 계기로 ‘빈곤 철폐를 위한 사회연대’이하 빈곤사회연대 활동을 시작했나요?
윤영
학생운동 마치고 사회운동으로 진출을 앞두고 있을 때 빈곤사회연대가 사람을 구하고 있었어요. 마침 제가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오게 되었죠. 대학생 때 빈활에 매년 참가했고, 용산 참사와 같은 사건이 활동하는 데 중요한 구심이었어요. 거리홈리스 상담 활동도 계속했고요. 학생운동을 함께한 동기들이 제게 추천한 점도 작용했어요. 처음에는 ‘반빈곤운동에 뼈를 묻겠다’라는 생각으로 오지 않았어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 가운데서 좋아하는 단체잖아, 그러면 한 번 해볼까? 짧으면 3년 길면 5년, 일단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10년은 해야지, 뼈를 묻겠어’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얼레벌레 왔어요. 그렇게 일하다 보니까 10년이 넘었네요.
플씨
빈곤사회연대는 반빈곤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빈곤 퇴치나 빈민운동이 아니라 ‘반빈곤’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걸 목표로 하는 운동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윤영
보통 빈곤운동이라고 하면, 밀레니엄 개발 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유엔에서 2000년에 채택된 의제로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을 반으로 줄인다는 내용나 절대빈곤 퇴치운동 같은 것들이 있죠. 그런데 우리 단체는 신자유주의 사회 아래 강화되는 경쟁과 착취로 빈곤이 심화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게으름’으로 빈곤의 원인을 돌리는 것에 반대하고 사회구조에서 발생한 문제로 인식하죠. 그런 맥락에서 반빈곤운동을, 빈곤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결과임을 인지하되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지 않는 태도라고 이야기합니다. 계속 현재의 조건을 ‘지양’하면서, 빈곤이 구조라는 결과라는 점을 환기하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빈곤율을 몇 퍼센트로 낮추자든지, 평균 소득 수준은 얼마까지 하자든지 하는 목표를 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현재 빈곤한 상태인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갈등을 조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 나갈 때 빈곤 없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의 단초가 마련된다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빈곤에 맞선 다양한 사람들의 연대를 꾸려나가는 것이 빈곤사회연대의 목표예요.
플씨
주체를 강조해서 빈민운동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반빈곤운동인 이유가 있을까요?
윤영
IMF 외환위기 이후에 등장한 빈민이 처하는 조건이 철거민, 노점상 등 예전부터 이어져 온 빈민운동의 맥락과 달라졌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저임금 등 불안정한 노동조건 때문에 일상적으로 빈곤을 경험하잖아요. 기존의 빈민운동은 노점상, 철거민과 같이 특정한 이름이 있었지만, ‘빈민운동’이라는 말로는 이제 새로운 빈곤 문제를 담기 어려워졌죠. 철거민과 노점상도 철거, 노점 문제로만 빈곤을 경험하는 건 아니거든요. 한 사람의 경험 안에도 빈곤의 모습은 다양해요. 장애인 가구원이 있는 노점상이나 파산한 철거민처럼요.
플씨
‘노점상·철거민 등 전통적 빈민운동을 비롯해 홈리스·장애인 등 새로운 빈민운동과 빈곤 문제를 연결하고 지속해서 사회운동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한다’라는 빈곤사회연대의 방향성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어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빈곤이 어떤 사회적 조건이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를 띠므로 우리가 빈곤 문제랑 무관하다고 얘기할 순 없겠네요.
윤영
그래서 ‘반빈곤’이라는 관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빈민운동이랑 반빈곤운동이 대당하는 건 아니에요. 기존에는 ‘빈민’이라는 호명을 통해 주체화하고 모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빈곤 문제를 다룰 필요성이 생겼죠. 산업화 시기에는 이농을 통해서 만들어진 도시 빈민이라는 집단이 있었어요. 그런데 IMF 이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빈곤이나 지금 굉장히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빈곤은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런 새로운 범주들을 통과하기 위해서 반빈곤이라는 관점이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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