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세계의 통일성
과학과 종교에 대하여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와 나눈 대화
Steven Weinberg
1933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텍사스대학교 물리학 교수다. 1979년 노벨물리학상 외에 오펜하이머상, 대니하이네만 수리물리학상 등을 받았다. 국내 소개된 책으로 『최초의 3분』, 『최종 이론의 꿈』, 『과학전쟁에서 평화를 찾아』 등이 있다.
과도한 존경심은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스티븐 와인버그가 대화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나는 우주의 탄생과 구조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만한 그 물리학자를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와인버그는 1933년 뉴욕 시에서 태어났다. 1967년에 하버드대학교 이론물리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1979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과학자로서뿐 아니라 자연철학자와 저자로도 탁월한 업적을 이뤘다. 빅뱅 직후를 다룬 그의 베스트셀러 『최초의 3분』은 한 세대 전체를 물리학에 열광하게 했다. 나도 그 세대다. 지금도 그는 과학과 종교에 대한 유려한 에세이를 통해 끊임없이 논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내가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의 단출한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소심함은 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와인버그는 1982년부터 그 방에서 연구해왔다. 그는 수학 기호로 가득 찬 칠판 앞에 앉아 있었다. 그냥 앉은 채로 나에게 자리를 권한 그는 곧바로 말을 걸어왔다. 대화는 마치 우리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화기애애했다. 그는 몇 번이나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의 양손은 지팡이의 도금된 둥근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슈테판 클라인 와인버그 교수님, 교수님이 일생 최대의 발견을 빨간색 스포츠카 안에서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스티븐 와인버그 예, ‘쉐보레 카마로’ 안에서였죠. 때는 1967년. 당시에 나는 원자핵을 뭉쳐놓는 강한핵력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마리를 못 찾고 헤매는 중이었어요. 계산을 하고 또 해봐도 질량이 0인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결과가 자꾸 나왔죠. 그런데 그 결과는 모든 실험과 어긋났어요. 그때 갑자기 그 질량 없는 입자가 다름 아니라 광자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슈테판 클라인 쉽게 말해 광자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빛 입자죠.
스티븐 와인버그 예, 그래요. 내 생각은 옳았어요. 다만, 내가 원래 생각한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문제에 적합한 생각이었죠. 나는 원자핵 내부에서 작용하는 강한 핵력을 기술하는 이론을 추구했는데 빛과 특정한 방사성붕괴에 관한 이론을 발견한 것이었어요.
슈테판 클라인 한 범죄를 수사하다가 전혀 다른 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수사관과 비슷한 처지였군요.
스티븐 와인버그 맞아요, 대충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을 보스턴 시내에서 차를 몰아 출근하다가 깨달았어요.
슈테판 클라인 교통안전을 생각하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네요.
스티븐 와인버그 적어도 나는 운전 중에 전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문제가 있긴 해요. 우리 이론물리학자들은 현재 진행주인 연구를 끊임없이 생각하거든요. 아마 작곡가와 시인도 그럴 거예요. 그러다보니 내가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방금 들어선 가게에서 무엇을 사려고 했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죠.
슈테판 클라인 교수님이 운전대 앞에서 이룬 발견은 기초물리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우주의 탄생과 물질의 구조에 관해서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인, 이른바 표준모형은 그 방향에서 나온 성과입니다. 그 발견의 순간에 교수님은 이런 결과를 예상했습니까?
스티븐 와인버그 거의 모든 경우에는 곧 막다른 골목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나는 내 아이디어에서 무언가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옳을지도 모르는 이론을 구성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죠. 하지만 내가 실제로 옳았다는 것은 6년 뒤에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로 맞은 큰 기쁨이었어요.
슈테판 클라인 현대물리학에는 세기와 작용범위가 서로 다른 4가지 근본적인 힘이 등장합니다. 중력, 전자기력, 약한핵력, 강한핵력이 바로 그 힘이죠. 교수님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이 자연적인 힘 가운데 2가지, 곧 전자기력과 약한핵력은 얼핏 보면 서로 별개인 것 같지만 하나의 단일한 힘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현상의 통일성을 파악하는 일은 기초물리학자들에게 성배를 찾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왜 그렇게 통일성에 목을 맬까요?
스티븐 와인버그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을 더 단순하게 이해하고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일은 단순성에 이르는 길이죠. 뉴턴을 생각해보세요. 그는 행성과 떨어지는 돌이 똑같은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요컨대 당시까지의 통념과 달리 하늘의 자연법칙과 땅의 자연법칙이 별개가 아니었던 거예요. 오직 중력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이를 발견한 것은 획기적인 진보였습니다.
슈테판 클라인 하지만 통일을 위해서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물론 통일을 하면 자연법칙의 개수는 줄어들겠죠. 하지만 그 대신에 그 소수의 근본적인 법칙은 이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오직 특별한 재능과 훈련을 겸비한 극소수만이 그 법칙을 이해할 수 있죠.
스티븐 와인버그 안타깝지만 옳은 말이에요. 하지만 17세기의 대중은 뉴턴물리학 앞에서도 쩔쩔맸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인문계고등학교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뉴턴이 발견한 법칙을 이해하죠. 볼테르는 해설서를 써서 그 법칙을 대중에게 설명했습니다.
슈테판 클라인 그 설명의 공로는 누구보다도 볼테르의 연인 에밀 뒤 샤틀레에게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그녀가 그 해설서의 대부분을 썼으니까요. 아무튼 다른 얘기를 해보죠. 교수님은 이를테면 사교 모임에서 교수님의 연구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기분이 언짢은가요?
스티븐 와인버그 예. 때로는 몹시 실망합니다. 언젠가 내가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여기 텍사스에서 진행될 새로운 입자가속기 프로젝트에 대해서 연설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한 의원이 이렇게 묻더군요. “왜 굳이 가속기가 필요합니까? 그냥 대형 컴퓨터를 가지고 하세요.” 아무도 모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컴퓨터가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다는 걸 그 의원은 몰랐던 거죠. 우리는 새 가속기를 가지고 새로운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싶었던 것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상대를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우러러보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점이에요. 보세요, 많은 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심오한 작품으로 믿어요. 우리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이 어렵다는 말을 무슨 자랑처럼 하면 안 돼요. 오히려 물리학을 어렵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
슈테판 클라인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스티븐 와인버그 젊은이들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방식이 내가 보기에는 천편일률적이에요. 여러 세대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젊은이들은 똑같은 교과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선 역학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예컨대 열과 전기에 대해서 배우고, 그 다음에 원자물리학을 배우는 식이죠. 게다가 모든 내용이 수학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요. 물리학자가 되려는 사람이나 계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수학적 표현이 아름답고 유익하겠죠. 하지만 대다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학생들에게 훨씬 더 와 닿는 방식은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위대한 물리학자의 발견을 마치 자신의 발견인 양 따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나는 이 원리에 입각해서 20세기 물리학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책을 통해 물리학 강의에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내가 보기에 그 책은 제 구실을 했는데,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슈테판 클라인 텍사스에 입자가속기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그 결실을 원했죠. 왜냐하면 근본적인 힘들은 에너지가 아주 높은 상황에서 비로소 통일되는데, 그런 상황이 빅뱅 직후나 입자가속기 내부에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와인버그 아쉽게도 나는 정치적인 문제에서는 크게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슈테판 클라인 대신에 표준모형은 주네브에 위치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의 가속기에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검증을 멋지게 통과했습니다. 2008년에 그곳에서 ‘대형강입자충돌기LHC’라는 가속기가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속기는 교수님이 텍사스에 건설하고자 했던 가속기에 버금가는 에너지에 도달할 예정이었죠. 그런데 어이없게도 가동 직후에 지하 가소기 터널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고, 대형강입자충돌기는 1년 넘게 수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계획한 일정이 많이 미뤄졌는데, 교수님은 이 일로 실망했나요?
스티븐 와인버그 심하게는 아니고 뭐 적당히 실망했어요. 우리는 그 가속기의 완성을 아주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습니다. 그런 마당에, 불행한 사고로 일정이 늦춰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죠.
슈테판 클라인 교수님은 어떤 발견을 기대하나요?
스티븐 와인버그 무슨 발견이 이루어질지 안다면, 실험을 안 해도 되겠죠. 그걸 모르니까, 조바심 내며 기다리는 것이고요. 아무튼 우리 물리학자들의 대다수는 힉스보존이라는 새로운 기본입자가 발견되리라고 예상합니다.
슈테판 클라인 힉스보존이라면, 모든 사물이 질량을 갖게 된 원인이라는 그 입자죠.
스티븐 와인버그 하지만 우리가 달랑 힉스보존만 발견한다면, 정말 아주 실망스러울 겁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암흑물질의 정체에 관한 단서가 발견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슈테판 클라인 암흑물질이라면, 우주를 이루는 성분이면서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보다 5배나 많다는 정체불명의 물질이죠.
스티븐 와인버그 우리는 암흑물질의 정체를 아직 전혀 모릅니다. 또 다른 희망도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알려진 기본입자의 세계에서 ‘초대칭’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발견한다면, 이것 역시 대단한 성과입니다. 초대칭에 대한 이야기는 30여 년 전부터 나왔어요. 이제 초대칭이 실제로 확인된다면, 세상이 떠들썩해지겠죠.
슈테판 클라인 교수님이 빨간색 쉐보레 카마로 안에서 이룬 발견 등을 주춧돌로 삼은 표준모형을 불완전한 이론입니다. 우선, 중력을 그 모형에 포함시키기 위한 시도는 지금까지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또 그 모형은 이론적으로 도출할 수 없는 수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수치는 측정을 통해 알아내서 모형에 집어넣어야 하죠.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30여 년 전부터 표준모형 너머의 자연법칙을 발견하려 애써왔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아무도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요.
스티븐 와인버그 표준모형은 매우 성공적이라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걸 한번 보세요. (책상 서랍에서 빨간색 소책자를 꺼낸다.) 오늘날 우리가 기본입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표와 숫자가 새까맣게 적혀 있죠. 이것이 우리의 이론이에요. 어떻습니까? 정말 너무나 추합니다! 이건 우리가 원하는 이론이 확실히 아니에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물리학자의 필수 덕목입니다.
슈테판 클라인 그럼 교수님이 보기에 아름다운 이론은 어떤 것입니까?
스티븐 와인버그 이론 안에서 관계가 필연적으로 도출되면, 그 이론은 아름답습니다. 그런 이론에서는 모든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주 작은 변형만 가해져도 디론 전체가 무너지죠. 실제로 그런 이론이 있습니다. 원자와 기본입자의 동역학을 기술하는 양자역학을 생각해보세요. 표준모형은 이런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슈테판 클라인 그런데 자연의 법칙이 꼭 인간이 보기에 필연적이고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스티븐 와인버그 글쎄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알고 싶군요. 어쩌면 자연의 실상은 다른데, 우리가 나름의 욕심 섞인 생각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아름다움을 추구한 덕분에 많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에요. 역사 속에서 과학자들이 발견한 자연법칙 몇 가지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또 우리가 계속해서 법칙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법칙이 추가로 발견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어쨌든 나는 이 불확실한 목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매혹적이라고 느낍니다.
슈테판 클라인 교수님 자신은 보람도 없이 애만 쓰다가 인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그 목표가 매혹적이라는 말씀인가요?
스티븐 와인버그 나는 과학이 더 발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발전은 아주 더딜 수도 있어요. 예컨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400년에 원자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원자의 존재는 그로부터 2300년이 지난 기원후 1900년에야 확실히 입증되었죠. 데모크리토스가 부딪힌 난점은 원자의 크기였어요. 원자는 그가 맨눈으로 볼 수 있었던 모든 것보다 10만 배나 작거든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입자물리학에서 정말 중요한 진보를 이루려면 훨씬 더 먼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통일에 도달하려면, 현재 도달 가능한 에너지 수준보다 10만 배 높은 수준이 아니라 10경(1017)배 높은 수준에서 자연을 탐구해야 할 테니까요.
슈테판 클라인 10경이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네요. 십진법으로 쓰려면 1 다음에 0을 17개나 붙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크기 문제가 기초물리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수님 자신의 이론도 장애물일 수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표준모형이 워낙 성공적이다 보니, 다른 길을 모색하기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때 보스턴 시내의 도로에서 불현 듯 깨달음에 이른 것을 혹시 후회한 적도 있나요?
스티븐 와인버그 아뇨. 새 이론은 과거 이론을 발판으로 삼습니다. 표준모형은 우리가 다른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 위해서 반드시 내디뎌야 했던 한 걸음이었어요. 내가 물리학의 발견을 후회한다면, 핵분열의 발견을 후회해요. 그 이유는 전혀 다르고요.
슈테판 클라인 교수님이 열망하는 것은 우주 전체를 기술하는 법칙입니다. 그것을 흔히 “세계공식” 또는 “만물의 이론”이라고 부르죠.
스티븐 와인버그 나는 이 표현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목표에 도달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거라는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의식 같은 현상을 생각해보세요. 아니, 액체와 기체의 난류turbulence만 생각해봐도 충분해요. 이 현상의 바탕에 깔린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은 지금도 잘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역량은 의식이나 날씨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궁극의 이론ultimate theory”으로 부르는 편을 더 좋아해요.
슈테판 클라인 그런 ‘궁극의 이론’의 가치에 대해서 심지어 많은 물리학자들도 회의를 표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아주 흥미로운 몇 가지 현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하는 이론은 가치가 없다는 거죠.
스티븐 와인버그 그 지적은 2가지 이유에서 부당합니다. 첫째, 우리의 이론은 보편적으로 타당한 한에서 다른 모든 이론보다 더 근본적일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다른 모든 서술의 타당성은 어떤 식으로든 제한되어 있지요. 예컨대 유체역학의 법칙은 기체나 액체가 있는 상황에서만 유의미해요. 반면에 우리의 ‘궁극의 이론’은 어떤 제한도 없이 우주 전체에서 타당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이론은 모든 설명의 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우연과 규칙성을 상대합니다. 우연은 더 설명할 수 없어요. “왜 하필 6500만 년 전에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공룡이 멸종했는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해요. 반면에 당신이 공룡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따르는 유전 법칙을 알아내려 한다면, 상황은 다르죠. 그 법칙의 바탕에는 규칙성이 있거든요. 정확히 말해서 생화학의 규칙성이 있어요. 더 나아가 당신은 생화학 법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원자물리학 법칙을 통해서 설명하면 되거든요. 그 다음에는 입자물리학이 나오겠죠. 그러다가 결국에는 항상 ‘궁극의 이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궁극의 이론’은 무릇 “왜?”라고 질문이 끝나는 곳입니다.
슈테판 클라인 혹시 ‘마트료시카Matryoshka’라는 러시아 인형을 아나요?
스티븐 와인버그 목제 인형을 말씀하는 거죠? 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들어 있고, 그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식으로 계속 포개져 있는 인형?
슈테판 클라인 예, 맞습니다. 인형의 위쪽 끄트머리와 아래쪽 끄트머리를 잡아당기면 배 부분이 분리되면서 그 속에 들어 있던 더 작은 인형이 나타나죠. 그 인형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분리되고요. 그렇게 계속 분리하다 보면 결국 가장 작은, 분리되지 않는 인형이 나타나요. 저는 ‘궁극의 이론’을 향한 교수님의 꿈을 듣다 보니 그 마트료시카 인형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결국 마지막 인형에 도달하게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작은 인형 속에도 그보다 더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그런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스티븐 와인버그 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애써 전진하는 동안, 우리의 설명은 점점 더 포괄적으로 되었어요. 이 사실이 나에게 용기를 줍니다. 우리의 뇌가 점점 더 포괄성이 커지는 그 법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우수한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예요. 예컨대 슈뢰딩거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개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불가능할 텐데, 우리도 그런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슈테판 클라인 문득 떠오른 질문인데,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단일한 법칙에 대한 열망은 어느 정도까지 우리 문화의 유산일까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전능한 유일신을 믿습니다. 때때로 저는 ‘궁극의 이론’을 향한 열망이 새롭고 더 세속적인 형태의 일신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티븐 와인버그 흥미로운 생각이군요. 아무튼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과학은 유럽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생각을 뒤집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유일한 신을 바라는 마음과 우주 전체를 기술하는 단일한 이론을 바라는 마음은 공통의 원인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신교는 사람들이 느끼기에 다신교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발전했어요. 마찬가지로 폭풍은 제우스의 탓으로, 유행병은 아폴로의 탓으로, 흉작은 데메테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우리 물리학자들은 일목요연하지 않은 표준모형 대신에 세계에 대한 통일적인 설명을 원하지요.
슈테판 클라인 모든 것을 떠받치는 유일한 기반을 향한 열망이 인간의 본성에 어울린다는 말씀인가요?
스티븐 와인버그 그래요, 그 열망은 우리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욕구도 가지고 있어요. 오페라를 보러 갈 때 당신은 단순한 설명을 추구하지 않아요. 오히려 삶의 온갖 다양성과 복잡성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기를 바라죠.
슈테판 클라인 요컨대 미적인 욕구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뜻인가요?
스티븐 와인버그 아뇨. 오히려 우리 각자가 자신 안에 모순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아요. 우리는 누구나 단순함과 풍부함을 둘 다 원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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