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성룡 김이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고 처음에는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물론 미치코도 그렇게 생각했다. 성룡 김은 착실한 사람이고 친절한 간호사이니 절대로 그 사람의 소행이 아니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틀림없이 레나테의 거짓말이라고 레나테의 담당 의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레나테가 활동하는 합창단의 지도 치료사도 그렇게 말했다. 레나테가 책을 빌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수다를 떨고자 매일 찾는 환자용 도서관의 사람들도 모두 다 입을 모아서 그렇게 말했다.
성룡 김은 서울에서 태어나 삼 년 정도 영국에서 살다가 독일로 건너왔는데 베를린에서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거의 십 년 동안 함부르크 북부에 있는 정신 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다. 거기서 똑같이 서울에서 태어난 두 살 연하의 간호사와 만나 결혼도 했고 어린 딸도 둘 있는데, 독일 사람에 비하면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도무지 두 아이의 아버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짧게 자른 머리칼은 기세 좋게 위로 뻗쳤고 피부는 껍질을 벗긴 사과 같았다. 그 나이대의 독일 사람이라면 마치 쓴 것을 잘 못 먹은 것 같은 표정이 입 주위에 박여 있는데 성룡의 얼굴에는 쓴 맛이 전혀 없었다. 입가에 경련하듯 쓰라림 같은 것이 빠르게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쓴 맛은 전혀 없었다. 토마스라면 초라하고 특징 없는 얼굴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토마스와 같이 살지 않아도 미치코는 토마스가 할 것 같은 말, 토마스가 했던 말이 하루에 몇 번씩이나 귀에 들렸다. 미치코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거울을 바라보니 자기 얼굴이 성룡의 얼굴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귀엽기는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고, 언젠가 토마스의 동생이 미치코의 얼굴을 평가한 적이 있었다. 토마스의 동생은 아름다운 얼굴은 쓴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미치코는 성룡 김을 처음 봤을 때 아름다운 남자라고 생각했다. 미치코는 그때 환자용 도서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도서실에서 일하는 카타리나를 만나러 온 참이었다. 미치코와 카타리나는 미라 나이르Mira Nair 감독의 새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영화가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성룡이 도서실로 황급히 들어오더니 미치코를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미치코도 놀라서 커피잔을 떨어뜨리듯 책상에 놓았다. 커피 거품이 일었고 찻잔 밖으로 튀어서 손가락에 묻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벌려서 앗 하고 소리를 냈는데 곧이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치코는 그 순간 상대방이 일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성룡이 독일어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일본에서 왔다고 미치코가 긴장하며 대답했는데 성룡의 미소는 변함없었다. 미소를 유지한 채 자기는 한국에서 왔다고, 성룡이 말했고 그것을 바라보던 카타리나는 감탄하듯이 “와, 동아시아 사람들끼리는 얼굴만 봐서 서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나 보구나.”하고 말했다. 미치코는 “당연하지 않아?” 하고 말하면서 웃었다. 성룡도 “독일 사람인지 네덜란드 사람인지 얼굴만 보고 알 수 있어? 당연한 거야.” 하고 말하면서 웃었다. “동아시아 사람은 모두 똑같은 얼굴은 하고 있다고.”
그런데 가즈오는 여기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미치코는 그날 병원과 같은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가서 동생 가즈오와 저녁을 먹으며 성룡과 만났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가즈오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일본 사람하고 한국 사람은 대체로 한번 보면 알아. 얼굴이 다르잖아.” 하고. 미치코는 놀라서 “어떻게 다른데?” 하고 물었다. 가즈오는 눈의 생김새가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은 눈이 가늘어.” 미치코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너처럼 눈 작은 사람이 한국에도 있는 걸까?” 가즈오는 칼로 긁힌 상처처럼 눈이 가늘어서 항상 웃고 있는 듯 보였다. “일본 사람이 더 키가 크고 말이야.” 하고 가즈오가 말했다. 미치코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성룡이 너보다 훨씬 키가 크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가즈오는 “뭐 일본 사람 같은 한국 사람도 있겠지.”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미치코는 우연히 성룡과 마주쳤다. 그로세베르크 거리Grosse Bergstrasse에 있는 한국 식품점으로 두부를 사러 갔는데 성룡이 작은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장을 보고 있었다. 성룡은 독일어로 이 아이가 내 딸이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는 미치코를 보더니 한국어로 뭐라고 말했다. 성룡이 웃었다. 미치코도 웃었다.
미치코가 카타리나에게서 레나테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였다.
미치코는 레나테라는 여성을 잘 알고 있는 듯 느꼈다. 사실 미치코는 레나테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레나테를 두세 번밖에 보지 못했다. 카타리나가 맨날 레나테의 이야기를 했으므로 레나테를 잘 알고 있는 듯 느꼈을 뿐이다. 레나테는 왼쪽 어깨가 굉장히 무거운 양 걸어 다녔다. 오른발을 들기 직전에 왼쪽 어깨가 아픈 듯 지나치게 높게 올리는 모양새였다. 미치코의 눈에는 레나테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카타리나는 레나테가 일부러 그렇게 걷는 것이 아니라고, 정신 안정제 때문에 몸이 기울어진 것이라고 말해 줬다. 약 때문에 몸을 똑바로 펴고 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레타네는 병원에 있는 남자들의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기억했다. 레나테는 매일 도서실에 왔다. 그리고 안내 데스크에 있는 카타리나 옆에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누가 책을 빌리러 오면 대출 카드를 훔쳐본 다음, 얼굴과 이름을 기억했다. 레나테에게 이름이 기억된 남성은 가끔 당혹스러운 일을 겪을 때도 있었다. 펠릭스 브룩이라는 남자도 적잖이 당혹했다. 레나테가, 펠릭스 브룩이 자기랑 자고 싶어서 때를 노리고 있다고 병원 곳곳에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펠릭스 브룩이 복도에서 자기와 스치면 윙크를 하고 그다음엔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 슬리퍼를 좌우로 바꿔 신으면서 빙긋 웃는다고, 레나테는 말하고 다녔다. 매일 잠옷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열쇠 구멍으로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훔쳐본다고, 틀림없이 펠릭스 브룩의 눈이라고 레나테는 말하고 다녔다.
카타리나는 레나테가 그런 말을 하면 두 손을 무릎 위에서 세게 쥐었다. 사실은 그 거머쥔 주먹으로 레나테를 때려주고 싶었으나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연신 마음속으로 ‘환자이니까.’ 하고 되뇌었다. 그러다가 또 화가 치솟으면 ‘평범하지 않으니까.’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평범하지 않으니 하는 수 없지만, 평범한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카타리나로서도 답할 길은 없었다. 카타리나는 레나테와 비슷한 여성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병원 환자가 아닌 친척, 학교 동창, 근처에 사는 지인이었고 그 수가 제법 많았다. 자기 주변에는 항상 레나테하고 비슷한 여성들만 모이는 것 같았다. 아무리 피하고 또 피해도 결국 곁에 와서는 카타리나가 불쾌해하는 것도 모르고 불쾌한 이야기만 불쾌한 말투로 끝도 없이 해 댔다. 카타리나는, 당신들의 이야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떠나지를 못했다. 다들 마치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오히려 고맙게 들으라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미치코는 달랐다. 카타리나는 미치코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에는 불쾌하지 않았다.
성룡 김에 대해서 레나테가 말했을 때, 카타리나는 그런 불쾌함을 처음 느꼈다. 레나테의 말에 따르면 한밤중에 소리가 들려서 일어났더니 문가에 희미한 사람 형체가 있었다고 한다.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없어서 레나테가 가만히 있자 사람 형체가 다가와서는 자기 위로 덮쳤다고 한다. 레나테의 말에 따르면 머리는 뻣뻣한 직모였고 팔에도 가슴에도 다리 피부에도 털이 나 있지 않아서 매끈매끈했다고 한다. 카타리나는 그런 레나테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무섭게 다그친 뒤, 곧바로 환자에게 ‘거짓말’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레나테는 화도 내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은 채, 계속 똑같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팔에도 가슴에도 다리 피부에도 털이 나 있지 않아서 매끈매끈했고,” 하는 부분에 이르자 카타리나는 불쾌해져서 그 말은 이미 들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레나테는 같은 이야기를 또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했다. 매끈매끈한 팔, 가슴, 다리를 꿈속에서 어루만지는 레나테를 생각하니 카타리나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카타리나 역시 성룡을 볼 때면 자기도 모르게 팔을 한번 만져 보고 싶다고 느끼곤 했다.
카타리나는 미치코에게 “우선, 사건이 있고 나서 일주일이나 지난 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그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사건을 조사하기도 어렵고.”라고 말했다. 레나테가 사건이 있었다고 처음 말하기 전의 일주일 동안, 성룡은 가족끼리 발트해로 여행을 떠나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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