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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애는 몇 점인가요?
: 제도 안의 돌봄 공백과 폭력
염윤선 | 선천성 심장질환자, 간헐적 노동자
부모님은 영구 3급이라도 되었으니 이것으로 감사하자고 한다. 실제로 나 또한 어떤 면에서는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장애등급 판정이 스스로를 모욕하고 나의 마음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내어 이루어진 것임을 잊지 않고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2개의 심실이 아닌 단심실로 태어났다. 흔히 이 질환을 ‘폰탄’이라고 부른다. 1970년대, 처음으로 나와 같은 기형 심장을 수술하는 데 성공한 폰탄Fontan 박사의 이름이다. 그 말인즉, 이전에는 나와 같은 유형의 기형 심장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은 살 수 없었다는 뜻이다. 같은 병명의 환자 자조모임을 찾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내가 신세를 한탄하고 의사들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여긴 한 심장전문의는 나에게 “폰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것에 비견될 만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조모임이나 환우회가 의사들에게 썩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다시금 병을 바라보는 의사와 환자의 시선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기존 폰탄 환자의 기대 수명은 35~40세이며, 나는 2022년 현재 이 나이대에 속한다.
이 글을 통해 제도적 돌봄의 부실함과 그에 따라 환자와 환자 가족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987년생인 나는 한국에서 폰탄 1.5세대에 속한다. 나의 탄생은 집안에 큰 재앙을 가져다주었고, 오로지 가족만이 그 재앙을 짊어져야 했다. 병원에서는 내가 한 달 내에 죽을 확률이 높다고 했고, 집안에서는 나를 절 앞에 놔두고 오자는 말이 오갔다. 결국 부모님은 물어물어 아이를 조용히 처리해 준다는 곳에 갓난아기인 나를 데려갔지만, 친할아버지가 이미 출생신고를 한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나를 키울 형편이 안 되었던 부모님은 친권을 포기하고 미국에 입양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돌아온 대답은 “이곳에 와도 살릴 수 없으니 입양이 불가하다”라는 말이었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고, 낮은 확률에도 살아남았으며,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나를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적’은 일회성 이벤트이다. 나에게 기적이라고 말해주었던 사람들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수가 내가 생을 ‘지속’하며 살아가야 할, 같은 인간임을 고려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 사회는 내 삶의 질을 주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장장애는 2000년에 처음 ‘장애’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네 살 때 받은 수술이 전부였던 나는 심각한 심장 기형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내 부모님은 아픈 자식을 둔 죄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머리 숙이고 촌지를 건네며 없는 살림에 내가 제도권 교육을 이탈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이 역시 그저 불운한 가정사로 남았을 뿐이다.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나도 등록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때,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울어주었다. 장애인이 된다는 것, 제도 내 돌봄 시스템에 등록된다는 것은 비장애인인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애도’할 만한 무엇이었다.
성인 선천성 심장병 환우모임에 나갔을 때, 구성원의 대부분은 심장병인 어린 아기를 둔 엄마들이었다. 그분들은 정작 몇 없는 성인 선천성 심장병 당사자인 우리를 보며, 어린 나이에 죽지 않고 성인으로 자라난 당신 아기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다. 그 모임에서는 어린이 환자들과 성인 환자들의 ‘만남의 밤’을 열기도 했는데, 연사로 나온 성인 환자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룬 사람이었다. 또 그곳에서 주최한 대표적인 캠페인으로 ‘심장병 아이들도 체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요’라는 행사가 있었다. 당시 그 자리에 함께했던 성인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 중에는 심장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지지와 동질감보다는 수치심과 이질감을 느꼈다. 나름대로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 노력은 너무나 하찮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고, 마치 무임승차를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이가 어릴 때, 특히 미성년일 때는 장애인 등록의 중요성을 비교적 잘 알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장애인일수록 장애인 등록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 등록이 정말 필요한 시점은 성인 이후이다. 장애가 있는 몸은 비장애인의 몸과 확실히 다르며,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국가의 ‘생애 설계 예측’과 다른 시간을 산다. 그래서 제도 내 장애인이 되어야 장애인 생활보호체계 내에 속할 수 있다. 아직 부족하고 많은 개선이 필요한 복지이지만, 나 또한 제도 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장애인에게 허락된 휴학 횟수와 장애인에게 배정된 휴학 횟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물론 ‘장애 극복 서사’를 써 내려가는 장애인들도 있지만, 절대다수의 장애인은 장애의무고용제도에 벌이를 의존해야 한다.
제도 밖 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만큼의 업무 수행 능력을 요구받기 때문에,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어 세상을 빨리 떠나거나 그 전에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일도 빈번하다. 심장장애인 나는 상태가 안 좋을 때는 혼자서 머리를 말리지 못한다. 반복된 움직임은 심장 빈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는 상태가 정말 좋을 때만 가능하다. 장애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방 청소는 도우미 선생님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들도 손상된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도전이다.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생을 존엄하게 여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제도 내 장애인으로의 편입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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