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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방문객
첫째 날. 난 전날 밤에, 추운 검회색 밤에 이곳에 왔다. 그때는 몰랐지만, 1월 중순이었으니 당연했다. 어디나 불빛이 휘황했지만 공항에서 오는 길에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를 타고 오면서 누군가 유명한 건물과 주요 거리, 공원, 그리고 막 완공된 때에는 대단한 볼거리였다는 다리를 알려주었다. 내가 곧잘 빠져들던 백일몽에서 그 모든 장소는 행복을 의미했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내 어린 영혼의 구명보트였다. 나는 그 장소를 드나드는 나 자신을 상상해보았고, 그것만이, 거듭 드나드는 일만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반감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 감정이 서글픔과 약간 비슷한데 그보다 더 묵직하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막상 그 장소들을 내 눈으로 보니 평범하고 지저분했고, 실제로 사람들이 수없이 들락거려서 닳아빠진 모습이었다. 공상 속에서 그곳에 붙박여 있던 사람이 세상에 나 혼자일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마주해 실망하는 일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터였다. 내가 입은 속옷은 모두 여행을 앞두고 새로 산 것들이었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더 잘 보려고 차 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보니 새것이 얼마나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승강기를 탔는데, 살면서 처음 타봤다. 곧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식탁에 앉아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음식을 먹었다. 막 떠나온 고향에서는 늘 주택에 살았고 우리집에 냉장고라고는 없었다. 내가 경험한 모든 일―승강기를 타고 아파트에 들어서고 냉장고에 넣어둔 묵은 음식을 먹는 일―이 얼마나 멋진지 그런 일에 익숙해지고 아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처음에는 워낙 새로워서 입꼬리를 내린 채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에는 곤히 잠들었는데, 행복하고 편안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더는 무엇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 근무 첫날 아침, 첫날 밤에 이은 그 아침은 화창했다. 무엇이든 마치 겁에 질린 듯 가장자리가 말려올라가게 하는, 내게 친숙한 눈부신 노란색 태양이 아니라 빛을 내느라 너무 애를 쓴 나머지 쇠약해진 듯한 창백한 노란색 태양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화창해서 기분좋은 날이었고, 덕분에 고향이 덜 그리웠다. 그래서 난 떠오른 해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고운 무명으로 지은 화사한 옷으로, 고향에서라면 교외로 나들이를 나갈 때 입을 만한 옷이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었다. 해는 환하게 비췄지만 공기는 찼다. 좌우간 1월 중순이었으니까. 하지만 햇볕이 내리쬐는데도 공기가 차가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난 몰랐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얼마나 신기한 느낌인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내 피부색이 부드러운 천으로 한참 문지른 견과류의 갈색이라든가 내 이름이 뭔지 아는 것처럼 늘 알았고, 나로선 아주 당연했는데, ‘햇볕이 내리쬐면 공기가 따뜻하다’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열대지방에 있지 않았고, 그 깨달음이 바짝 말라붙은 땅 위로 물줄기가 흐르듯 내 삶으로 흘러들어와 두 개의 강둑을 만들었다. 한쪽 강둑은 나의 과거였다. 워낙 빤하고 익숙해서, 당시의 불행조차 지금 떠올리니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나의 미래였다. 텅 빈 잿빛 공간. 비가 내리고 배 한 척 눈에 띄지 않는, 구름이 잔뜩 낀 바다 풍경이었다. 이제 내가 있는 곳은 열대지방이 아니었고, 몸의 거죽도 속도 다 추웠다. 그런 감각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책을 읽다보면, 이따금 내용 전개상 향수병에 시달리는 인물이 등장하곤 했다. 그다지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그보다 훨씬 나은 어딘가로 간 후에, 별로 좋지도 않았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길 갈망하는 것이다. 그런 인물을 보면서 얼마나 짜증스러웠는지 모른다. 내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고, 나도 다른 곳으로 떠나길 무척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 역시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해가 되었고 내 처지가 어땠는지 알았으니까. 그때 내가 떠올린 미래를 그림으로 그렸다면, 아마도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회색이 있고 그것을 둘러싼 검은색이 갈수록 짙어지는 형상이었을 것이다.
내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다니, 나로서도 얼마나 놀라웠는지, 커버린 내 몸이 다 들어가지 않는 작은 침대에서 잠을 잤으면 하다니, 아주 사소하고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서 엄청난 분노가 솟아올라 모두 내 발아래 죽어 나자빠졌으면 싶던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니. 아, 집을 떠나 이 새로운 장소로 오는 단 한 번의 재빠른 행동으로, 내 슬픈 생각, 내 슬픈 감정,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삶 전반에 대한 불만을 마치 다 낡아서 다시는 입지 않을 옷처럼 두고 떠나오리라 상상했는데, 예전에는 지금 내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위안을 얻었지만, 지금은 이것을 설레며 바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난 침대에 누워, 분홍색 숭어와 코코넛밀크를 넣어 요리한 초록색 무화과 한 그릇을 먹는 꿈을 꾸었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요리라 그 맛을 보자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것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떄문이다.
내가 누워 있는 방은 부엌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식모 방. 작은 방이야 익숙했지만, 이 방은 부류가 달랐다. 천장이 아주 높고 벽은 천장까지 닿아 있어서 상자처럼 사방이 막혀 있다. 멀리 운반해야 할 화물을 배에 실을 때 쓰는 상자 말이다. 하지만 난 화물이 아니다. 그저 식모 방에 사는 불행한 소녀였고, 사실 식모도 아니었다. 난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에 학교를 다니는 여자애였다. 하지만 다들 어찌나 친절하던지, 나더러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라고 했다. 그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진짜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하는 법은 없으니까. 가족이란 결국 내 삶의 목덜미에 맷돌처럼 매달린 사람들 아니던가? 고향을 떠나기 전날 내 사촌―평생 알고 지낸 여자아이,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인이 되기 이전에도 불쾌하기 짝이 없언 아이―이 작별 선물로 자기 성경책을 주면서 하느님과 선과 축복에 대해 짧게 설교를 했다. 지금 그 성경책은 내 앞의 서랍장 위에 있고, 나는 어렸을 적에 둘이서 우리집 건물 밑에 앉아 계시록의 구절을 큰 소리로 읽어가며 서로 겁을 주고 괴롭혔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두고 떠난 그 사람들이, 내 가족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날이 평생 단 하루라도 있을까 싶었다.
서랍장 위에는 작은 라디오도 있어서 라디오를 켰다. 그 순간, 마치 그때 내 감성을 집약한 듯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내 입장이 되어봐. 단 하루만이라도. 내면의 이 끔찍한 공허를 과연 네가 견딜 수 있을지 보라고.’ 자장가라도 되는 양 혼자 이 가사를 여러 번 중얼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는데, 아이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가지고 노는 아름다운 장면이 그려진 내 낡은 면플란넬 잠옷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잠옷에 그려진 그 장면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어디에서 만든 잠옷인지 꼭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상표를 찾아 맹렬히 뒤지기 시작했다. 대개 그렇듯 뒤쪽에 상표가 있었고, 거기엔 ‘호주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짜 식모가 깨우는 바람에 꿈에서 깼다. 만나자마자 내가 맘에 안 든다면서 내 말투를 그 이유로 들던 사람이었다. 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눈을 뜨자 ‘호주’라는 단어가 우리 두 사람의 얼굴 사이에 떠 있었고, 호주가 나쁜 사람들을 가둘 셈으로 개척된 곳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너무 악독해서 자국의 감옥에는 가둘 수 없는 사람들을 가두려고 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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