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그림책 서막 그후
(중략)
우리나라 어린이책
초기 삽화 이미지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책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이었다. 거기에 어린이책의 존재는 없었다. 소파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라는 지위가 부여되면서 비로소 어린이를 위한 인쇄물이 만들어졌다. 어린이책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중에서 문학과 교육 관련 자료는 개인 및 기관, 사립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거나 전시 목록화되어 있다. 『한국아동문학 100년사 희귀자료집』 한국아동문학학회, 2005 / 『일제강점기교과서전 도록』 삼성출판박물관 발행, 2006
그러나 시각 분야, 즉 그림책과 삽화 분야는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1차 자료가 거의 희박한 현실1988년 한글 맞춤법개정안 이후 많은 자료 유실에서 부족하나마 지금이라도 우리 그림책의 원형과 전체 출판 지형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찾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1940년대 중반 해방공간부터 50~60년대에 활동한 초기 삽화가들에 대한 개괄을 먼저 하고자 한다.
우선 그림책 역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훨씬 전 시기의 삽화 변천사를 거론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나라의 어린이책에 그림이 맨 처음 선을 보인 어린이 잡지부터 탐색해야 마땅하다.
어린이 잡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년한반도』가 나온다. 어린이책이라고 볼 수 있는 최초 자료가 『소년한반도』1906.11~1907.4 통권 6호 발행, 소년한반도사였고 이 잡지가 근대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 잡지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세계아동문학사전』 이재철, 계몽사, 1989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삽화와 관련한 시각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고 우리나라 어린이책 사료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책에서 시각적 요소가 등장하기 시작한 자료는 육당 최남선이 발간한 『아이들보이』1913.9~1914.8 통권 12호 발행, 신문관이다. 제호에서 보듯 ‘아이들’과 ‘보이다’라는 보조동사에서 ‘보이’를 따와 아이들이 보는 잡지임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국판218×152 크기로 40여 쪽 분량의 이 책은 ‘책거죽’이라 표기하고 그림을 당시 유명한 화가에게 그리게 했다. 붉은색 바탕 등에 화살통을 진 갑옷을 입은 장수가 긴 창과 화살을 들고 백마를 탄 모습이 전체 지면을 거의 차지하는 이 그림은 왼쪽 아래에는 호랑이 얼굴이, 왼쪽 상단에는 ‘아이들보이’ 활자가 사각형의 모양으로 씌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활자와 그림의 배치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시기 장식 형태를 엿볼 수 있다. 본문 그림은 목각으로 새겨서 삽화의 기능을 하게 했고 패턴화된 문양이 동시에 사용되면서 활자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이를 보면 『아이들보이』는 여러 형태사진, 목각, 패턴 문양, 한글쓰기의 실험과 시도를 했던 어린이 잡지로 기록에 남을만하다.
이로부터 10여 년 뒤 소파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잡지 『어린이』1923.3 창간, 1935.3 통권 122호로 정간, 1948.5 복간, 1949.12 통권 137호 발행, 개벽사가 나왔다. 어린이 대상의 순수 아동잡지로는 이것이 처음이었고, 제호의 서체가 몇 차례 바뀌고 본문 삽화에도 역시 다양한 변화사진, 만화, 컷, 패턴 문양, 목판화 등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린이』지는 매호 평균 70여 쪽 분량으로 발행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두께로 어린이들에게 선보였다. 게다가 다양한 삽화와 사진, 활자의 변화 등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요즘처럼 편집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따로 없던 시절, 수록된 작품 첫머리에 들어가 있는 작은 삽화나 활자의 배치, 구성 등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였기에 지면의 변화에 특히 많은 공을 들였으리라 짐작된다. 한편으로 1925년에 창간 2주년 기념으로 안석주의 「씨동이의 말타기」, 여섯 칸 만화 「복동이와 문예」, 그리고 1927년 『아희생활』에 「복동군의 탐험」을 박천석이 연재하면서 만화가들의 어린이책 삽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이 잡지가 1934년 정간되기까지 여러 형식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진 점으로 미루어 어린이책 삽화를 살펴보는 데 적지 않은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린이』지 이후 1945년 무렵까지 40여 종 이상의 어린이 잡지가 창간되거나 폐간되는 잡지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이들 모두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그 족적을 남기고 사라졌으나 우리나라 그림책의 근원을 찾기에는 『우리들 노래』만큼 크지 않다.
1947년 제5집까지 발행된 작품집 『우리들 노래』는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공모한 동요들을 모아 낸 당선작 선집이다.
모두 10편의 동요를 실으면서 각 편마다 한 면 또는 두 면 펼침 상태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요즘 그림책으로 분류하자면 ‘시 그림책’이라 볼 수 있다. 그림이 그려진 면에 동요가 맨 왼편과 오른편, 또는 지면 상단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요 선집임에도 그림의 훼손 없이 배치되어 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림이 중심이고 글이 보조 수단으로 보일 만큼 그림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동요를 읊조리는 형태가 된 것이다. 이 책의 5~6쪽에 자리한 「우리 닭」의 장면은 암탉과 수탉이 서로 마주 보는 가운데 병아리 다섯 마리가 모이를 쪼아 먹는 평화로운 장면이다. 동요는 오른쪽 맨 위에 올려져 있어 마치 옛 민화 한 폭을 감상하는 것처럼 정갈하고 시원한 장면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게다가 강한 군청색과 누런 황토색이 주색으로 배합되어 석판화의 묘미가 한껏 드러난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