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류의 경제생활과 산업혁명
빅히스토리와
세계사 다시 읽기
지난 몇 년 사이에 빅히스토리big history라는 새로운 분야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오랫동안 역사학은 역사 시대, 그러니까 문자가 등장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대 이후를 다루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이전 시대는 주로 고고학이 다뤄야 할 영역으로 취급했지요. 그런데 빅히스토리는 이런 오랜 구분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해온 전통을 거부합니다. 대신 그것은 역사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면서 우주의 거대한 역사, 즉 빅뱅부터 시작해 지구와 태양계의 탄생, 생명체의 출현을 차례로 살펴보고 나서 그제야 인류의 역사를 다룹니다. 빅뱅은 지금부터 약 140억 년 전에 일어난 일이고, 현생 인류가 출현한 때는 아무리 빨라도 30만 년 전이니 빅히스토리에서 우리가 흔히 역사라고 부르는 시기는 그야말로 한순간에 해당한다고 하겠지요. 지금까지 우주의 일생을 24시간으로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마지막 4초쯤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짧은 인류 역사에서도 문명, 그러니까 도시가 발전해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고 신분이 구분되기 시작했어요. 문자가 쓰이기 시작한 시점은 기껏해야 5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흔히 만나는 여러 왕조와 제국, 도시국가의 역사는 더 짧아서,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까지 기다려야 하지요. 이렇게 태어난 문명은 주로 농업에서 나오는 경제적 잉여를 수취해서 이를 바탕으로 원거리 교역을 발전시켰어요. 농업 잉여를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수공업이 발전했고, 교역이 발전함에 따라 교통과 항해 기술도 계속 향상되었지요. 빅히스토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지식과 정보를 전수하는 집단학습 역량 덕분에 인간이 이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지식이 많아지고, 그만큼 경제활동도 활발해지면서 15세기 즈음에 이르면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던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까지도 물자와 사람이 이동하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하지요. 하나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든 성취의 밑바탕에는 물론 농업이 있었습니다. 근대 초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에도 인구의 거의 80퍼센트 이상이 농업에 종사해야만 한 사회가 인구학적으로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정도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농업 생산성은 여전히 높지 않았고, 1인당 농업 생산도 빠르게 향상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기술 진보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이 시기에 과연 ‘혁명’이라 부를 만한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랫동안 대략 1750년부터 1830년 사이 영국에서 국내총샌산과 생산성이 이전에 비해 빠르게 향상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역사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자료와 방법론을 바탕으로 이 시대 영국의 경제 성장이 그리 빠르지 않았다고 반박합니다. 오히려 점진적인 성장이 뚜렷이 보인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펴는 역사가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 성장이 점진적이었다고 해도 그 이전과 이후의 경제와 인구 규모, 생산성 변화 추이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 말입니다. 산업혁명 이전 경제, 그러니까 농업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에 경제 성장은 지속되지도 않았고, 빨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산이 정체되고 인구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었지요. 반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이 함께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가속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산업혁명부터 시작된 경제 성장 추세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빅히스토리를 주창하는 이들도 그래서 산업혁명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것이지요.
산업혁명과
세계 경제의 성장
빅히스토리 연구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몇 가지 지표가 산업혁명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먼저 인구를 살펴보지요. 거칠게 말한다면, 인구수는 한 사회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므로 그 사회의 생산력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됩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수치만 살펴보지요.
먼저,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는 잉글랜드의 인구 변화를 1100년부터 2000년대까지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이 두드러집니다. 첫 째는 잉글랜드 인구가 1100년부터 대략 1650년 사이에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다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강조해야 할 사실은 이 시기 잉글랜드 인구는 아무리 많아도 500만 명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의 표현을 빌린다면, 어떤 ‘천장’ceiling 같은 게 있었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눈에 띄는 사실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1800년 전후에 늘어나기 시작한 인구가 그 이후 훨씬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17세기까지 잉글랜드 인구가 한 번도 500만 명을 넘지 못했던 반면 20세기 말에 이르면 5천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1800년을 기점으로 잉글랜드 인구 패턴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빅히스토리에서는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추세를 살펴보기 때문에 중세부터 17세기까지 잉글랜드 인구가 성장과 감소를 반복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야를 넓혀서 세계 인구 추세를 살펴보면 이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10000년부터 2019년까지, 대략 1만 2천 년 사이에 세계 인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면, 고작 몇 세기 사이에 일어나는 인구 변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알려진 추정에 따르면, 1만 2천 년 전에 세계 인구는 대략 400만 명 정도였는데, 1800년에는 10억 명이 되었으므로 세계 인구는 매년 0.04퍼센트 정도 증가한 셈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장기간을 살펴볼 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실은 산업혁명 이후에 세계 인구 증가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는 것이지요. 인구 그래프를 그려보면 이 시점을 기준으로 기울기가 수직 상승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만큼 세계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짧아졌습니다. 인류가 등장한 후 세계인구가 10억 명에 이르는데 걸린 시간은 20만 년이 넘었는데, 그 인구가 20억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한 세기였습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그렇게 되었지요. 20세기에 들어와 인구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세계 인구가 60억에서 70억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2년이었습니다. 놀라운 변화이지요.
인구 변화와 함께 살펴봐야 할 중요한 지표는 경제 규모입니다. 경제 성장을 가늠하는 데 흔히 쓰는 지표는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입니다. 국내총생산은 정부와 기업, 개인이 한 해 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를 합친 것으로, 인구가 많아지면 그만큼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실제 모습을 살피려면 국내총생산보다는 1인당 국내총생산을 보는 게 좋습니다.
앞에서 잉글랜드 인구 추세를 먼저 봤으니 이번에도 잉글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 변화 추이를 살펴보지요. 2013년 영국 물가를 기준으로 잉글랜드 1인당 국내총생산을 계산해보면, 1270년에는 805파운드 정도였습니다. 400년이 조금 지난 1700년에는 1,688파운드로 두 배쯤 늘어나지요. 앞으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잉글랜드에서는 17세기 중반부터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상업이 발전한 반면 인구는 거의 늘지 않아서 1인당 국내총생산이 크게 늘었습니다. 경제 성장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18세기 중반부터 다시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 1인당 국내총생산이 두 배가 되는 데 400년 이상 걸린 반면, 1700년 1인당 국내총생산이 두 배로 늘어나는 데는 겨우 150년 남짓 걸렸습니다. 1856년 1인당 국내총생산이 3,264파운드까지 올라갔으니 말이지요. 그 후 1인당 국내총생산은 가파르게 상승해 1900년에는 4,780파운드가 되고, 다시 한 세기가 좀 지난 후인 2016년에는 2만 8,982파운드까지 올라갔지요. 다시 말해 1인당 국내총생산에서도 산업혁명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보입니다.
이번에는 세계 생산 총량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1990년 이전 세계 총생산 추이를 살펴볼 때는 주로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 1926~2010과 그의 동료들이 수집한 자료를 사용합니다. 그에 따르면, 2011년 국제 달러로 표현한 서기 1년의 세계 총생산은 1,820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서기 1000년에도 세계 총생산은 그리 늘지 않았습니다. 2천억 달러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느리기는 해도 성장은 그 후 500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 사이에 교역이 늘어나고, 경제의 밑바탕이던 농업에서 기술 진보가 어느 정도 일어나던 때지요. 그 결과, 1500년 세계 총생산은 4,300억 달러까지 늘어났습니다.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는 1500년 이후 300년 사이에 성장은 좀 더 빨라졌고, 1750년 무렵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지요. 성장은 이전 시기보다 더욱 빨라져서 1820년에 1조 2천억 달러에 이르게 됩니다. 300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세계 경제 규모가 세 배가량 커진 것이지요. 바로 그 무렵부터 세계 총생산의 증가세는 가파르게 빨라집니다. 한 세기 후인 1913년에 세계 총생산은 4조 7,400억 달러로 네 배 증가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50년에는 92조 2,500억 달러로 다시 두 배 증가하게 되지요.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경제 성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2015년 세계 총생산이 108조 달러를 넘어섰으니, 1950년부터 60년 정도 만에 열 배 이상 늘어났던 것이지요. 1820년부터 2015년 사이, 그러니까 세 번의 산업혁명이 일어난 결과 세계 경제 규모가 100배 이상 커졌습니다. 이런 수치 역시 산업혁명이 중요한 분기점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