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이티드
내 우울증은 가상의 틱 장애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한 시간이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꺼풀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입 한구석이 따끔거리기를 기다렸다.
“내 틱 증상 보여?”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내 틱 증상 이제 보여?”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내 틱 증상 이제 보여?” 남편에게 물었다.
“안 보인다니까!”
20대 초반에는 실제로 오른쪽 눈꺼풀에 틱 장애가 있어서, 이것이 오른쪽 안면 근육으로 확산되면서 뽀빠이처럼 눈을 찡그리게 되는 증상이 종종 나타났다. 알고 보니 반측안면경련증이라는 희귀한 신경 근육 질환을 앓았던 것인데 귀 뒤의 뇌 신경 두 줄기가 꼬이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스물여섯 살 때인 2004년에 피츠버그의 어느 의사가 미세한 스펀지 조각을 삽입해 꼬였던 두 신경을 분리하는 방법으로 내 경련증을 고쳐주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그 시점에 나는 경련이 재발했다고 ― 스펀지 조각이 어쩌다 빠져서 신경이 다시 꼬인 거라고 ― 확신했다. 내 얼굴이 더 이상 내 얼굴이 아니라, 반란의 조짐을 보이며 부들거리는 신경 조직으로 된 가면으로 변했다. 기계에 고장이 생긴 것이다. 신경이 당장이라도 잘못 점화되어 뱀처럼 몸을 뒤틀며 물을 쉭쉭 뿜어내는 호스처럼 경련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얼굴에 너무 생각을 집중하다 보니 신경 조직이 느껴질 지경이었고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얼굴은 우리 몸에서 가장 확실하게 노출된 부분이지만, 어쩌다 상처라도 입어야 비로소 그 노출된 상태를 깨닫게 되고, 알아차리고 나면 온통 그 생각만 하게 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버릇이 재발했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려고 온갖 치밀한 술책을 생각해냈다. 마치 너무 놀라 한참 얼이 빠져 있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뺨을 감싸거나 날씨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는 듯 다른 데를 쳐다봤지만, 실은 간지러운 신경이 당장이라도 내 얼굴을 정복해 틱 증상을 유발시킬지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다.
틱 증상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내 마음이 반란을 꾀하는 것이었다. 나는 편집증적이고 강박적으로 변해갔다. 누가 내 머리통을 뽑아버리고 신경증이 덜한 머리통으로 바꿔 꽂아주면 좋겠다 싶었다.
남편은 내 간절한 바람이 “고약하다”고 했다.
나는 잠들기 위해 위스키를 들이켰고, 그러다가 위스키에 앰비언수면제―옮긴이을 섞어보고, 또 그러다가 위스키에 앰비언, 자낙스신경안정제―옮긴이, 대마초를 섞어봤는데도 수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잠을 못 자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생각을 못 하면 글도 못 쓰고 사람도 못 만나고 대화도 이어갈 수 없었다. 다시 어린애로 되돌아갔다. 영어를 못하던 바로 그 아이로.
나는 임대료 안정화 조치의 적용을 받는 멋진 로프트에 살았다. 건물이 면해 있는 길은 브로드웨이 남단으로 이어지는 별 특색 없는 통로로, Hot 97 라디오 방송국 히트곡을 연속으로 틀어대는 청바지 상점가로 유명했다. 나는 드디어 원하던 뉴욕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혼이었고 책 하나를 막 탈고한 참이었다. 우울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행복할 때마다 끔찍한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 뒤따랐고, 그래서 재난이 닥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일부러 언짢아지도록 기분을 유도했다. 이 불안감에 짓눌려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친구 하나는 자기는 우울하면 “나무에서 떨어진 나무늘보”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적절한 표현이었다. 외출해서 사람들과 대면하기 전까지는 멍하고 무기력하다가, 나갔다 오면 처맞고 실신한 느낌이었다.
*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한국계 미국인 심리치료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많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나를 보면 내 배경을 바로 이해할 테니까. 건강보험회사 애트나의 정신보건 전문 요원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되는 뉴욕 심리치료사 수백 명 가운데 한국 성을 지닌 치료사가 딱 한 명 있었다. 메시지를 남기자 그 여성 치료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상담 약속을 잡았다.
심리치료사의 작고 어둡게 조명된 대기실에는 무릎 꿇은 여인이 거대한 카라 꽃바구니를 부여잡고 있는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포스터를 끼운 액자가 걸려 있었다. 부들이 꽂힌 밤색 꽃병, 캐러멜색 가죽 안락의자, 죽어가는 산호의 색깔을 띤 양탄자. 대기실 전체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리베라 그림과 비슷한 컬러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치료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제일 먼저 얼굴 크기가 눈에 들어왔다. 치료사의 얼굴이 엄청나게 컸다. 그것이 그에게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순간 궁금했다. 많은 한국 여자들이 자기 얼굴 크기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턱을 깎아 얼굴 크기를 줄이려고 수술대에 눕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흔한 칭찬: “얼굴이 조막만 하네!”)
나는 상담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그가 내게 기본적인 질문부터 하겠다고 말했다. 질문은 그야말로 기본적이었다.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지? 자살을 생각하는지? 나는 질문들이 지극히 표준적이라는 점에 위로받았다. 내 우울증이 실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전형적인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대체로 의기소침하게 그 질문들에 답했다. 심리치료사와 나 자신에게 상담을 받을 필요성을 증명하려고 의기소침을 좀 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린 시절 어떤 때에 편안함을 느꼈나요?” 하는 질문에 이르자, 끝내 그런 순간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그만 흐느끼고 말았다. 나는 치료사에게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 내 우울증, 내 가족사 ― 털어놓았고, 상담이 끝나자 놀랄 만큼 정화된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상담을 받으러 오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애트나 보험사의 환자들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치료사가 모호하게 말했다. “제가 곧 연락드리지요.”
이튿날 나는 다음 상담을 예약하려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24시간이 지나도록 회신이 없어서 메시지를 두 개나 남겼다. 다음 날, 치료사는 자기가 애트나 보험사와의 거래를 중지해 더 이상 나를 환자로 받을 수 없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바로 전화를 해서 자가부담으로 치료비를 지불하면 애트나가 나중에 80퍼센트를 환급해주니 괜찮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회신을 주지 않았다. 그 주에 나는 추가로 음성 메시지를 네 번이나 남겼고, 그렇게 한 번씩 남길 때마다 점점 더 절실해져서 문자를 보낼 수 있도록 휴대폰 번호를 달라고 애걸했다. 그러다가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자동응답기가 나오면 끊고 상담 시간이 아닐 때 통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이 짓을 하루에 대여섯 번씩 하다가 문득 치료사가 발신자 표시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점을 깨닫고 너무 창피해서 그날 온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결국 치료사가 짤막한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환급받으려면 서류 작성이 무척 까다로울 겁니다.” 나는 단축 다이얼로 잽싸게 전화를 걸어 자동응답기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서류 작성은 문제없어요!”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래러미시 소재 와이오밍 대학교에서 개최된 낭독회에 참석해야 했다. 이 무렵에는 극심하게 우울한 상태였다. 얼굴을 도려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간신히 비행기를 탄 것만도 기적이었다. 예상대로 낭독회는 순조롭지 못했다. 청중에게 내 시를 낭독하는 일은 나의 한계를 난폭하게 깨닫는 것과 같다. 청중이 지닌 시인에 대한 관념과 내가 그 시인이라는 증거의 부실함 사이에 놓인 무한대의 간극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도저히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인은 존재감이 별로 없다. 아시아인은 미안스러운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는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조차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양한 요건을 채울 만큼 인종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너무나 탈인종적이어서 실리콘 같은 존재다. 나는 카주 피리 같은 목소리로 내 시를 낭송했다. 낭송이 끝나자 다들 바삐 출구로 향했다.
뉴욕으로 돌아오느라고 덴버 공항에서 환승할 때 내 휴대폰에 심리치료사의 번호가 떴다. “유니스!” 나는 휴대폰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유니스!” 성 빼고 이름만 부른 것이 무례했나? 조 박사님이라고 부를 걸 그랬나?‘유니스 조’는 그 심리치료사의 본명이 아니다. 나는 다음 상담 약속을 언제 잡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캐시, 열의는 참 고마운데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치료사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어요.”
“서류 작성은 문제없어요! 서류 작성 좋아해요!”
“저는 상담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왜죠?”
“서로 잘 맞지 않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피부의 모든 모공이 일제히 아프게 욱신거렸다. 심리치료사가 환자를 이런 식으로 거부할 수 있는지 미처 몰랐다.
“왜 그런지 설명해주시겠어요?” 나는 힘없이 물었다.
“미안합니다. 그럴 수 없어요.”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건가요?”
“네.”
“왜요?”
“그런 정보는 밝히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제가 음성 메시지를 너무 많이 남겨서인가요?”
“아니요.” 그가 말했다.
“저와 아는 사람을 환자로 받고 계시나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상담으로 치료를 받기에 제가 너무 구제 불능으로 망가져서 그런가요, 그렇죠?”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제가 그렇다고 느낄 수밖에요. 내가 절대로 마음을 열어서도 안 되고 내 기분을 말해서도 안 될 것처럼 느끼게 만드시네요. 그랬다가는 내 문제에 모든 사람이 겁먹고 도망칠 테니까요! 이건 심리치료사들이 해야 하는 일과 정반대 아닌가요?”
“어떤 기분이신지 이해합니다.” 그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이 전화를 끊고 나서 제가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면 전부 당신 탓이에요.”
“우울증이 그런 말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가 말했다.
“그 환자는 저처럼 망쳐놓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끊겠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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