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앞뜰이 생기면
두어평 앞뜰이 생기면
옮겨 심으리라
마음속 피고 지던
모란
모란이 피어나면
마당에 나가서 보리라
엄동설한에도 피고 지던
그 마음속
백모란
혼자의 넓이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기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꽃말
나를 잊지 마세요
꽃말을 만든 첫 마음을 생각한다
꽃 속에 말을 넣어 건네는 마음
꽃말은 못 보고 꽃만 보는 마음도 생각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아예 꽃을 못 보는 마음
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
꽃을 못 보는 그 마음도 생각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꽃말을 처음 만든 마음을 생각한다
꽃을 전했으되 꽃말은 전해지지 않은
꽃조차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마음
마음들 사이에서 시든 꽃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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