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994년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이래 26년간 중국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중국에서 거주한 기간은 총 10년인데, 처음 5년은 베이징에서 유학을 하였고, 나머지 5년은 후베이성 우한, 산둥성 지난, 윈난성 쿤밍에서 연구활동을 하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방학이면 답사를 떠났고, 중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학술회의에 참여하였다. 그러니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절반은 중국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안다.
그동안 많은 중국인을 만났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농경민의 후예다운 선량함과 온화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지식인들의 호방하고 심원한 사유는 나를 매료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인과는 완전히 다른 별종도 있었다. 이들은 ‘중국’이라는 말만 나오면 극도로 흥분하고, 중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말을 하면 바로 전투적으로 변하였다. 심지어는 일부러 나를 찾아와 ‘중국’의 위대함과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훈계조로 가르친 이들도 있었다. 나는 이러한 별종의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분노청년’에 주목하게 되었다.
2019년 말 서울에서 다시 분노청년을 만났다. 이들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훼손하고 대자보에 낙서를 하거나 칼로 난도질했다. 이들은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며 “One China!하나의 중국!”를 외쳤다. 심지어는 “독도는 일본 땅”, “한국은 위안부를 한 번 더 당해야 한다”라며 한국을 공격하기도 했다. 낙서 중에는 “해방군 있다”라고 쓴 것도 있었다. 홍콩 시위를 계속 지지하면 중국군이 한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분노청년은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맨플리상에서 한 수상 소감을 두고 중국 네티즌이 분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환치우시보》는 방탄소년단의 발언이 정치적 발언이며, 중국 네티즌이 “국가존엄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어 분노하였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한국인들은 도대체 어떤 말이 중국의 국가존엄을 훼손한 것이며, 무엇이 정치적 발언인지 어리둥절하였다. 그 이전 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예명을 ‘마오’라고 하겠다고 한 말에 중국 네티즌은 ‘마오’가 마오쩌둥을 연상하게 한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인들 중에 ‘마오’라는 말을 듣고 마오쩌둥을 연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중국 네티즌은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오毛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라며 이효리는 유명한 가수인데 설마 모르겠냐”고 한다. 정말 아전인수 격이다.
이 책은 최근 더욱 가까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다가온 중국의 애국주의가 길러낸 분노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왜 ‘분노청년’에 주목하는가?
새롭게 세계 패권을 장악하겠다며 도전장을 내민 중국! 중국 공산당에게는 든든한 지원자인 분노청년이 있다. 분노청년은 1990년대 중반 등장하여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국의 인터넷 극우 청년집단을 말한다. 서양의 분노청년이 자국 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변혁의 주체로 나서려 했다면, 중국 분노청년은 오직 중국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집단에만 분노한다.
분노청년은 “중국만의 현상은 아니다”라는 지적도 있다. 1990년대 탈냉전 이후 진영의 장벽이 허물어짐에 따라 세계화Globalization 현상이 두드러졌다. 세계화에 따라 사람의 이동과 이주가 원활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본과 상품은 진영의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전 세계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 등장한 것이 신新민족주의다. 연구자들은 세계화로 국가정체성이 약화되면서 자기방어적 기제로 신민족주의가 등장했다고 본다. 국가정체성의 존립에 위험을 느낀 국가가 문화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신민족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분노청년의 형성 과정과 목적을 보면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당이 국가를 운영하는 당국체제의 중국에서 애국주의 교육의 근본 목적은 애당愛黨 교육이다. 공산당은 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공산당의 노선을 따르는 인민을 길러내고자 하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분노청년은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 시기 자유파 지식인은 분노청년의 맹목적 애국주의, 애당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2010년대 들어서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 강화로 인해 분노청년과 자유파 지식인은 소멸하고 자간오가 이 자리를 대신하였다. 2010년 초중반 자유파 지식인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을 장악한 자간오는 중국 정부의 관리와 그 가족들이 중심이 된 친정부 인터넷 집단이다. 2016년 이후에는 인터넷 애국청년 집단인 소분홍이 등장하여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소분홍은 그들의 선배인 자간오나 분노청년과 달랐다. 분노청년의 공격 대상이 국내외를 막론하였다면, 자간오는 자유파 지식인을 주로 공격하였다. 이에 반해 소분홍의 주공격 대상은 외국이다. 두 번째는 분노청년과 자간오가 자발적으로 조직된 집단인 데 반하여 소분홍은 공청단이 조직하고 프레임을 짜서 외국을 공격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 이르러 소분홍의 주공격 대상이 한국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외국에 대한 공격 14회 중 한국에 대한 공격은 5회로 36퍼센트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가 외교 문제에서 소분홍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 정부가 한국을 어떠한 방식으로 관리하고자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일본에 대한 공격은 1회뿐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중국 애국주의의 홍위병, 분노청년》이다.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착한 아이들好孩子’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분홍은 “시진핑 주석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인터넷 홍위병이라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 필요
이 책은 중국 애국주의의 본질을 밝히고, 애국주의 교육이 중국공산당이 자신들의 노선에 충실한 인민을 길러내기 위한 정치프로젝트였음을 밝혔다. 분노청년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지식인들은 분노청년을 병적 민주주의라며 이성적인 애국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분노청년이 양산된 원인이 중국 정부에 의한 애국주의 교육 때문이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았다. 즉, 공산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피한 것이다.
중국 사회에는 분노청년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필자가 이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 덕분이다. 200년대 분노청년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였을 때 많은 연구자와 문화비평가들은 논문과 서적, 칼럼을 통해 분노청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는 중국 사회가 자정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은 어떤 중국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충분히 힘이 강력해진 중국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 중국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시 주석은 이미 마음을 굳혔고, 애국주의에 세뇌된 분노청년은 자력으로 폭주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2021년 2월
김인희 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