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준비
내가 그림을 그려도 될까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허락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이건 아마 미술을 진로로 삼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숱하게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림으로 먹고사는 일은 녹록치 않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던 모양이다. 늘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에 만화가 대신 피아니스트를 적었다. 그게 나에겐 어떤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화가가 된다는 미친 생각 따위 하지 않아, 이런 심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물론 피아니스트가 더 비현실적인 대안이었지만 그땐 그조차도 잘 몰랐다. 그저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부정하는 일이 쉬웠던 것 같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항상 숨겨왔다. 그래서 몇 년을 취미 칸에 그림을, 특기 칸에 피아노를 적은 것이다.
과연? 효과는 미미했다. 다들 내 그림을 보고 커서 화가가 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생활기록부에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무도 나에게 미술을 하지 말라고, 화가가 되면 가난해진다고 이야기하며 말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를 허락하지 못했다.
과연 내가 그림을 그려도 될까?
지금 나는 당장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대답을 해주고 싶다. 당연하지, 뭐라도 그려! 종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크레파스 닳는 일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뭐든 그려. 네가 지금 아끼고 있는 그 크레파스는 나중에 영영 찾을 수 없으니까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하는 색깔을 써둬. 참고로 네가 쓰는 사인펜은 무독성이야. 독이 없다는 뜻이지. 입술에 조금 묻었다고 죽지 않아. 그런 걱정을 하며 거울을 들여다볼 시간에 아무거나 그려! (실제로 나는 불어서 칠하는 사인펜을 가지고 놀다가 입술에 물이 든 적이 있다. 죽을까 봐 걱정되어 한참 불어펜의 패키지를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자주색 미술학원 버스나, 풍물놀이패의 흰 옷소매, 세일러문 머리와 만화 캐릭터의 비현실적이 눈까지. 좋아하는 건 뭐든 말이야.
물론 이런 대답을 해줄 미래의 내가 곁에 있었을 턱이 없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림은 특별한 사람이나 그리는 것 아닐까? 남들보다 겨우 조금 더 잘 그리고 좋아할 뿐이야. 마음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을 거야. 나에겐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 그림은 시간 낭비야…… 하며 살았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 낭비를 하는 학생, 그것이 바로 나였다.
차라리 따가운 말을 듣고 포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주변 사람들의 다정은 그렇지 못했다.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때? 이들의 격려에 나는 계속 흔들거리며 대답을 미뤘다. 대신 이런 상상을 했다. 그래. 그림을 그린다고 쳐. 그러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건 너무도 막연했다. 마치 원치 않게 깨어난 새벽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인 것이다.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가만히 어두운 방을 바라본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 당장 망해버릴까? 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 무엇도 볼 수 없는 시간인데 눈꺼풀에 선명한 기운이 감돌 것이다. 그럴 때는 신기하게도 점점 어둠에 파묻혀 있던 책상의 모서리가 드러난다. 곧이어 초침 소리도 크게 들린다. 모서리 너머 나의 공책들이 보인다. 낡은 스탠드와 라디오, 엄마가 사준 와콤 그라파이어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어둠 속인데 그런 것들을 봤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환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면 구석에 감춰져 있던 무언가를 볼 수 있다.
나는 깨닫고 말았다. 평생 이런 것들을 곁에 두고 그림을 아주 오래 그리고 싶은 것이다.
가난하면 미술을 할 수 없어. 하물며 성공하지 못한다면 더더욱 가난해질 거야. 정말 그런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말해. 고흐를 봐. 가난해서 살아생전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잖아. 나는 그렇게 불행하고 싶지 않아.
이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고흐를 좋아해서 도서관 한편 미술 코너에 있던 고흐 책을 전부 다 읽었던 나인데, 그처럼 되는 것은 죽도록 싫었다. 이상한 생각들을 하며 여러 날을 제대로 못 잤다. 나는 이때 잠을 많이 못 잔 것을 여전히 한으로 생각한다. 딴생각을 하며 늦은 시간에 잠든 탓에 키가 160센티미터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순수하게 이런 고민들만으로 잠을 못 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보냈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진로에 대한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림이 날 구하면 구했지, 망칠 것 같지는 않아.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해. 그게 과연 나를 구렁텅이에 넣을까?
나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지?
당신도 지금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을 한번 종이에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보길 바란다. 상상하지 말고, 펜을 들어 종이 위에 내동댕이치자. 재능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유명해질 자신이 없어서? 뭐든 좋으니 모조리 종이에 일단 적어보자.
적고 나면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들이 아니다. 정말이지 꺼내야 알 수 있다. 그게 얼마나 별일이 아닌지 말이다. 머릿속 상상은 크고 넓지만, 앞에 있는 종이는 겨우 A4 사이즈이다. 모든 고민이 그 안에 담긴다. 아니, 여백을 철철 남긴다. 그러니 괴물 같은 두려움을 내 머릿속 운동장에서 뛰놀게 하지 말고, 종이에 끄집어내자. 그다음 이 두려움을 질문으로 바꾸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그림으로 돈 벌 자신 있어?
○ 미래는 어떻게 책임질 거야?
○ 이 정도 재능은 널리고 널렸을 텐데 그걸로 되겠어?
○ 엄청 나이를 먹고도 무명이면 어떻게 할래?
물론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문장만 보아도 마음이 쓰리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싸우기도 전에 도망친다. 하지만 여러분. 두려움을 링 위에서 마주하고 주먹이라도 휘둘러 본 다음 판단하자. 생각보다 당신은 약하지 않다. 차근차근 이 잔인한 질문들에 답해보자. 아, 물론 당장 모든 대답을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사는 방식이 이 질문에 답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한번 해보고 답을 내려보자.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의 답변은 이러하다.
그림으로 돈 벌 자신 있어?
솔직히 그럴 자신은 없다. 일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잘 되거나,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그림으로 사람 한 명 먹여 살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림 말고 다른 일도 마다하지 말고 하자. 적성 검사를 하면 많은 종류의 직업들이 나온다. 이것은 성향이 특정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다양하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림‘만’으로 돈을 벌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두자. 오히려 뭐로든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런 일들 때문에 그림 그릴 시간이 없다고? 아니다. 뭔가 하기 싫은 일들을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도망치게 될 것이다. 딴짓으로 그릴 때가 시간을 마련해 놓고 그릴 때보다 더 잘 그려진다.
그림과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나 단순한 노동을 한다고 해도, 내가 당장 그림으로 돈을 벌지는 못해도, 돈을 버는 일들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돈으로 물감을 사서 즐겁게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으로 꼭 돈을 벌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은 예술가가 꿈꾸는 스스로를 부양하는 수단이지 그림의 목표는 아니다.
미래는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것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질문이다. 너무나 정형화된 코스로 짜인 삶에서는 먼 미래도 지극히 구체적이어서, 그것을 미리 대비하고 학습하는 추세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내가 봤을 땐 20대가 노후를 생각하는 것은 5살이 수능을 준비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일이다. 10대와 20대는 혼돈 그 자체다. 이것을 이겨내기도 쉽지 않은 때에 까마득한 미래를 따지면 정작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된다. 미래는 예측해 봤자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니 통제할 수 있는 현재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낫다. 망할 것 같다고?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일이다. 그 걱정을 하느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망함으로 가는 착실한 걸음이 아닐까.
이상 자기소개였다. 그런 일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앞으로의 나는 너무 까마득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그때의 내 몫이다. 난 현재를 맡았으니 지금을 살아내면 된다.
이 정도 재능은 널리고 널렸을 텐데 그걸로 되겠어?
재능만으로 지속할 수 있는 분야는 없다. 그걸 가다듬을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성의’이지 재능 그 자체는 아니다. 물론 출발선에서는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재능은 지속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재능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과, 그저 묵묵히 해온 사람 간에 차이가 드러난다. 재능이 예술의 완결성을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든 지나고 보면 오래 버틴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다. 노력은 진부한 단어지만 그게 어렵다면 빠른 포기가 최선이다. 포기할 수 없다면? 망설일 시간이 있을까.
엄청 나이를 먹고도 무명이면 어떻게 할래?
지금 봐도 마음이 쓰린, 내게는 가장 아픈 질문이다. 졸업할 즈음엔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결국 회사에서 휴지를 디자인하며 이렇게 되려고 그림을 그려온 걸까 자책했다. 슬퍼하면 더 비참해질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때의 나를 위로한 문장이 있다.
무명을 즐겨라
이 말은, 언젠가는 내가 작가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주문인 동시에 지금 내가 자유의 몸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문장을 읽은 후 나는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명이니까, 사고를 쳐도 아무도 모르겠지.
그제야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림을 보고 그려도 될까? 예전의 나였으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무명을 자각한 내게는 괜찮은 일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겠지. 아주 사소한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빗자루, 무표정, 바나나, 바르셀로나, 손가락 등.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가장 좋아서, 그런 것들만 잔뜩 그렸다.
급작스럽게 유튜브 채널이 커진 하룻밤 사이에 나는 무명을 잃었다. 영원할 것 같아도 언젠가 떠날 녀석이었던 거다. 여러분, 남들이 나를 모른다는 일은 나쁜 게 아니다. 그것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 유명해진 이가 가장 그립게 추억할 시절이 무명이다. ‘아무도 너를 몰라. 그래도 괜찮니?’라는 이 미운 질문에 다시 한번 힘주어 대답하자. 몹시, 충분히 괜찮다고.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이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싸워보지도 않고 많은 일들을 포기한다. 이를테면 내게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글들 중에서 미술 때문에 가난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가난해질 것 같다’라고 말한다. 차라리 겪어봐야 한다.
나는 실제로 부족한 돈과 불투명한 미래와 어중간한 재능과 무명까지 다 겪어봤다. 하지만 겪은 후에야 싸울 면역을 갖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진다. 그러니 이길 때까지 싸우고 샛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게 이기는 방법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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