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유엔은 기념일 챙기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2019년은 아동 인권 관련 협약에 서명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때문에 제네바의 레만 호숫가 팔레윌슨 유엔인권이사회 본부에서는 거창한 기념식이 예정되었다. 이 자축 기념식은 이를테면 유엔이 자신의 무력함을 포장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아동의 권리아동은 열여덟 살 미만의 인간이라고 정의된다에 대한 특별히 엄중한 보호를 명문화한 이 협약은 반드시 지킬 가치가 있는 문명의 성과이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이 협약에 서명하고 비준을 받았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현재까지 열여덟 살 미만의 아동에게도 사형을 허락하는 법이 시행 중이기 때문에 워싱턴 연방 정부는 이 협약에 가입하지 못했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 열여덟 명이 이 협약의 운영을 관리・감독한다. 협약에 가입한 각 국가는 5년마다 자국에서 아동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시행한 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여러 해 동안 스위스 발레주의 미성년 담당 판사인 장 제르마텐을 의장으로 하는 관리위원회가 협약 관련 업무를 시행하면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 협약의 전문과 주요 항목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이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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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조화로운 인격체로 성숙해지기 위해 행복과 사랑, 이해심이 충만한 분위기에서 자라나야 함을 인정하고, 아동이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유엔 헌장에서 선언하는 이상향의 정신, 그중에서도 특히 평화와 존엄성, 관용, 자유, 평등, 연대 의식 등에 맞춰 아동을 기르는 것이 중요함을 고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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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권리 선언에서 표방하고 있듯이, “아동은 신체적, 지적 미성숙 때문에 출생 전이나 출생 후에 지속적으로 특별한 보호, 특별한 보살핌, 특히 적절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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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나오는 내용에 합의한다.
제1조
이 협약이 지니는 의미에 입각하여, 아동이라고 함은 열여덟 살 미만의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데, 당사자 아동에게 적용되는 국내법이 이보다 어린 나이에 성년에 도달한다고 규정하였을 경우는 예외다.
제2조
1. 협약 체결국은 이 협약에서 언급된 권리를 존중하고, 이를 자국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아동에게 아무런 차별 없이, 아동이나 부모 또는 법적 대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와 그 외 다른 견해, 국적, 종족, 사회적 신분, 경제 사정, 개인의 역량, 출생을 비롯한 다른 모든 상황 등과 상관없이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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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조
1. 아동과 관계되는 모든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그 결정이 공공 기관에 속한 것이든 민간 사회 보호 기관에 속한 것이든, 법원, 행정 기관 또는 입법 기관에서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2. 협약 체결국은 아동의 부모나 후견인 또는 그의 법적 책임자의 권리와 의무를 고려하는 가운데, 아동의 복지를 위해 필요한 보호와 보살핌을 아동에게 보장하기로 동의한다. 협약 체결국은 또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한다.
3. 협약 체결국은 아동을 전담하며 아동의 보호를 보장해야 하는 모든 공공 기관 — 여기에는 이들 기관의 업무와 조직이 모두 포함된다 — 의 활동이 관계 당국에 의해 정해진 기준에 합당하도록 관리・감독해야 하며, 특히 안전과 건강, 그리고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의 적정 숫자와 이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 면에서 한층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적절한 관리・감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제4조
협약 체결국은 이 협약에서 인정하는 모든 권리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입법, 행정 면에서는 물론 다른 모든 면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의 경우, 협약 체결국은 각국이 가진 자원이 허락하는 한에서 모든 조치를 취하며, 필요하다면 국제 협력이라는 틀 안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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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조
1. 협약 체결국은 난민 지위를 얻으려 하거나 해당 국내법 또는 국제법이 정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난민으로 간주되는 아동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아동이 혼자이건 아버지와 어머니 또는 다른 누군가와 동행이건 아동이 원하는 보호와 인도주의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함으로써 이 협약을 비롯하여 이 협약 체결국이 가입한 인권 관련 또는 인도주의 성격의 다른 국제기구들이 인정하는 권리를 아동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그러기 위해서 협약 체결국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유엔이며 다른 국제적 정부 단체 또는 비정부 단체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아동을 보호하고 돕고, 난민 아동이 가족과 재결합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고자 아동의 부모를 찾기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에 협조한다. 아동의 아버지나 어머니, 그 외에 다른 가족 구성원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아동은, 이 협약에서 언급된 원칙에 따라,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시적으로 혹은 결정적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동일한 보호를 받아 마땅하다.
2019년 현재, 에게해의 다섯 군데 핫 스폿에 발이 묶여 있는 난민들 가운데 35퍼센트 이상이 아동들이다.
공식적인 수용소에 있건 비공식적인 텐트촌에 있건, 난민 아이들은 교육이나 이른바 “어린이 고유의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동들에게는 적절한 식수와 충분한 음식, 학교, 놀이시간 등이 모두 결핍되어 있다. 그 아이들은 성인들, 특히 경비대원들에 인한 성 학대를 비롯한 여러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눠 본 아이들은 불안에 시달리며, 고립되어 있고, 허약하다. 이 아이들은 다치기 쉬운 약한 존재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죄수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며, 때로는 심지어 중범죄인 취급도 받는다. 이러한 수용소들에 대한 정보의 부재로 말미암아 아동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그보다 조금 아래쪽으로 계속 읽어 가다 보면 이런 대목도 나온다.
이 아이들 대다수가 겪는 심각한 트라우마는 아이들의 정신 건강과 발달에 중대한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가 만나 본 아이들은 섬에 도착한 이후 단 한 번도 심리적인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 특사들은 “유럽이 이 어린이들에 대해서 중대한 법규 위반을 자행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중에서도 동반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들의 사례야말로 가장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들의 끔찍한 폭격, 네이팜탄, 시리아 전투기의 범용 폭탄 세례, 사린 가스를 내뿜는 바샤르 알 아사드 군대의 수류탄은 지금껏 수천 명을 목숨을 빼앗고 부상을 입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수십만 가구가 말살당했다. 미성년 고아들은 겁에 질려 탈출한다. 혼자 또는 마찬가지로 고아가 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모리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시리아인, 이라크인, 아프가니스탄인, 이란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너무도 참혹한 이야기들을 내게 들려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탈출은 고문, 착취, 약탈, 군인・세관・경찰・도주 과정에서 통과하게 되는 나라의 범죄 조직 등에 의한 비인간적인 환경에서의 임의 구금 등으로 점철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놓인 마지막 관문이 에게해 횡단인 것이다. 에게해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 계절에 따라 해상 조난이 잦은 곳이다. 이 고행은 때로는 2년에서 3년까지도 계속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다에서의 조난으로 온 가족이 몰살하기도 한다. 천신만고 끝에 육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꽃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경찰의 개입으로 한 가족이 느닷없이 이산가족이 되기도 한다. 졸지에 어린아이가 의지할 사람 없이 혈혈단신 혼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사실상 부모와 헤어지게 되고 만다. 한번 이렇게 되고 나면 그 아이가 부모를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반 보호자 없는 아동의 수는 에게해의 다섯 개 핫 스폿에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파트리스 만수르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40대 중년 남자이다. 그의 두 눈엔 슬픔이 고여 있다. 그는 본래 레바논 출신이지만 스웨덴에 귀화했다. 그는 현재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한다.
나는 국제이주기구가 사용하고 있는 가건물의 처마 밑에서 그를 만났다. 마침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참이었다. 바닥은 질척거렸다. 크고 검은 눈에 마른 몸, 환한 미소가 빛나는 어린 사내아이 두 명이 천 쪼가리로 만든 공을 가지고 그 진창에서 축구를 했다. 한 녀석은 다 찢어진 꼬질꼬질한 러닝셔츠 차림이고, 다른 녀석이 입은 반바지는 어찌나 더러운지 옷감이 반질반질할 정도인 데다 군데군데 구멍이 난 상태였다.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녀석들의 검은 머리는 까치가 집을 지은 듯 덥수룩했다. 맨발로 공을 차는 두 녀석의 온몸은 진흙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자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에 열중했다.
만수르는 그 아이들을 잘 알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랍어로 이야기하면서 이따금씩 종이와 색연필을 가져다주었다. 처마 밑에서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다만 얼마 동안이나마 아이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불안을 잊으라는 배려였다.
“이 무슨 낭비란 말입니까!” 만수르가 볼멘소리를 했다.
두 아이는 벌써 2년 반째 NATO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네 벽 속에 갇혀 있다. 모리아 난민 수용소엔 학교가 단 한 곳도 없다. 유치원도 물론 없다.
그러니 참으로 기가 막힌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내 손자 카림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이 두 아이들을 교육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 어찌 시간 낭비가 아니란 말인가.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제이주기구의 가건물 앞 진흙탕에서 누더기 축구공을 차는 두 녀석은 이른바 동반 보호자 없는 아동들이다. 한 녀석은 가족들과 야르무크에 살다가 혼자만 목숨을 건졌다. 푸틴의 범용 폭탄이 아이의 엄마, 아빠, 그리고 두 여동생과 하나뿐인 남동생까지 모조리 죽였다.
파트리스 만수르의 말로는 “저 애는 그래서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폐허가 되어 버린 동네를 떠났습니다. 어른들은 터키에서 학대를 당했고, 수중에 있던 돈을 갈취당했죠. 마침내, 마지막 남은 돈을 탈탈 턴 덕분에 밀입국 안내원들이 콩나물시루같이 비좁은 고무보트에 태워 줬습니다. 레스보스행 보트였죠.”
또 한 녀석은, 나이가 약간 더 들어 보이긴 하지만, 눈동자에서 불안감이 엿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엄마와 같이 불타는 구타 오아시스를 빠져나왔다. 제빵사인 아이 아빠는 시리아 공군의 비밀 요원들에게 몇 년 전에 체포되었고, 그 후 아무도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아이는 자기 아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아이의 엄마와 여동생, 형은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해협을 건너던 중 모두 익사했다.
고기잡이배 한 척이 아이를 구했다. 이제 아이는이 세상천지에 혼자다. 동행이라고는 없이 NATO의 철조망이 세 층으로 쌓인 모리아의 수용소 안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동 관련 협약은 동반 보호자 없는 아동들은 어른들과 분리된 곳에서 잠을 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모리아의 공식 수용소에 설치된 유엔난민기구에서 제공하는 대형 텐트 안에서는 최소한 15명이 체류하며, 비공식적인 난민촌 “올리브나무 숲”에서는 동반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성인들과 섞여 있다.
밤이면 그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성인들의 처분에 맡겨지는 신세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동반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들은 자신을 방어할 아무런 힘이 없는 관계로 성적 학대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비리는 반복적으로 자행된다.
그리스 법에서는 검사가 동반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의 후견인 역할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엔 이주권 특별조사관 프랑수아 크레포는 “동반 보호자 없이 섬에 도착하는 아동들의 수가 많다 보니 검사가 아동들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지켜 주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주와 망명권 분과 조사관들이 현장을 방문한 이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유엔인권이사회 특별조사관의 조사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에도 난민 아동들과 관련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아, 유럽 각국 정부의 끝 모를 위선! 그들은 아동 권리 협약 체결 30주년을 요란스럽게 자축하는 순간에도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모리아 난민 아동들의 참혹상을 모르는 척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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