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버지
오늘도 아이들은 자고 있다
애들 엄마만 일어나
딱 15분쯤 마주앉는다
나는 식빵을 먹고
애들 엄마는 밥을 먹는다
아이들 얘기를 하거나
조간신문에 나온 기사를 소재로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다
가방을 메고 현관으로 나온다
허리를 숙여 신발을 신다가 문득
이제 그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나이보다도 더 일찍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오늘 나처럼 신발 신기 싫었을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신촌에서 부평역까지 버스도 안 타고
평생 걸어 다닌 아버지도
오늘 나처럼 문득 그만 가고 싶었을까?
내가 안 가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가
나와 내 가족의 안온함은
이아침 나의 비장함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이아침 나는 누구인가
나, 아버지
어느 날 미사에서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신부님이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라고 해서,
옆자리에 있던 애들 엄마와
마주보고 고개를 숙이며,
‘평화를 빕니다’
인사를 나누는데,
애들 엄마의 평생의 비평화는
대부분 나로부터 비롯된 것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제가 평화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하지 않나?
장인의 추억
그날, 교장이 불러 교장실에 내려가니
뜬금없이 장인이 앉아 계셨다
교육장이 같은 종씨라며
그 먼 대전에서 대천까지 일부러 만나러 왔다가
급기야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방문한 것이었다
교육장과 고등학교는 행정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다는 걸 알 리 없는 장인어른은
당신이 교육장과 같은 임씨이니
나를 잘 봐주라고
교장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려고 찾아온 것인지
살아계실 적 물어보지 않아 나는 모른다
그 연세의 어른들이 그렇듯
풍천 임씨니 진주 임가니 따지는 게
장인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진주 임씨 중 현재 누가 무슨 자리에 있는지 찾아보는 게
장인 삶의 가장 큰 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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