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낯선 사람의 차에 올라타고 낯선 사람의 집에서 머물며 여행한다. 가상화폐를 사용하고 SNS 상의 말들을 믿는다. 알리바바, 에어비앤비, 우버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가 확장되었고, 새로운 사업 모델들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언론과 기업, 전문가와 정부 등에 대한 신뢰는 익명의 사람들에게로 옮겨갔는가? 전 세계의 최근 사례들을 통해 ‘인간 신뢰’의 달라진 양상을 ‘분산 신뢰’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레이첼 보츠먼의 주장을 살펴본다.
1장
어떻게 낯선 판매자를 신뢰할 수 있을까?
(중략)
시스템에 대한 신뢰로 관계의 신뢰를 뛰어넘다
마윈은 인터넷이 공산주의에 억눌려 있던 중국의 기업가 정신을 해방시켜줄 것임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기술을 이용해서 신뢰를 끌어낼 가능성, 쉽게 말해 낯선 판매자를 친숙하게 보이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간파했다. 그런데 관시 중심의 중국 사회에서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유형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까?
관시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둘째치고라도 알리바바가 설립될 당시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중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전자상거래는커녕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낯선 시절이었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한 경험이 전무하고, 온라인 결제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물건을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할 수단도 없었다. 알리바바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신뢰 문제를 해결했을까?
인터넷으로 물건을 거래할 때 대개 양쪽은 서로를 모른다. 사기꾼을 만날까 봐 경계하고 물건이 약속대로 배송되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령 내가 이베이 판매자에게 웨어러블 건강장비 핏비트Fitbit를 구입한다면 이런 걱정이 들 것이다. 정말 새 제품이 배달될까? 반품된 물건은 아닐까? 위조품이나 도난당한 물건은 아닐까? 무언가 잘못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마윈은 기술을 활용해서 불확실성을 줄이거나 위험 수준을 떨어뜨려 온라인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신뢰를 구축해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윈은 신뢰 문제가 커질수록 사업적인 기회도 커진다는 사실도 알아챘다.
어찌 보면 마윈은 스티브 잡스와 닮았다. 마윈은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시장에 놓인 장애물을 직접 해결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거라고 믿었다. 결제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이 정말로 결제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또 내가 결제하면 당신이 물건을 보내줄지 어떻게 알겠는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오랜 신뢰 문제다.
마윈은 이렇게 말했다. “알리바바는 3년 동안 단지 정보용 전자상거래에 불과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가졌나? 나는 무엇을 가졌나? 한참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결제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은행에 문의했습니다. 어느 한 곳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은행들이 ‘안 됩니다, 그런 건 절대 안 될 겁니다’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중국의 엄격한 금융법상 허가 없이 결제 시스템을 운영한다면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게 분명했다. 감방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왜 그렇게 결심했을까? “중국 사람들에게 이런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2004년 알리바바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支付宝, Alipay, ‘지불의 보물’이라는 뜻를 출시했다. 페이팔PayPal 같은 직접 결제 방식이 아니라 알리페이에서 구매자에게 돈을 받아 에스크로 계정두 거래 당사자 대신 제3자가 돈을 예치하는 펀드에 돈을 예치했다. 판매자가 물건을 보내면 구매자가 물건을 확인하고 만족한다고 확인해야 에스크로 계정에 묶인 돈이 풀리는 방식이었다. 이로써 결제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간단히 줄일 수 있었다.
마윈은 알리페이에 관해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다들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규제가 심한 중국 금융업계의 발가락을 밟는 짓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마윈은 다들 위험하다거나 어리석다고 아무리 경고해도 “사람들이 이용하기만 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말로 그 방법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4억 명 이상이 알리페이로 결제한다. 알리페이는 독립 사업체로, 기업가치가 5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2015년 중국 온라인 결제의 약 70퍼센트가 물건이든 월세든, 공과금이든 전화요금이든, 과외비든 알리페이를 통해 이뤄졌다. 결제 시스템은 그렇다고 해도 마윈은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미지의 중소업체나 개인 판매자를 대중이 신뢰할지 어떻게 알았을까?
알리바바 기업공개의 날, 개장의 종을 울린 판매자들 중 한 명인 서른여덟 살의 왕지창은 농촌에서 올라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이었다. 길거리 좌판에서 채소를 팔고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고 음식을 배달하는 일도 했다. 그는 교육을 많이 받은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베이징의 중관춘에서 6년 넘게 온갖 허드렛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2006년 컴퓨터를 구입한 뒤, 고향인 중국 산시성 북부의 작은 농촌 마을로 돌아갔다. 집에 인터넷을 연결하는 난관을 극복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쌀이나 콩 같은 지역 농산물을 몇 가지 판매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으로 중국 전역이 뜨거웠던 2008년, 드디어 왕지창이 간절히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지역 농민들이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팜빌Farmville’을 열었다. 곧 매출이 급증해서 하루에 200건이 넘는 주문이 이뤄졌다. 현재는 월 순이익이 8만 위안약 1만 3,000달러을 넘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 구석의 얼굴도 모르는 낯선 판매자를 신뢰하게 되었을까?
그 답은 알리바바에서 2001년 시작한 트러스트패스TrustPass라는 서비스에 찾을 수 있다. 판매자가 트러스트패스 인증을 받으려면 제3자의 신분증명서와 은행 계정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알리바바는 판매자들이 공식 업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도록 브랜드를 만들고 가상의 매장 진열대를 꾸미는 작업을 지원했다. 예를 들어 왕지창은 시골 농장의 일상과 농산물 재배 과정을 담은 사진을 쇼핑몰에 올렸다. ‘농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쇼핑몰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공급자와 연결된 느낌을 주고 싶어 했다.
트러스트패스는 신뢰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수익 면에서도 알리바바에 돌파구가 되었다. 트러스트패스 인증을 받은 판매자는 인증을 받지 않은 판매자보다 주문 문의를 평균 6배 더 많이 받았다. 이는 알리바바에 소규모 업체에도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완벽한 근거가 되었다. 사실 그전에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무료였다. 마윈의 친한 친구이자 알리바바의 오랜 직원인 포터 에리스먼Porter Erisman은 이렇게 말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인증을 받은 판매자는 더 믿을 만해 보입니다. 무료 계정만 고집하는 판매자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니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한다면 돈을 조금 내더라도 인증을 받고 싶지 않을까요?”
알리바바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온라인 쇼핑몰이 아니라 신뢰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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