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센의 노래
1.
이것은 불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요
불은 번져가고
몸이 점점 뜨거워져요
강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노래를 불러요
강물도 끓어오르기 시작해요
뜨거워요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요
사랑이여, 도와줘요
비의 노래를 불러줘요 비를 불러줘요
2.
이것은 비의 노래,
노래할 때마다 불꽃이 하나씩 꺼져요
비가 내리고
몸이 점점 식어가요
강물도 가라앉기 시작해요
기다려요 기다려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이 소나기가 당신을 적실 때까지
사랑이여, 사라지지 말아요 노래를 불러줘요
3.
그러나 노래의 휘장은 찢기고
비에 젖은 잿더미만 창백하게 남아 있는 밤
불과 비도
어떤 노래도 더이상 들리지 않는 밤
*고대 인도의 가수 탄센과 그의 딸에 관한 신화
파일명 서정시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줌
손톱 몇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통인지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Deckname
붉은 텐트
들어오세요
이 붉은 텐트 속으로
여자들은 모두 여기 와서 피를 흘려요
한달에 한번씩
아니, 하루에도 몇번씩
피에 젖은 깃발처럼
상처 입은 새처럼 바람에 파닥거리는
붉은 텐트 속으로
바닥에 흩어진 딸기를 밟고 가는 사람들이여
이 절벅거리는 슬픔을 보세요
으깨진 살과 부르튼 입술로 노래하는 이여
입술을 둥글게 오므려보세요
노래는
숨결을 모아 소리의 화환을 만드는 것
귀를 틀어막고 지나는 사람들이여
이 노래를 들어보세요
싸이렌의 노래를
우리는 저마다 기울어지는 난파선이니
깜빡이는 불빛으로 다른 난파선을 비추는 눈동자이니
가라앉는 손을 잡는 또 하나의 손이니
어서 들어오세요
우리의 피로 빚어진 붉은 텐트 속으로
난파된 교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조끼를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을 해주었더라면
몇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그들이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만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조끼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어떤 분류법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이 된 하이데거는 나치스에 입당했지만, 일년도 되지 않아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후임 총장은 당과 협의해 교수를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전혀 불필요한 교수
반쯤 불필요한 교수
필요 불가결한 교수
물론 하이데거는 전혀 불필요한 교수로 분류되었다. 1944년 11월 그는 국민돌격대에 소집되었다. 독일이 패전하고 프라이부르크에 프랑스 점령군이 들어왔을 때, 나치정화위원회는 그의 교수직을 박탈했다. 그의 집과 책들 역시 압수되었다. 프랑스 군정은 나치에 대한 하이데거의 행적을 ‘당에 복종하지 않는 형태로 동참했다’고 결론 내렸다.
전혀 불필요한 교수
반쯤 불필요한 교수
필요 불가결한 교수
요즘 대학에서도 이 분류법을 유효하다. 나치스 대신 자본주의라는 장갑을 낀 손으로 교수를 감별해낸다. 필요성보다는 불필요성을 가려내기 위한 분류법.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전혀 불필요한 교수로 분류된다. 책상이 사라지고 연구실이 사라지고 학과가 사라지고 단과대학이 사라지는 것도 종이 한장으로 가능하다. 그들이 그린 조직도 속에서, 그들이 정한 분류법 속에서
K는 하루하루 진화화고 있다
반쯤 불필요한 교수에서 전혀 불필요한 교수로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