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어쨌든, 모든 것은 변한다
기내 안내 방송이 나왔다. 〈워싱턴 D.C.를 출발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 도착 예정인 3935 여객기에 탑승하신 손님들은 소지품을 가지고 비행기에서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들은 계단을 내려와 뜨거운 활주로에 모여 섰다. 그곳에서 그들은 이상한 일을 목격했다. US 에어웨이 여객기의 바퀴가 굳지 않은 시멘트처럼 물렁물렁한 상태의 검은 활주로 포장재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어찌나 깊숙이 박혀 있던지 견인 트럭이 힘껏 잡아당겨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항공사는 승객 서른세 명의 몸무게라도 덜어 내면 트럭으로 충분히 견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그 예측은 빗나갔다.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내가 타려던 항공편이 왜 취소됐냐고? 워싱턴 D.C.의 찌는 듯한 폭염 때문에 비행기가 활주로 포장재에 10센티미터쯤 박혀 버렸으니까.〉
결국 훨씬 더 크고 힘이 좋은 트럭이 도착한 후에야 견인 작업은 성공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3시간 늦게 이륙했다. 항공사 대변인은 이 사고를 〈이상 고온〉 탓으로 돌렸다.
2012년 여름에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2011년에도, 2013년에도 이상 고온 현상이 있었다.) 이상 고온 현상의 원인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 연소. US 에어웨이 역시 활주로 포장재가 녹는 사고로 불편을 겪으면서도 비행기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화석 연료 연소는 급격한 기후 변화를 야기하고, 기후 변화는 역으로 화석 연료를 태워 대는 인간의 능력에 제동을 걸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형국이다. 그럼에도 3935 여객기 승객들은 다시 비행기에 올라 예정했던 여정을 이어 갔다. 이 사고를 주요 기사로 다룬 뉴스에서 〈기후 변화〉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물론 나는 이 승객들을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 비유법을 써서 말하자면, 어느 지역에 살든지 고도의 소비 생활을 하는 우리는 모두 3935 여객기의 탑승객이니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가 닥쳤는데도 우리 문화는 위기의 원인이 되는 행위를 계속하며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비행기를 견인하기 위해 훨씬 강력한 엔진을 갖춘 트럭을 불러들인 항공사처럼, 세계 경제는 전통적인 화석 연료 채취 방식에서 훨씬 더 더럽고 위험한 화석 연료 채취 방식 ─ 앨버타 타르 샌드에서 역청을 채취하는 활동, 심해 유전을 뚫어 원유를 채취하는 활동, 프래킹 방식(수압 균열법)으로 가스를 채취하는 활동, 산을 깎아 내 석탄을 채취하는 활동 등 ─ 으로 옮겨 가며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새로운 반격에 나선 기후는 더욱 강력해진 자연재해로 지구 온난화의 주역인 화석 연료 산업에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2013년 기록적인 홍수가 캘거리를 덮쳤을 때 앨버타 타르 샌드 광산을 운영하는 석유 회사들은 작업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귀가시켜야 했으며, 가연성 원유를 실은 열차는 홍수의 공격을 받아 무너져 내리는 철도 다리 앞에서 간신히 멈춰 섰다. 2012년 가뭄으로 미시시피 강의 수위가 낮아지자 석유와 석탄을 실은 화물선들은 며칠 동안 발이 묶인 채 육군 공병대가 강바닥 준설을 완료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육군 공병대는 그 전해에 같은 지점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홍수 피해를 복구할 목적으로 할당된 예산을 끌어다 준설 비용으로 써야 했다). 또한 여러 지역의 석탄 화력 발전소들은 냉각수로 이용해 오던 강물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혹은 그 양이 너무 부족해서 가동을 임시 중단해야 했다.
이처럼 위기에 직면해 삐걱거리는 역사적 순간에 살아간다는 것은 일종의 인지 부조화를 야기한다. 애써 무시해 온 위기가 정면에서 우리를 공격하는데도 우리는 그 위기를 일으키는 활동을 더욱 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기후 변화를 부정했다. 물론 기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기후 변화는 헛소리다. 겨울이 변함없이 찾아오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나 티 파티 지지자들과 같은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선 문외한이었고, 공포감을 자아내는 대부분의 뉴스 보도들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과학은 너무 복잡하며, 환경주의자들은 바로 그런 과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항공사의 〈엘리트급〉 고객 신분을 입증하는 골드 카드를 지갑에 넣어 다니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기후 변화를 부정한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금세 관심을 딴 데로 돌려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혹은 농담으로 넘겨 버리기도 한다. 〈세계 종말의 조짐이 계속 늘고 있군!〉 이 역시 외면의 한 방법이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인간은 영리한 동물이니 대기 중의 탄소를 안전하게 흡수하는 기적의 기술이나 태양열을 차단하는 마법과 같은 방법을 발명해 낼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기도 한다. 내가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던 이 같은 행동 역시 외면의 한 방법이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경제를 고려하면 기후 변화보다 성장에 집중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부의 확보야말로 기상 이변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최선의 보호책이다〉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합리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돈을 더 많이 벌어 두면 도시가 물에 잠길 때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입장이다. 이 역시 정책 입안자들이 일삼는 외면의 하나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사는 게 너무 바쁘니 그처럼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뉴욕 시의 지하철이 침수되고 뉴올리언스의 홍수 때문에 사람들이 지붕으로 대피했다는 뉴스를 접했으면서도, 그 누구도 기후 변화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며 게다가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완벽하게 이해한다 할지라도, 이런 행동 역시 외면이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뿐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명상을 하고, 농민 직영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자동차 운전을 그만하자고 결심한다. 하지만 기후 위기를 향해 치달아 가는 시스템, 즉 〈나쁜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며 따라서 머지않아 작동을 멈출 이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예 잊고 만다. 물론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 역시 해법의 하나이므로 자신이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노라고 자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한쪽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셈이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그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기억하기, 그런 다음 다시 망각하기. 기후 변화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넣고 있기 어려운 문제다. 생태계 위기와 관련해서 기억과 망각을 단속적으로 되풀이하는 우리의 건망증에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기후 위기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질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걸 피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건 정확한 예측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계속 늘려 나가는 현재 경로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기후 변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대도시는 침수 피해를 겪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가 바닷물에 잠기며, 우리의 자녀는 맹렬한 폭풍과 혹독한 가뭄의 공격에 직면해 대피와 피해 복구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할 것이다. 원하는 것이 이런 미래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된다. 특별히 애써서 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 지금껏 해온 일들(이를테면 기술적인 해법에 의존하거나, 텃밭 가꾸기에 몰두하거나, 사는 게 바쁘니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여유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거나)을 지속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심각한 위기는 딴 세상 이야기인 양 행동하면 그만이다. 실제로는 겁에 질려 있더라도 겁먹을 일이 전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그토록 두려워하던 지점에, 줄곧 외면해 왔던 바로 그 실체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애써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말이다.
이런 소름 끼치는 미래를 파악할 수 있는, 그 미래의 참혹함을 최대한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방법 역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리라는 점이다. 그것은 고도의 소비 생활에 익숙한 우리의 생활 방식과 경제의 작동 방식, 그리고 지구의 생태계에서 인간이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한 사고방식까지 변화시킬 것이다. 물론 희망적인 변화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재앙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변화도 많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줄곧 기후 변화의 현실을 외면해 오던 내가 처음으로 여기에 눈길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있다. 2009년 4월,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나는 제네바에서 세계 무역 기구 주재 볼리비아 대사인 앙헬리카 나바로 야노스를 만났다. 무역 대표 겸 기후 대표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이었다. 한적한 중식당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볼리비아 국민들 입장에서는 기후 변화가 가공할 위협이자 동시에 기회라는 주장을 폈다(젓가락을 이용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궤적을 표시하는 그래프까지 그렸다).
볼리비아에서 기후 변화가 위협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볼리비아는 음용수와 농업용수의 대부분을 빙하에 의존하는데, 수도를 굽어보는 산들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하얗던 산 정상이 갈수록 빠르게 회색과 갈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기후 변화가 기회가 되는 이유는 이러하다. 볼리비아 같은 나라들은 온실가스 급증의 원인을 제공한 일이 없으므로 〈기후 채권자climate creditors〉의 지위를 가진다. 한마디로 이들 국가들은 기후 관련 재해 대응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확보하고 청정에너지 경로를 통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온실가스 대량 배출 국가들에게 금전적·과학 기술적 지원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최근 그녀는 UN 기후 회의에서의 연설을 통해 이와 같은 부富의 이전 계획을 제안했다. 그녀가 내게 건넨 연설문 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작은 섬과 최저 개발국, 내륙국과 브라질, 인도, 중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의 취약한 공동체에 속한 수백만 인구는 기후 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일이 없음에도 기후 변화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 향후 10년 안에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한 대규모 계획을 시행해야 한다. 바로 지구를 위한 마셜 플랜이다. 이 계획에 따라 우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 조달과 기술 이전을 조직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동시에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든 나라에서 기술적인 약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은 딱 10년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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