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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Bernard Sanders〕, 1941~를 꼽는다. 그에겐 정치적 업적이라는 게 딱히 없다. 이 대답에 어떤 이들은 뜻밖이라는 표정이고, 어떤 이들은 너무 노골적이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렇다. 솔직히 나의 대답은 매우 의도적이기도 하다.
샌더스는 주목받을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대통령은커녕 후보로도 뽑히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소속 정당도 없는, 어찌 보면 독불장군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늙은’ 미국 정치인에게 매료되는 것일까?
버니 샌더스는 미국 버몬트주 상원의원이다. 그는 미국 상원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힐러리 클린턴Hilary Clinton, 1947~과의 경쟁에서 패배했을 때였다. 그저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여기던, 민주당 소속도 아니고 ‘노인네’ 상원의원으로 대선 후보 경선에 단기필마로 뛰어들었던 버니 샌더스는, 나이는 가장 많았지만 생각은 가장 젊은 진보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그는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출마해 초기에는 대단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를 꺼리던 후보들과 그의 지지자들이 트럼프Donald John Trump, 1946~와 맞설 현실적 대안으로 조 바이든Joe Biden, 1942~을 선택함으로써 중도하차하며 후보를 양보했다. 그의 대권 도전은 또다시 좌절됐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실패한 정치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버니 샌더스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아버지와 러시아 및 폴란드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시카고대학 재학 중 인종차별적인 기숙사 배정 시스템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다 경찰에 연행된 적도 있었던 샌더스는 현재 미국 상원의원 가운데 마티 루서 킹 목사의 1963년 워싱턴 집회에 참여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들었던 두 사람 중 하나였다.
샌더스는 1960년대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체험했고, 1960년의 정신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견고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대학생 샌더스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굽히지 않고 저항했으며, 저소득층 학생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청년 시절에는 순수하고 진보적 가치에 매료되지만 현실 사회에 뛰어들고 권력과 돈의 맛에 길들면서 쉽게 변절하거나 변화한다. 그러나 샌더스는 무모할 만큼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며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진보적 정치관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것도 그런 열정과 헌신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의 정치 이력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작은 ‘낙선의 제왕’에 가까웠다. 버몬트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에 연거푸 낙선했고, 1972년 인구 4만 남짓한 작은 도시인 버몬트주 벌링턴Burlington시 시장 선거에 나서 민주당 후보를 겨우 10표 차이로 재치고 당선된 것이 정치 이력의 출발점이었다. 벌링턴시 시장에 네 번이나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주지사 선거와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늘 낙선했다. 그러던 1990년, 버몬트주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중앙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내리 8선의 하원의원을 거쳐 2006년 버몬트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그의 나이 65세 때였다.
샌더스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2010년 12월 10일 필리버스터Filibuster 건이었다. 그는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1961~ 정부의 부자감세법안의 통과 저지를 위해 무려 8시간 37분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70세의 노정객은 소득 격차를 확대하는 부자 감세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여 오히려 부자 증세를 통해 중산층의 붕괴와 빈곤층의 증가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일로 그는 일약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필리버스터와 버니 샌더스의 이름을 합성한 ‘필리버니Filibernie’라는 애칭을 얻었다.
버니 샌더스가 두 차례 대통령 후보 선거전에 뛰어든 것도 보수적인 미국 정치의 틀을 깨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전국민의료보험 보장’, ‘소득과 부의 불균형 해소를 위한 조세 개혁’ ‘임금격차 해소’ ‘취약계층보호’ ‘노조의 활성화’ ‘대학학비 인하’ ‘월스트리트 해체’ ‘기후변화 역전’ 등의 진보적 공약을 내세우며 고액 기부자가 아닌 일반 시민 유권자의 소액 기부로 선거전을 치렀다. 버니 샌더스는 끝내 후보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던진 청년 같은 정치적 메시지는 시대정신을 인식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정치개혁의 당위를 진지하게 일깨웠다. 그는 나이 들수록 보수화한다는 통념을 보란 듯 깨뜨렸다.
또한 샌더스는 2013년 미국 상원 환경공공사업위원회에서 위원장 바버러 복서Barbara Boxer, 1940~와 함께 상원에서 최초로 탄소세Carbon Tax 도입안을 발의했다. 당연히 다른 의원들은 탄소세 발의에 반대했다. 그것 때문에 미국 내 거의 모든 시설물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발의안에 따르면 탄소세로 거둔 세입으로 에너지 효율 및 다른 지속가능한 에너지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탄소세 부담으로 에너지 가격을 인상할 경우에 대비해 소비자들에게 환급을 제공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샌더스의 진보적 태도와 꺾이지 않는 소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는 그게 궁금했고 그럴수록 그에게 주목했다.
어쩌면 그는 이상주의자인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딱지가 그에게 붙는다. 이상주의자라는 건 비현실적인 사람이라는 비아냥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다. 버니 샌더스의 거의 ‘경악’스러울 만큼 진보적인 정치관이나 경제학적 태도는 과연 그것이 미국의 체제와 가치관을 고려했을 때 실현 가능한지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샌더스는 조금도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빵 한 조각을 요구하면 반 조각이라도 받지만, 빵 반 조각을 요구하면 부스러기를 받을 뿐이다”라며 개혁과 진보가 왜 필요하고 유의미한지 환기한다.
민주당 당원이 아니그는 50년 이상 무소속을 고수했다면서도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던진 메시지는 계속해서 ‘우클릭’하던 민주당의 보수화에 제동을 걸었을 뿐 아니라, 시민과 유권자가 무엇을 요구하고 외쳐야 하는지를 깨닫게 했다.
물론 샌더스라고 결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도 허물이 제법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더 큰 허물과 결점이 뒤범벅된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했을 때 그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진보이며, 주류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아웃사이더이다.
나는 버니 샌더스를 ‘히피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돈키호테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현실에 안주하거나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을 때, 기성 체제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용감한 노인네’이다. 어쩌면 그가 1960년대의 이상과 가치를 70세가 넘어서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른바 4·19세대와 6·3세대가 맹활약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 끝까지 1960년대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며 실천했을까. 심지어 지금은 586세대가 된, 이른바 386세대들조차 빛의 속도로 현실과 타협하거나 심지어 부패하고 타락한 경우도 흔하지 않은가. 물론 끝내 타협하지 않은 이들이 없지 않지만, 대다수는 기성 정치에 함몰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득권에 타협하고 권력을 누렸다.
약자의 권리를 위해 애쓰고 그런 법안을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매력적인 이익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 많은 이들이 후원하지 않고는 권력을 얻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나는 버니 샌더스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960년대 정신을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1960년대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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