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 다래 잎사귀에서 광택 나는 녹색이 눈부신 노랑가슴녹색잎벌레를 만났다. 카메라 렌즈에 비친 5밀리미터 남짓한 자그마한 곤충은 현란한 몸 색깔, 여러 마디가 구슬 꿰듯 이어진 더듬이, 외계인 같은 겹눈, 로봇 같은 입, 미세한 털이 달린 다리, 옴폭옴폭 패인 수많은 점각들로 멋을 부린 딱지날개까지 오밀조밀 있을 게 다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전율이 일었다. 대학 시절 전공 시간에 탐독한 셰익스피어의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은유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후로 곤충을 보면 예쁘기도 하거니와 호기심이 발동해 시간 날 때마다 들과 산을 쏘다니며 곤충들과 데이트를 했다. 두 아들이 곤충 중독증에 걸린 기분이 이랬을 터인데, 녀석들이 곤충에서 손을 놓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어 미안했다.
당시만 해도 곤충도감이나 곤충 관련 책들이 많지 않은 터라, 곤충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더해갔다. 보면 볼수록 귀엽고 신비롭고 앙증맞은 곤충들의 속내, 몸짓과 베일에 싸인 사생활을 어찌 알 수 있을지 애태우며 고민도 늘어갔다. 아마추어가 곤충 전문가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고, 도감이나 책도 귀했다. 하는 수 없이 일본의 서점에서 일본곤충도감 여러 권을 주문해 공부했지만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니, 곤충이 너무 어려웠다. 그놈이 그놈 같고, 이놈이 이놈 같아 도감을 보면 멀미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절실히 알고 싶었던 것은 곤충의 이름이었다. 소중한 생명을 지닌 녀석들에게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건 아마추어인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구절이 자주 떠올랐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참에 내가 곤충 공부를 해볼까? 그러기엔 걸리는 게 많았는데, 특히 두 아들이 걸려 무척이나 망설였다. 초등학교 시절 곤충학자가 꿈이었던 아들들은 훌쩍 커서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큰아들은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이었고, 작은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빡빡한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아이들 뒷바라지를 포기하고 나만의 꿈을 좇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더구나 내 나이 마흔이었다. 자식 같은 학생들 틈에서 낯선 분야의 공부를 해낼 수 있을까? 뼛속까지 문과 기질인 내가 과를 바꿔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면 그 공부를 해낼 수 있을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어쩌고? 복잡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가족과 지인들도 두 아들의 대학 입시가 끝난 후에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두 아들은 자신들이 못다 한 곤충 공부를 해보라고 적극 응원했다.
운명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현실적으론 실현 불가능한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곤충 공부에 대한 열망이 점점 끓어올랐다. 마치 운명이 나를 인도하는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생물학과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굉장히 험난하지만 행복한 길인 곤충과 인연을 맺어 여생을 같이하기로 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후, 나는 마치 무병에 걸린 사람처럼 열흘 동안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수가 없었다. 기쁨 반 두려움 반이 나를 옥죄었기 때문이다. 나의 길을 선택했다는 기쁨이 컸지만, 한편으로 낯선 학문에 대한 두려움과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들에 대한 염려가 밤낮을 지배했다.
이 책은 길을 선택한 이후의 이야기다. 내 이야기인 동시에 곤충의 이야기다. 나는 곤충학자로 불리지만, 사실 ‘벌레박사’가 익숙하다. 지인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고, 연구하는 곤충들도 주로 딱정벌레, 버섯벌레 등 ‘벌레’로 불려서다. ‘벌레’와 ‘곤충’은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벌레’는 다리가 많거나 다리가 없는 몸으로 꿈틀꿈틀 기어가는 동물을 일컫는데, ‘곤충’은 벌레 중에서도 다리 여섯 개, 더듬이 두 개, 날개 네 장이 달려 있는 동물을 가리킨다. 곤충이 벌레의 부분집합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벌레’라고 할 때는 징그럽다는 뉘앙스도 숨어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게는 벌레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것이 벌레가 예쁘거나 감동적이라는 뜻도 아니다. 벌레는 내 곁에 늘 공기처럼 머무르고 있어서 호불호 자체가 없다. 내게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은 그런 기분인 것 같다.
남편을 잘 뒀군요
뜨거운 여름날 경사진 언덕길을 걸어 오르니 땀범벅이다. 캠퍼스가 크진 않지만, 초행길이라서 이학관 건물을 찾느라 두 눈이 분주하다. 오래되고 낡은 복도 중간에 학과 사무실이 있다. 조교의 안내를 받으며 잠시 대기실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힌다. 가을학기 대학원생 면접이 있는 날인데, 지원자가 나 하나뿐이라 학과 사무실이 조용하다. 15년 만의 공식적인 외출이라 감개무량하다. 누구 아내, 누구누구 엄마 계급장 떼고 나 본연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는 순간이다.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조교가 면접실로 안내한다. 들어가보니 연세 지긋한 교수님(심사위원) 다섯 분이 나란히 앉아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숨이 멎을 것 같다. 한 교수님께서 질문을 한다.
“만학도군요. 몇 살이에요?”
“마흔입니다.”
“결혼은 했나요?”
“네.”
“자녀는 있나요?”
“예.”
“학교에 다닐 텐데, 초등학생인가요?”
“큰아들은 고1이고, 작은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생물학과는 특성상 실험이 많아 풀타임으로 온종일 실험실에 살아야 하는데, 가능하겠어요? 아이들에게 손 많이 갈 시기인데 대학원 과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어요?”
“……”
할 말이 없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맘이 쓰였던 부분은 아이들 문제라 아이들 얘기만 나오면 죄인 모드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여자 교수님께서 질문하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연거푸 이어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나요?”
“글쎄요, 매우 부유하지는 않지만 대학원 공부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남편을 잘 뒀군요. 학비 걱정 없이 대학원 공부를 할 수 있는 걸 보니.”
“……”
대개 장학금 혜택은 젊은 대학원생에게 갈 확률이 큰 데다, 곤충 분류 작업에는 경비가 많이 든다. 분류의 기본은 채집인데, 방방곡곡을 다니려면 출장비가 많이 들고, 문헌과 자료 구입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나온 질문인 것 같았다. 나의 현재 상황이 미덥지 않아서인지 사적인 질문은 계속되었다.
“학부 졸업한 지 한참 되는데, 15년 넘는 공백기를 극복할 수 있겠어요?”
“뜻이 있으니 분명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학업에 대한 열정은 하늘의 별도 따올 수 있을 정도로 높습니다.”
“문과 출신이 늦은 나이에 이과 분야를 공부하는 건 간단치 않아요. 혹시 고급 취미생활 차원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아닌가요?”
“아, 그건 아닙니다. 곤충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대학원에서 고급 취미생활을 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충분히 고민하고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곤충 연구가 잘 되어 있다면 굳이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지요. 우리나라 곤충에 대한 연구 자료가 부족하니 곤충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지금 가는 곳마다 개발로 자연이 다 파헤쳐지고 있는데, 우리 땅의 곤충이 더 사라지기 전에 곤충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독학이 가능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습니다. 곤충 분야는 독학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나에겐요. 나와 다른 생명체를 모르고 죽는 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인 것 같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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