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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주소는 ‘거북로 12길 19거북동’이다. 거북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오 분 거리다. 대지 면적은 72.5평, 필로티 구조의 4층 건물이다.
201호, 301호, 401호는 14평이다. 202호, 302호, 402호는 25평이고. 1층엔 12평짜리 상가가 하나 있다. 나머지 1층 공간은 주차장이다. 옥상엔 전망이 좋은 옥탑방이 있다. 통창으로 옥상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정원은 꽤 훌륭하다. 옥탑엔 입주가가 없다. 입주민 공용 공간이다.
“순례주택 들어가는 게, 장기 전세 붙는 것보다 어렵다니까.”
거북 분식 사장님은 자주 투덜거린다. 건물주에게 여러 번 라면사리 서비스를 줬지만 입주하지 못했다. 세입자들이 좀처럼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순례 주택은 임대료가 싸다. 입주자는 와이파이, 옥탑방, 옥상 정원을 공유할 수 있다.
402호에 건물주 김순례 씨75세가 산다. 스물에 결혼하고, 서른다섯에 이혼했다.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다. 이혼 후 연애를 몇 번 했다. 재혼은 하지 않았다.
순례 씨는 유능한 세신사였다. 때를 밀고 마사지해 달라는 손님이 줄을 섰다. 재능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 보려고 뛰어든 일이었다. 마흔다섯 살에 ‘구 순례 주택’순례 주택 자리에 있던 1층 양옥집을 샀다. 순례 씨는 그 집을 ‘때탑’이라고 불렀다. 때를 밀어 주고 번 돈으로 산 집이라고.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때탑 시세가 배로 뛰었다. 너른 마당을 시에서 뚝 잘라 갔다. 도로를 확장한다고. 보상금이 꽤 많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건 순례 씨 스타일이 아니었다. 십 년 전 때탑을 허물고 ‘현 순례 주택’을 지었다. 임대료는 시세를 따라 정하지 않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받았다.
1층 상가엔 십 년째 ‘조은영 헤어’가 입점해 있다. 원장 조은영 씨47세는 유일한 ‘더블 입주자’다. 1층은 미용실, 202호는 살림집.
“제가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는데, 미용실 차리고 나니 돈을 더 빌릴 데도 없어요. 죄송하지만 보증금 없이 살림집 하나 더 월세로 주실 순 없을까요?”
십 년 전, 서른일곱의 조 원장이 순례 씨에게 부탁했다. 순례 씨는 흔쾌히 집을 내줬다. 보증금을 못 냈지만 월세를 더 받진 않았다. 조 원장은 이 년 만에 보증금을 채웠다. 삼년 후엔 202호로 옮겼다. 202호는 방이 세 개라, 남매에게 하나씩 줄 수 있었다.
“우리 식구는 순례 주택을 딛고 일어섰어요.”
조 원장이 자주 하는 말이다. 감사를 담아 여러 번 ‘무료 염색 및 파마’를 제안했다. 순례 씨는 번번이 손사래를 쳤다.
“세신사 하면서 물이랑 세제를 너무 많이 썼어. 염색이라도 안 하고 살고 싶어.”
순례 씨는 백발이다. 사십 대에 머리가 세기 시작해서, 오십 대 중반에 백발이 되었다. 백발 때문에 일찌감치 노인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순례 씨는 오해를 즐겼다. 예순다섯 이전에도 몸이 힘든 날은, 지하철 노약자석을 이용했다.
302호엔 홍길동 씨66세와 남편이 산다. 길동 씨는 순례 씨 전 직장동료다. ‘구 순례 주택’ 때부터 별채에 세를 살았다.
길동 씨 본명은 이군자다. ‘임금 같은 아들’을 기다리던 부모가, ‘남동생을 보라’는 뜻으로 지었다. 군자 씨는 이 년 전 요양보호사 필기시험을 보면서 생전 처음 OMR카드를 작성했다. 학원에서 연습을 했지만 무척 긴장됐다. 이름 예로 ‘홍길동’이 나왔는데, 자기 이름을 ‘홍길동’이라고 작성해 버렸다.
“내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속상해서 울었다. OMR카드와 컴싸를 구입해 ‘이군자’ 작성을 연습하며 재수를 준비하던 때, 합격 소식이 날아들었다. 무척 기뻤다. 순례 주택 사람들을 옥탑방으로 불러 족발을 쐈다.
“학원 선생 말로는, 자기 이름 홍길동이라고 쓴 사람이 꽤 있대. 홍길동들을 추적해 갖고 점수가 되면 합격시켜 준다네.”
“아직도 홍길동을 빙자하는 인간이 많구나. 야, 홍길동.”
순례 씨가 웃으며 말했다. 군자 씨는 ‘홍길동’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순례언니 개명할 때 좀 부러웠는데, 그거 괜찮네. 이제 나는 홍길동이다. 길동 씨라고 불러 줘.”
“아, 순례 씨 개명하셨구나. 개명한 이름이 뭐예요?”
조 원장이 물었다.
“김순례.”
순례 씨가 대답했다.
“엥? 바꾼 이름이 김순례라고요?”
“응.”
“원래 이름은?”
“김순례.”
순례 씨는 개명을 했다.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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