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오래전부터 시작된 대이동
남부 캘리포니아 산미겔산맥San Miguel Mountains의 건조하고 탁한 갈색 덤불 언덕으로 초봄의 짙은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불도저의 단조로운 기계음을 빼면 이 수수하고 트인 장소는 조용하다. 극적인 특징이 거의 없어서 시각적으로도 고요하다. 그저 햇볕에 달궈진 모래, 완만한 비탈, 연하고 진한 적갈색 그림자가 드리워진 낮은 잡목과 풀들뿐. 바퀴 자국이 남아 있는 흙길과 좁은 산책로가 교차하는 언덕은 저 먼 곳으로 무한정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보러 온 생명체도 이 풍경만큼이나 수수하다. ‘에디트바둑판점박이나비’라고도 하는 ‘유피드리아스 에디타Euphydryas editha’는 워낙 여리고 눈에 띄지 않다 보니, 내가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아이폰으로 찍는 그런 아마추어적인 사진으로는 여간해서 담아내기 힘들다. 이 나비들이 서식하면서 먹이를 얻는 식물인 난쟁이질경이dwarf plantain 역시 소박하다. 겨우 5~7센티미터 높이로 자라는 이 식물은 잎이 바늘 같고 가는 줄기에 작디작은 반투명한 흰 꽃이 달린다. 마른풀만큼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나도 그랬지만, 그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밟아버리기 쉽다.
동행한 나비 전문가―스프링 스트람Spring Strahm이라는 완벽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가 사륜구동 트럭을 몰고 2015년 이후로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도로를 달려 이곳에 왔다. 오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내 몸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이 산에서 바둑판점박이나비를 발견하는 것은 “마치 유니콘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나비를 잘 찾아내기로 유명하다.
스트람은 한 번씩 손과 무릎을 키 작은 풀 속에 파묻으며 숨어 있는 나비를 찾았다. 이파리 두어 장씩을 뒤집어 애벌레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나와 함께 느릿느릿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두어 줄기의 땀 말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1시간쯤 지나자 그녀는 이제 할 만큼 했다고 결론 내린다.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 이 귀하신 바둑판점박이나비를 찾아봐야 한다. 나는 물병을 열어 재빨리 들이켜고 배낭을 추스른 뒤 그녀를 뒤따라 왔던 길을 돌아간다.
몇 분 뒤 갑자기 그녀가 걸음을 멈춘다. 길을 막은 채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나는 그녀가 자기가 신고 있는 낡은 등산화를 응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나도 내려다본다. 구름같이 자욱하게 펄럭이는 나비들이 우리 발목 주변을 맴돈다.
나비의 이동
내가 바둑판점박이나비를 보러 오게 된 것은 카밀 파르메산Camille Parmesan 덕분이다. 담청색 눈에 검은 곱슬머리를 갈기처럼 늘어뜨린 파르메산은 원더우먼의 현실판이다. 원더우먼이 황금 밧줄과 투명 비행기 대신 흙과 벌레를 좋아하고 지역 방언으로 말한다면 말이다. 파르메산은 텍사스에 있는 한 이탈리아 가문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에인트ain’t라는 단어를 마음껏 사용하고 ‘크다large’보다 ‘왕건honker’이라는 표현을, ‘풍부하다abundant’보다 ‘겁나 많다out the wazoo’는 표현을 더 즐겨 쓴다.
1980년대 대학원생으로 생태학을 공부하던 파르메산은 새너무 일찍 일어난다, 실험실에서 사육하는 영장류너무 부자연스럽다, 꿀벌침이 너무 많다 연구를 다 포기하고 난 후, 처음으로 바둑판점박이나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비가 자연환경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고 다루기 까다롭지 않아서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유년기를 엄마와 함께 캠핑하면서 휴대용 도감으로 공부하고 식물과 새를 동정同定, 생물의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옮긴이하면서 보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식물학을 사랑했지만 직업은 지질학자였고, 텍사스의 파르메산 일가의 사람들처럼 석유산업에 몸담았다. 어머니는 캠핑장에서 딸에게 식물학을 가르치면서 독특한 지질학적 관점도 알려주었다. 파르메산은 어머니에게 지질학 시대를 관통하는 야생 동식물의 기나긴 역사에 대해 배웠다. 어떻게 그들이 따뜻한 시기에는 북쪽으로 전진했다가 추운 시기에는 후퇴하는지, 어떻게 빙하기가 오고 감에 따라 성쇠하는지를 알았다.
파르메산이 바둑판점박이나비의 생태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을 무렵 이 작디작은 연구대상은 아주 혹독한 시절을 맞고 있었다. 그녀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기록과 아마추어 나비 애호가들의 어마어마한 개인 소장품을 통해 이 바둑판점박이나비가 한때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주에서부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까지 북미의 서해안 산악 지대 이곳저곳에서 군락을 이루고 서식할 정도로 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설에 따르면 한 호기 넘치는 나비 수집가는 나비 채집망을 손에 들고 팔을 뻗은 상태로 해안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나비를 한가득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년간 그 수가 줄어들었다.
대부분 생태학자가 보기에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바둑판점박이나비는 많이 움직이지 못했다. 솜털이 부숭부숭한 검은 애벌레일 때는 자신이 부화한 식물에서 1미터 정도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점박이 날개를 펼친 뒤에도 땅에 낮게, 그리고 집에 가까이 머무르면서 자신이 변태變態한 현장에서 몇 미터 이상 날아가지 않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막대기 같은 가는 다리로 난쟁이질경이 기지 안으로 기어 들어가 연약한 몸이 돌풍에 난데없이 휩쓸리지 않도록 땅에 최대한 납작하게 붙는다. 이 분야에서는 이 나비들을 대체로 ‘정주형定住型’이라고 생각했다. 정주형이란 곤충학에서 ‘집순이homebody’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는 동안 나비들이 지낼 곳은 계속 줄어들었다. 북부 멕시코의 기후가 이산화탄소 증가로 점점 뜨겁고 건조해지면서 바둑판점박이나비의 서식지 남쪽에서는 이들이 좋아하는 난쟁이질경이가 말라 죽었다. 한편 이 나비의 서식지 북쪽 끝에서는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들이 무질서하게 팽창하면서 해가 쨍쩅한 완만한 경사면들을 집어삼켰다. 대부분의 나비 전문가는 기후변화와 도시 팽창 사이에서 바둑판점박이나비가 이제 최후를 맞을 것으로 보았다.
지구 곳곳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전해지는 매우 간단한 이야기였다. 파르메산은 이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를 바꾸는 데에 별다른 환상이 없었지만, 이 나비가 자신들을 내리누르는 생존 압박에 반응하는 특수한 방식을 기록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몇몇 군집은 미세하게나마 지역에 따른 적응력을 보이거나, 어쩔 수 없이 붕괴하기 전에 어떤 눈에 띄는 신호를 보낼지도 모를 일이니까. 만일 개체 수 조사를 적절하게 하고 난 뒤 그 데이터를 정교한 통계 분석으로 잘 처리하면 심사위원들을 만족시킬 만한 학위논문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그녀의 연구는 한 종種의 마지막 비명을 정교하게 기록하는 작업이 되겠지만, 사실 요즘 같은 대량 멸종 시대에 많은 생태학이 하는 일이었다. 박사 학위를 따는 더 안 좋은 방법도 있었다.
게다가 바둑판점박이나비는 찬란한 봄 날씨에 부화했고, 아침 10시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바람 없는 맑은 날에 가장 찾기 쉬웠다. 파르메산은 4년간 여름마다 차를 몰고 서부 해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낮에는 나비를 찾아 나섰고, 밤이면 산속에서 캠핑했다.
파르메산은 자신의 연구 결과에 특별히 큰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마지막에 뭐라도 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는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역사적인 기록과 비교했을 때 나비의 수는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잡음 속의 어떤 신호, 그녀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전 세계에서 나 같은 저널리스트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게 될 무언가가.
“패턴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오스틴의 한 텍사스-멕시코 퓨전 음식점에서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남쪽에선 멸종률이 정말 높은데 북쪽과 산악 지대에서는 정말 낮더라고요. 복잡한 패턴을 예상했는데, 이건 정말 단순하다 싶었어요…… 이보다 더 분명한 데이터를 얻을 순 없겠더라고요.”
수년 전 그녀의 엄마가 여름철 캠핑 여행에서 그녀에게 들려준 야생 동식물처럼 바둑판점박이나비는 야생의 종들이 과거 수천 년간 해왔던 방식대로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고 있었다.
이동한 것이다.
“서식지가 북쪽으로 그리고 높은 곳으로 바뀌고 있었던 거예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이제는 20년도 넘은 이 연구 결과가 지금도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큰 기쁨을 안긴다. 그녀가 양손으로 머리칼을 모아 춤추는 듯한 동작으로 등 뒤로 넘긴다. “맙소사!”
야생의 대이동이 시작되다
파르메산이 나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서식지를 이동한 야생생물에 관한 연구는 두 건뿐이었다. 하나는 알프스 산꼭대기의 식물군락이었고, 다른 하나는 몬터레이만Monterey Bay의 불가사리와 홍합이었다. 그녀는 “아주 좋은 논문들이었지만 너무 작은 지역”이었다고 말했다 이례적인 사건이라며 쉽게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기후변화에 대응해 목숨을 지키기 위한 이동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였지만, 야생생물이 의미 있는 규모의 이동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과감하게 희망을 품은 과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파르메산의 바둑판점박이나비 연구는 북아메리카 절반에 달하는 지역에서 일관된 이동 패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명망 높은 저널인 《네이처Nature》에 빛나는 단독 저자 논문을 실었고 일약 기후변화 분야의 정상급 연구자로 등극했다. 유엔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회원이 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천 건에 달하는 다른 생태학 연구를 검토하면서 자신이 점박이나비에게서 발견한 것과 동일한 신호를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점박이나비의 극지 방향 이동은 이변이 아니었다. 유럽에 서식하는 나비 57개 종은 물론 해양생물과 새에게서도 같은 패턴이 발견되었다.
플랑크톤에서부터 개구리까지 모든 것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적한 4천 종種 중에서 40~70퍼센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분포지역을 바꾸었고, 이 중 90퍼센트가량은 변화하는 기후에 맞춰 더 시원한 땅과 물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음을 확인했다. 평균적으로 육상의 종들은 10년에 약 20킬로미터를 움직여 극지를 향해 꾸준히 행진하고 있었다. 해양생물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10년에 평균 약 75킬로미터를 움직였다. 이런 평균치만 보면 특정 생명체의 장엄한 장거리 이동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가령 ‘대서양 대구Atlantic cod는 10년간 200킬로미터 이상 이동했다. 안데스 지방에서는 개구리와 곰팡이 종이 지난 70년 동안 400미터 높은 곳으로 기어올랐다.
가장 이동하지 않을 것 같은 야생생물마저 움직였다.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삐죽삐죽한 가지 형태의 산호초와 마음대로 뻗어 나간 옹이 진 그릇 모양의 산호초를 만들어내는 산호충珊瑚蟲은 부동성의 상징으로 보일 만큼 정적이다. 산호충은 말 그대로 돌벽stone wall이라서 탁 트인 대양이 일으키는 광란을 흡수하여 수백 만의 어류 종과 해변 군집들을 보호한다. 하지만 산호초 역시 이동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1930년대 이후로 바닥이 유리로 된 배를 타고 일본의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산호를 조사해왔다. 2011년 과학자들은 특히 아크로포라 히야신서스Acropora hyacinthus와 아크로포라 무리카타Acropora muricata라는 두 종이 매년 14킬로미터의 속도로 북진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z의 나비효과에 따르면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를 소소하게 교란시키면 서로 연결된 요소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결국 먼 곳의 토네이도 경로가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이는 작은 변화가 예기치 못한 거대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통찰 중 하나에 대한 시적인 은유였다. 이 은유에서 중요한 부분은 나비의 비행이 겉으로 보기에는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는 점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그 절묘한 표현을 만들어냈을 때 대륙 너머로 이동하는 위풍당당한 제왕나비 같은 것을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로렌츠가 점박이나비를 생각할 수는 없었으리라. 점박이나비 몇 마리를 만나 그 형편없이 느리고 낮은 비행을 목격한 나로서는 이들의 집단적인 날갯짓이 여하한 중대한 기상학적 사건은 고사하고 숨결 같은 산들바람조차 일으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그 작은 나비는 일종의 초대형 효과를 유발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의 여행은 극적인 전 지구적 현상의 베일을 걷어냈다. 알래스카 북서해안의 어널러킷Unalakeet에서는 남동쪽으로 950마일 이상 떨어진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온 기생충이 사냥꾼에게 포획된 야생조류의 피부 아래서 꼼지락거리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붉은 여우는 북극 쪽으로 영역을 더 확장한다. 케이프코드의 선주들은 플로리다에서 온 바다소들이 정박지의 배수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태평하게 홀짝이는 모습을 보곤 한다.
야생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이동은 모든 대륙과 대양에서 일어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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