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와기 다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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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구
3월 30일
배외주의자俳外主義者의 꿈이 이루어졌다.
특별 영주자 제도가 폐지되었다.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가 명백한 위법이 되었다. 공적 문서에서 통명을 쓰는 게 금지되었다.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금지법 또한 폐지되었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종군위안부’ ‘강제연행’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등의 내용이 사라졌다. 파친코 가게는 풍속영업법 개정으로, 한국 음식점과 식품점 등은 연일 이어지는 괴롭힘으로 대부분이 폐업에 내몰렸다. 양국의 주재 대사도 소환되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악감정을 지닌 일본 국민은 90퍼센트에 가깝다.
“일본 첫 여성 총리가 이렇게까지 극우였을 줄이야. 나도 완전히 속았어.” 가시와기 다이치는 말했다. “사상이 훨씬 치우친 여성 의원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녀는 그나마 온건한 편이라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어. 그녀는 결코 괴뢰 총리가 아냐. 남자들의 꼭두각시 인형 따위가 아냐. 동성혼을 합법화하고,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실현하고, 노동력을 위해 이민자 유입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일 코리안만 공격 대상으로 특화한다는 건, 대중심리 파악에 뛰어난 실무가라는 뜻이겠지. 게다가 더 성가신 건, 그녀의 사상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야. 소위 ‘핑크워시’로서 한쪽의 인권 침해를 다른 쪽의 인권 보호로 상쇄하려는 건지, 아니면 진정한 신념을 가지고 LGBTQ나 여성 차별 문제에 힘쓰고 있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동성애자나 자립 여성을 덮어놓고 싫어하는 일부 보수층에서조차 ‘의도적인 마이너리티 분단 공작’이라며 총리를 칭송하고, 오랜 힘든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기대가 좌절되어왔던 일부 마이너리티에서는 총리의 실행력을 환영하고 있어. 성가셔. 어쩌면 적극적인 차별주의자도 아닐지 몰라. 혐오감도 없이 그저 냉철하게, 다른 법안이 통과되기 쉽도록 재일 코리안을 희생시키자, 그 정도의 마음일지도 몰라. 뭐, 일련의 대응을 보자면 혐오감이나 차별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사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어.”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에 체크인한 후, 오후 5시가 가까워지면서 날이 점점 어둑해질 무렵, 두 사람은 JR츠루하시역 앞의 좁고 긴 미로 같은 아케이드 상점가를 빠져나가 이쿠노 코리아타운 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가시와기 다이치가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대는 열 살 정도 아래인 20대 초반의 남자다.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후드가 달린 검은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입었다. 옷 위로도 드러날 정도로 다부진 몸의 소유자로, 어깨의 승모근이 팽팽했다. 얼굴 윤곽보다 두툼한 목에는 타투가 엿보이고, 피부색은 전체적으로 정맥이 도드라져 창백하다. 얼굴 피부는 몹시 거칠고, 볼에는 얼음송곳으로 마구 찌른 듯한 무수한 여드름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등이 심하게 굽었다. 다이치가 ‘신 군’이라고 부를 때마다. 소년처럼 수줍은 미소와 함께 여드름 흔적이 심한 볼에는 홍조가 퍼진다. 그는 한겨울 추위가 여전한데도 꽤나 가벼운 옷차림이고, 옆에 있는 다이치는 노타이에 양복을 입고 위에 스탠드칼라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둘의 공통점은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둘 다 일본 국적이지만태어나면서부터 일본 국적인 사람. 일본과 미국의 이중 국적에서 일본 국적을 선택한 사람, 이들이 지금껏 몰두해왔고 앞으로도 몸을 던지려고 하는 정치운동은 재일 한국인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다.
이쿠노 코리아타운. 동서로 500미터쯤 뻗은 직선 도로에 120여개의 가게가 늘어서 있다. 김치 냄새, 마을 냄새와 함께 시각적으로도 김치의 붉은색과 장식, 가로등, 대문 등에 드문드문 사용된 극채색이 눈에 들어온다. 호객을 하는 점원들의 떠들썩한 소리 울려 퍼진다.
손님들이 붐비는 모습만 보면 ‘많이 쇠퇴했고, 사람도 줄었다’ 는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츠루하시역 앞의 아케이드 거리도 그랬지만, 신오쿠보 등의 다른 동쪽 코리아타운에 비하면 일상성을 유지하겠다는 기개 넘치는 분위기와 그러면서도 너무 심각한 중압감은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듯한 태평함이 특징이었다. 실제로 마치 헤이세이 시절처럼도 보인다. 차별주의자들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자경단이 상주하며 순찰을 도는 것은 신오쿠보와 마찬가지지만, 간사이 사람은 블루종 재킷을 맞춰 입거나 배지를 다는 건 싫어하는 모양이다. 가게 안에서 분주히 일하는 평범한 직원과 밖에 서 있는 도어맨 속에 한눈에도 자경단임을 알 수 있는 체격 좋은 젊은이들이 섞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안내가 서툴렀던지, 나이 많은 고객에게 한 소리 듣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미국에서 자라서 일본은 도쿄밖에 모르는 신 군에게 이 마을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다이치의 학생 때 이후 처음 오는 것이라 ‘요새 도시’를 직접 봐두고 싶기도 했다. 걸으면서 살펴보니, 오사카에 온 게 오랜만인 탓인지 이곳에 떠도는 일종의 과장된 분위기와 슬며시 연대감을 밀어붙이는 숨 막힐 듯한 의리와 인정이랄까, 그러한 끈끈함이 새삼 생경하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한국 전통차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한국 차 전문점이라니, 지금의 일본에서는 신오쿠보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 다이치는 대추차가 마시고 싶어서 이 각를 골랐다. 가게 안에는 손님도 점원도 젊은 여성뿐이다. 자개가 박힌 한국의 고급 가구가 즐비하고, 복잡한 디자인의 격자에 뻣뻣한 한지를 붙인 한국식 장지문과 둥근 창이 보인다. 얇은 천 커튼이 각 테이블을 구분하고 있다.
“미국 이야기부터 할까, 신 군.” 자리에 앉은 다이치가 말을 꺼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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