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꼬부랑길
쑥쑥이 말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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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북 콘서트가 끝나자 책을 든 청중이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선다. 거의 기계적으로 이름들을 쓰는데 갑자기 누군가 “쑥쑥이라고 써주세요”라고 한다. 별난 이름이다 싶어 고개를 들자 “제 아이에게 주려고요”라고 한다. 아기 엄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다. “군이에요? 양이에요?”라고 묻자 “아직 몰라요.”라고 이상한 대답을 한다. 그제야 나는 그 여성의 배가 불러 있는 것을 알았고, 그 옆에 곧 아기 아빠가 될 젊은이가 참나무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쑥쑥이는 태명台命이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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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명, 그런 게 있었다니. 성도 성별도 가릴 것 없으니 편할 것 같다. 호적부나 족보에 오를 일도 아니니 마음 내키는 대로 지어도 뭐랄 사람 없다. 그래서 요즘 젊은 부부 사이에서는 태명이 한창이란다. 그걸 나만 몰랐나 보다. 알고 보니 ‘쑥쑥이’만 있는 게 아니다. 무럭무럭 자라라고 ‘무럭이’가 있고, 튼튼하게 크라고 ‘튼튼이’가 있다. 모두 손뼉 감이다. 같은 ‘복福’ 자라도 옛날의 그 흔한 ‘복동이’ ‘복순이’가 아니라 ‘행복이’요 ‘축복이’라 했다. 원하는 말에 주격 조사 ‘이’ 자 하나만 붙이면 금시 태명이 된다. 그래서 저출산 시대의 배 속 아기들은 모두가 ‘기쁨이’요 ‘환영이’다. 태명 중에 ‘사랑이’가 가장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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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벌써 사랑이도 쑥쑥이도 석기 시대 때 얘기란다. 요즈음엔 태동이 하도 심하대서 ‘뒹굴이’, 엄마 배 속에 캥거루처럼 쏙 들어가 있대서 ‘거루’, 초음파 사진을 보니 점 하나 찍혀 있다 해서 ‘점탱이’……. 팝콘처럼 톡톡 튀는 태명이 상위 다툼을 하며 키재기를 한다. 귀엽다. 깜찍하다. 기발하구나. 어느새 철벽 한자 틀에서 벗어난 새 한국인이 소리 없이 엄마 배 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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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신기해서 웃었지만, 나중에는 눈이 축축해진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안습이다. 나와 함께 자란 옛날 아이들 이름이 떠오른 탓이다. 머리에는 기계총이 나고 부황난 얼굴에는 으레 버짐이 번져 있다. 그런 애들에겐 태명은 고사하고 본명조차 제대로 된 게 없다. 쇠똥이, 개똥이가 아니면 그 흔한 돌쇠다.
하기야 무엄하게도 고종 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였다니 억울해할 일이 아니다. 그게 다 ‘악명위복’ ‘천명장수’, 이름을 천하게 지어야 복 많이 받고 오래 산다는 풍습 때문이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하니 우리만 탓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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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상하지 않나. 귀족 명문가에 태어났으면 몰라도 원래 천하게 태어난 아이들에게 무슨 천명, 악명이 따로 있겠는가. 하지만 무조건 사내아이라면 귀하게 여겼던 남존여비 사회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멀쩡한 사내애에게 여자애 이름을 달아주는 일도 있다. 액션 배우 이소룡의 어릴 때 이름이 계집애 이름인 소봉황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소룡이 아니라 소봉황이라고 한들 우리 같으면 대통령 문장에 나오는 귀한 새다. 이 말은 곧 여자아이에게는 아무리 귀한 이름으로 불러도 잡귀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뜻인 게다. 그런데 어쩌자고 우리는 여자애 이름에도 ‘똥례’라는 천한 이름을 붙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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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례보다도 더 섭섭한 이름이 바로 ‘섭섭이’다. 아들이 아니라 섭섭하다는 노골적인 푸념이다. ‘언년이’란 이름도 아마 ‘어느 년’ ‘언짢은 년’이라는 욕이었을지 모른다. 삼순이까지는 참다가도 끝내는 ‘끝순이’요 ‘말순이’라고 붙인 이름도 대동소이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터키에도 “됐어. 이제 딸은 충분해!”라는 뜻으로 예테르란 이름이 있고 손귈마지막 장미이라는 이름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여자애를 낳으면 내다 버리거나 죽이는 풍습이 동서 가리지 않고 있어 온 걸 보면 새삼스럽게 따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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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든 저주든 그래도 ‘간난이’라는 이름보다는 낫다. 간난이는 ‘갓 낳은 아이’라는 뜻이니 한자로 쓰면 신생아요. 영어로는 ‘뉴본’ 라틴어로 해봤자 ‘네오 나탈’이다. 이름이 아닌 보통명사인 게다. 그건 할머니들이 개밥 줄 때 ‘가~이’ ‘가~이’ 하고 부르던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이’는 알다시피 개의 옛말 혹은 지방 사투리다. 남과 다른 특성을 나타낸 이름이라 해도 몸에 점이 박혀 있다고 해서 겨우 ‘점박이’고 ‘점순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거의 바둑이, 강아지 이름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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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삼아 동네에다 대고 ‘바둑아!’라고 불러봐라. 틀림없이 검은 점 흰 점이 박힌 개들이 주렁주렁 떼를 지어 달려올 거다. 엄격한 의미로 바둑이는 개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다. 바둑알처럼 희고 검은 털이 박힌 개면 다 바둑이다. 털빛 따라 누러면 누렁이요, 검으면 검둥이다. 그나마도 대접받아서 그렇다. 옛날 시골 개 이름은 거의 모두가 멍멍이였다. ‘멍멍’ 하고 짖으니 그냥 멍멍이가 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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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이’ ‘언년이’ ‘간난이’ ‘점박이’, 그게 다 보통명사에 ‘이’ 자를 붙여 고유 명사 반열로 오른 이름들인 거다. ‘멍멍이’ ‘누렁이’ ‘검둥이’ 같은 개 이름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개밥그릇의 막사발과 궤를 같이하는 막이름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똥이’ ‘쇠똥이’ 같은 사내들 이름 역시 다를 게 없지 않나. 지금까지 악명, 천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한국 토박이말로 지은 고유한 이름들이었던 게다. 한자가 아니라 순수한 우리 토박이 작명법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쑥쑥이’ ‘튼튼이’ ‘사랑이’란 태명 역시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토박이말에 ‘이’라는 토씨 하나 든 것이 뜻은 전연 달라도 ‘섭섭이’요 ‘기쁨이’가 아닌가. 첫명이나 태명이나 같은 뿌리에 핀 토종 야생화다. 우리 토박이말로 이름 짓던 풍습이 용케도 새천년 문명 속으로 들어와 태명으로 환생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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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의 생각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금시 알 수 있다. “마당쇠는 마당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는 한 블로거의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마당쇠의 마당은 ‘맏이’가 변한 것이며, 뜻도 ‘맏이, 으뜸, 우두머리’라는 풀이다. 그리고 쇠는 주로 사람 이름에 사용하는 접미사와 같은 것이며, 본래는 ‘소/so’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거다. 그 증거로 ‘을소乙素’ ‘을파소乙巴素’ ‘추발소鄒勃素’처럼 한자로 소리를 옮긴 삼국 시대의 옛 토박이 이름을 예거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지금 즐겨 쓰는 철수, 영수, 창수 같은 이름도 실은 순우리말 ’소/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추론이 나온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천 년 전 옛 우리말 이름들이 면면히 흘러 오늘에 그 흔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는 말에 설득력이 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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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로 ‘노인老人’이라고 하면 점잖은 말이요 높임말이지만. 우리 토박이말로 ‘늙은이’라고 하면 막말이요 낮춤말이 된다. 그 정도는 약과다. 우리말을 애용한다고 ‘자녀子女’를 ‘새끼’라고 해봐라. 금시 뺨 맞는다. ‘계집’이라는 말도 처음엔 막말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15세기 때 출간된 《두시언해》를 보면 ‘노처老妻’란 말이 어엿이 ‘늙은 계집’으로 번역되어 있다. 흥선 대원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궁으로 보낸 서찰 겉봉에는 ‘마누라젼’이라고 씌어 있다. 마누라는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말로 며느리 명성황후를 지칭한 말이라고 한다.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라는 노랫말이 남아 있는 오늘날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우리가 세 살 적에 배운 토박이말들이 한자에 밀려나고 외면당하면서 막말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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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들어오기 전 당연히 우리는 우리말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글자가 없어 그 뜻이나 소리를 이두식 한자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라는 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의 이명으로 ‘불구내弗矩內’라는 기록이 보인다. 주석에서도 광명이세로 밝혀져 있듯이 “빛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박혁거세를 토박이말로 환원하면 ‘불구내’는 밝누리가 아니라 밝아누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혁거세를 한자의 뜻으로 풀어보면 ‘밝을 혁’과 ‘누리 세’로 그 뜻이 부합한다. 그러니까 혁거세는 원래 이름의 뜻을 옮긴 훈차요, 불구내는 그 이름의 발음을 적은 음차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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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명이 오늘과 같은 한자명으로 바뀌게 된 것은 통일신라 시대 경덕왕 때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민은 물론이고 지체 있는 집안에서도 고유명을 그대로 써온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다. 세종世宗의 명을 받아 김수온이 편찬한 《사리영응기》에는 정7품과 종8품 관리 47명의 토박이 이름이 ‘韓실구디’ ‘朴타내’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자로 된 성만 빼면 마딘, 도티, 매뇌, 가리대, 수새, 쇳디, 랑관 모두 낯설고 허접한 막이름이다. 더러는 강아지 이름을 연상케 하는 ‘검둥’이 ‘흰둥’이에 ‘돌히’ ‘막동’ ‘똥구디’란 이름까지 보여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곱쇠, 북쇠, 망쇠, 모리쇠, 강쇠 같은 이름은 분명 내 어렸을 때 들었던 마당쇠의 이름과 다를 게 없다. 옹알이말처럼 올미, 오미디, 우루미, 어리딩처럼 유난히 ‘이응 자’로 시작하는 이름도 많아서 아련한 그리움마저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마깅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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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설명이 된다. 한국 문화의 유전자에 ‘막’ 자가 따라붙게 된 이유 말이다. 마른 강바닥 밑으로 스며 흐르는 물줄기처럼 끊일 듯 말 듯 우리 토박이 문화의 생명줄은 그렇게 우리 가슴의 심층에서 이어져왔다. 개똥이와 쑥쑥이라는 이름이 내 머릿속에서 부딪치는 순간 천둥번개가 쳤다. ‘안습’이 ‘안광’으로 변하면서 천덕꾸러기로 퇴박맞던 막이름이 섬광처럼 눈앞을 스쳐 간다. ‘섭섭이’가 ‘기쁨이’가 되고 ‘똥례’가 자랑이 되는 역전의 드라마가 실제로 한류 드라마 속에서 실현된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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