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01
욕받이
대구말, 서울말
“인자부터 대구말 쓰지 마래이.”
“그기 말이다. 서울말 억지로 쓴다고 대구 사람 티 안 나나?”
“아이다. 서울말은 끝만 올리면 된다 안 카더나.”
“여 사람들 대구 사람들 보면 억수로 미울 끼라.”
“사람들이 전부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제?”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소곤대며 꺼낸 첫마디는 대구말 사용 금지령이었다. 2016년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전국이 떠들썩할 무렵에 친구들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청와대 관람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결국, 몇 개월 전에 예약해놓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KTX에 몸을 실었다. 새벽에 상경한 우리는 서울역 광장에서부터 왠지 모를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인 청와대로 가는 도중에 룸미러를 통해 바라보던 택시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의 말투가 대구경북 억양이라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대구경북 사람들 지금 괜찮아요?”
택시기사의 질문에 서로 눈을 마주보며 껌뻑거리다가 대답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대한민국 국가 문제를 대구경북과 연관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 순간 대구경북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청와대에 도착했다. 원래 근엄한 장소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유별나게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에 있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였다.
“대구말 쓰지 마이소. 그라고 박근혜 불쌍하다고 카면 여 사람들 싫어합니데이.”
조금 전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 이래 돼뿌가 불쌍해서 우야노!”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아주머니를 걱정시켰던 모양이다. 그도 대구경북 지역의 구성원으로 우리 일행을 동류 집단으로 인식해서 당부하는 것 같았다. 대구말을 쓰는 데 위기의식을 느낀 우리는 가급적 말을 아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서울 남산타워에 올랐다. 중국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휴-, 인자부터 마음대로 말 좀 하자!!!”
공공의 적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지? 똑같네, 똑같아!”
캐나다로 이주해 20여 년 동안 살다가 귀국한 지인이 대뜸 대구경북을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우리 지역의 중·장년층들이 깨어나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며 심하게 다그쳤다.
“대구경북 50대 이상 사람들이 다 책임져야 돼.”
생활수준은 향상되었는데 여전히 예전 그대로인 습속에 혀를 내두르며 ‘박근혜 탄핵’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에서도 대구경북을 향한 욕설이 난무했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지방선거를 끝내고 소설가 이외수 씨가 ‘정치적 무인도’라는 발언을 해서 대구경북이 또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게시판에 댓글이 쓰나미로 밀려오면서 대구경북을 강타했다.
소설가 이외수 씨가 최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6·1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소신을 밝히면서 대구·경북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씨는 지난 14일 밤 10시 27분 페이스북에 “북한도 변했는데 여긴 아직 안 변했네요. 정치적 무인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1장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은 대구·경북엔 빨간색, 그 외 지역은 모두 파란색이 들어간 대한민국 지도였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정치적 무인도, 기막힌 표현입니다’, ‘눈 귀 닫고 사는 동네 같아 안타깝습니다’ 등 공감하는 댓글이 있는가 하면 ‘내부적으로 나름 많이 변한 듯합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작가님은 5천만 명 모두 같은 생각을 해야 만족하시겠습니까?’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 15일 영남일보에는 이 씨의 글에 항의하는 전화도 잇따랐다. 한 독자는 “2002년과 2006년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보수당 후보가 광역단체장을 석권했을 때 이 씨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며 “비교할 데가 없어서 북한과 비교하느냐. 정치적 무인도라는 표현은 TK를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남일보》, 2018.6.16.)
네티즌 중 일부는 ‘정치적 무인도’라는 표현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나는 대구경북이 북한과 비교되는 걸 보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지역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염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우리 지역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며 삿대질을 해대는 것일까? 왜 ‘TK 정서’를 부정적인 용어로 인식하는 것일까? 내 생활세계의 근간인 대구경북에는 타 지역과 다른 독특한 집합표상이 있는 것일까? 2018년 6월 22일 낙동강 수돗물 과불화화합물 발암물질과 관련해 대구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제목: 대구 수돗물 발암물질 검출 파문, 청와대 국민청원에 담긴 분노……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제까지 제 아기에게 발암물질로 분유를 태워 먹이고 그 물로 밥을 지어 먹이고, 씻기고, 옷을 빨아 입히고 생각만 해도 화가 치솟습니다.” 22일 대구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이 다량으로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를 해결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 일부 내용이다. 시민들의 분노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업다운뉴스》, 2018.6.22.)
위 기사 내용에 대한 댓글을 몇 개 발췌했다.
아직 괜찮아****인과응보 아니겠는가? 자한당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착각한 잘못이겠지, 그동안 작태를 보고도 자한당 뽑은 대구 시민의 잘못이다. 처절하게 응징당하고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bamm****대구 영감님들께 물갈이하고 정신 차리든가 그냥 그 물 먹고 죽어가든가.
kjbl****지네가 주구장창(주야장천) 그것들만 찍어서 뽑아놓고 어디서 청원 질이냐 생각은 하고들 사냐 ㅋㅋㅋ
sang****4대강 정비사업 찬성할 땐 언제고? 걍 처먹어라.
bjja****우리가 남이가 암 걸린 지역에 발암 물 좀 먹으면 어때서?
네티즌들이 대구를 향해 던지는 비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연한 인과응보라며 비웃음을 날렸다. ‘발암물질 마시고 죽어라’라는 극단적인 표현이 섬뜩하기만 했다. 어떻게 이토록 무분별한 언어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해도 막무가내로 독설을 퍼부었을 것인가? 왜 우리 지역이 무지막지한 언어 총살을 당해야만 하는가? 대구경북에 속한 한 개인으로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씁쓰레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보다 앞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존심을 공개적으로 짓밟는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매일신문》(2010.10.16.)의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구시·경상북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대구경북은 보수 꼴통’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장 위원장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호남에 가서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라며 우리를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대구경북이 대한민국의 현대화에 미친 영향력을 왜곡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라며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당·경북도당에서는 그들이 대구경북 시·도민들을 반민주적이고 반시대적인 사람들로 치부했다며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항의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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