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꾸리는 법』은 자신만의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꾸려 가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 6년 전 처음 독서모임을 꾸렸을 때 제게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내가 만든 모임에 사람들이 과연 와줄까? 회원 모집은 어떻게 해야 하지? 첫 모임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고 장소는 어디로 정해야 하지? 모든 것이 낯설고 막연했습니다. 그때 제게 가장 필요했던 정보들을 떠올려 빠짐없이 기록하려 노력했습니다. ― 「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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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할까요?
여러분은 왜 독서모임을 하고 싶으신가요?
출간 직후 전 세계 수많은 독서모임에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미국 작가 앤 후드의 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책세상, 2017에는 비참한 주인공 에이바가 등장합니다. 다른 여자와 눈 맞은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거든요.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이바에게는 다른 이야기와 다른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찾고 한 도서관의 북클럽에 가입합니다. 그곳에서 책을 통해, 눌러 둔 감정을 꺼내 공유하고 상처를 치유합니다.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덴슬리벨, 2018의 독서모임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급조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채널제도는 독일군 지배하에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통금 시간은 저녁 7시.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집에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고 나니 통금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귀가하던 사람들 중 몇 명이 독일군에게 잡혔고, 임시방편으로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회’를 하느라 늦었다고 둘러댔죠. 당시 독일군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문화 정책을 펼쳤거든요. 그러자 독일군은 심지어 모임을 권장하기까지 했고, 그렇게 시작된 독서모임에는 차곡차곡 근사한 이야기가 쌓였습니다.
하나만 더 소개할까요? 『제인 오스틴 북클럽』민음사, 2006의 독서모임은 지인 몇 명이 모여 만들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반년간 한 달에 한 번 제인 오스틴의 책 여섯 권을 함께 읽는 모임이었죠. 사교의 성격이 짙은 북클럽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때로 사람에 지쳐 책에서 삶을 바꿀 무언가를 찾으려는 절실한 마음으로 독서모임의 문을 두드리고, 때로는 얼결에 모임을 시작하며, 때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친교를 위해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가 될진 모르지만아니, 안 될지도 모르지만 시작이나 해 볼까?’ 하는 무모함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모인 자리에 책이 섞이면 그 속에서는 늘 새로운 이야기가 오가고 그러면서 만남이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그렇다 해도 언제, 어떻게 모임을 시작하면 좋을까요? ‘독서모임이 필요한 순간’이란 과연 어떤 때일까요? 저는 때때로 올라오는 불안감을 잠재우려 독서모임을 시작했습니다. 1인 출판사 창업 후 매일 모든 일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며 줄곧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거든요. 일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시간이라도 업무 외 다른 활동에 정신을 쏟으면 불안감을 떨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막연히 책 속에서 답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책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여전히 책은 좋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번뜩 독서모임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에서 선배, 동기와 함께한 독서모임은 편협한 시야를 확장해 주었고 앞서 다니던 회사에서 마음 맞는 동료들과 소규모로 하던 독서모임은 사회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기회에 또 한번 독서모임을 해 보고 싶었고 이번에는 제가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상황은 어떤가요? 왜 독서모임을 하려고 하나요? 무엇을 기대하며 독서모임을 궁금해하고 꾸리려 하나요? 지난 6년간 독서모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이유와 기대를 가지고 모임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이유들을 몇 가지 범주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규칙적 독서
많은 사람이 책을 규칙적으로 읽기 위해 독서모임을 합니다. 독서는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자리에 앉아 활자를 읽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하고 따로 시간도 내야 합니다. 어렵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싶다면 독서모임에 가입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죠. 회원들과 함께 읽을 책, 모임 장소, 책 읽을 기간을 정하고나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독서를 하게 됩니다.
제가 운영하는 모임의 회원 한 분은 회사 업무가 바빠져서 일 년 동안 모임을 쉰 적이 있습니다. 일 년 만에 다시 나타난 그는 독서모임에 나오지 않으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게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기껏해야 인터넷 뉴스만 읽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서 다시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며 열심히 참석했죠. 우리 모임 말고 또 다른 모임에도 가입해 동시에 두 개의 독서모임에 출석했고, 업무량은 줄지 않았지만 이후 넉 달 만에 여섯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 편식 개선
다양한 책을 폭넓게 읽기 위해 독서모임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 가운데도 취향에 맞는 책만 골라 읽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야 책이 속도감 있게 읽히고 빨리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요. 저는 이런 독서습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이야말로 이전에는 몰랐던 생소한 분야를 알아 가기에 적합한 매체입니다. 독서 범위를 넓히고 관심사를 확장하고 싶다면 독서모임을 통해 다양한 책과 그 책들을 주로 읽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보세요. 의외의 분야에서 다채로운 생각을 접할 기회가 생깁니다.
한번은 저희 모임에서 소설만 읽는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득 비문학 독서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문 교양서 읽기 모임에 가입했다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는 비문학 책은 잘 읽히지도 않고 재미도 없어 읽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회원들과 함께 조금씩 읽지 않던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이내 새로운 분야의 책 읽기에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날은 독서모임을 통해 관심의 폭이 넓어진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감상을 나누었습니다. 가령 현대사 책을 읽으며 비로소 역사 문제에 깊이 관심 갖기 시작했고, 가족문제를 다룬 사회과학 분야 책을 읽으며 이전까지는 살피지 않았던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모습에 시선이 갔다고요.
독서모임에서는 혼자 읽기만 해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의 범위 내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관심사가 되기도 하고, 그 책을 모임에 가져온 회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협했던 사고를 확장하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감상 공유
책을 읽다 보면 타인의 생각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책에 적힌 작가의 생각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 것을 새삼 느끼며 다른 사람들은 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지 알고 싶어집니다. 이 책을 나처럼 읽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떤 사람일까? 다른 사람은 어떤 감상을 얻었을까? 다양한 감상평을 나누고 싶고 가슴에 박힌 구절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좋은 책을 접하면 공유하고 싶어지고요.
한편 오랫동안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고전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도무지 읽히지 않거나 이해하는 것조차 힘겨우면 난감하고 때로는 무력감이 듭니다.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죠. 내 독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당신에게도 이 책이 이토록 어려웠는지. 제가 만난 사람들은 이럴 때 독서모임 회원들을 찾았습니다. 도대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고. 나만 이렇게 이 책 읽기가 힘든 거냐고.
독서모임은 거창한 형식이나 절차 없이 책을 둘러싼 모든 종류의 감상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책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두고도 다채로운 시선이 교차하고, 그 속에서 접점이 생기기도, 차이점이 더 또렷해지기도 합니다. 회원 수만큼 다양한 소감이 오가고 이런 대화를 꾸준히 이어 가다 보면, 화제가 개인의 취향과 삶의 태도로까지 확장되기도 합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시각이 몰라보게 넓어지고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진리를 소통 속에서 깨닫습니다.
생각 정리+말하기 훈련
조리 있게 말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에 대한 소감을 타인에게 설명하려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우리는 의외로 상대에게 의견이나 생각을 체계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습니다.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점심으로 뭘 먹고 싶은지 등 단편적인 대화를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할 기회는 기껏해야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정도가 아닐까요.
제가 속한 모든 독서모임의 회원 중 약 20퍼센트가 독서모임을 말하기 연습의 장으로도 생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모임에서 발언할 때는 읽은 책이 어땠는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고 싫었는지 등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적절하게 표현해야 하죠. 다른 회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일도 꾸준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읽은 책을 제대로 소화한 기분이 든다는 회원도 꽤 많습니다. 운영자가 되면 모임에서 오가는 여러 대화를 연결하기도 해야 합니다. 다양한 회원을 고려하며 적절한 단어와 화법을 구사하려 노력하다 보면 자연히 말주변이 늘고 논쟁을 중재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인문학 공부
책을 통해 특정 분야의 지식을 쌓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도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 교양으로 철학, 문학 등을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꽤 있죠. 그들에게 독서는 그 자체로 공부이지만, 쉽지 않은 공부라 혼자 해내기는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 함께 공부할 사람을 모아 독서모임을 시작하면 만만치 않은 책을 생각보다 거뜬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공부할 분야의 책을 함께 살피고 같이 읽을 책을 골라서 정독하고 요약하고 발표하다 보면 혼자 읽기는 엄두가 나지 않던 벽돌책도 차근차근 진도가 나갑니다.
저는 철학 공부를 해 보고 싶어 철학 독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철학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혼자서는 열 페이지 읽기도 버거웠거든요. 모인 회원들과 함께 묵직한 책을 놓고 매달 읽을 분량을 정하고 돌아가며 발제를 맡아 모임 때마다 조금씩 읽어 나간 결과 1,000페이지가 넘는 서양철학사 책을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꾸준히 모임을 지속했고 책을 완독할 때마다 찾아오는 뿌듯함이 공부와 독서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한 친교
첫 직장에 입사하기 전 제가 그리던 ‘직장인’의 일상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두루 만나며 인맥을 넓혀 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사 후 제 생활은 지극히도 한정적이었지요. 직장 동료, 거래처 사람, 늘 보던 사람과의 만남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누는 이야기도 늘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직장인도 다양한 인맥을 쌓으려면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녀야 한다는 걸 알았죠.
영화 모임, 등산 모임, 악기 연주 모임 등 세상에는 다양한 모임이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사람이 속해 있으면서도 미약하게나마 제게 도움이 될 만한 모임을 찾고 싶었고, 기왕이면 그모임을 통해 업무와 관련된 인맥들의 독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마케터 책모임, 에디터 독서모임, 지역 내 교사들의 독서토론 모임. 이런 식의 모임을 만들면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기회가 생깁니다. 대화의 중심에 책이 있으니 단순한 일상 이야기를 반복하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고요. 깊이 있는 대화가 겹겹이 쌓이며 서로간의 연결고리도 단단해집니다.
한편 독서모임은 이미 친분 있는 사람들과 색다른 대화를 해 보고 싶을 때도 유용합니다. 친한 친구와는 별일이 없어도 종종 만날 일이 생기지만 자주 만나도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죠. 이런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하면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기고 몰랐던 속마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합니다.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는 거죠.
한번은 직장 내 독서모임에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각자 책을 읽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지요. 사무적이기만 했던 관계가 순식간에 두텁게 발전했습니다. 그 덕에 회사 생활에 활력을 얻었고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책 읽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다만 조직 내 독서모임에서는 민주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자리이다 보니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다 보면 때로는 눈치 보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개한 유형 중 단 하나의 목적으로 시작하든 복합적인 동기로 시작하든 책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독서모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섣부른 시작도, 서투른 운영도 괜찮으니 일단 모임을 시작해 보세요.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일들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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