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임을 숨겨야 말할 수 있었던
온라인의 여자들
: 김익명
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건 내 전공인 디자인과 관련 있었다. 온오프 플랫폼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몇 개의 유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뒤 글들을 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커뮤니티의 각기 다른 생태계는 낯설고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회원 간 대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흥미진진했다. 나는 금세 적응했다. 하지만 나는 주로 관찰자였다. 어쩌면 소심했다. 종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각종 논쟁들을 지켜보며 행여 내 글이 그런 논쟁을 일으킬까봐 두려워 글을 자주 쓰지 않았다.
소심한 관찰자로서 나는 온라인에서 여성들이 공격받고 움츠러드는 모습을 목격했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커뮤니티에 몰래 숨어들어 그곳에서 일어나는 대화들을 음침하게 지켜봤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상과 다른 태도로 작성된 글들을 찾아내 유포하고, 조롱하고, 때로는 신상을 털었다. 나도 언제든지 신상이 털리고 일상생활까지 공격받을 수 있었다. 아마 온라인의 모든 여성들이 나와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성들은 온라인에서의 활동으로만 신상이 털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여성 개인의 말과 행동은 누군가의 악의로 인해 얼마든지 온라인 공간에서 유포되고 신상 공개와 조롱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개똥녀2005년 지하철에서 반려견의 변을 치우지 않았다고 온라인에 사진이 유포된 여성’라 낙인찍히고 비난받은 그 여성처럼 말이다. 여성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언제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검열을 해야 했다.
남성들의 잠입이나 위장에 대비해 여성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방법은 시간이 갈수록 까다로워졌다. 여성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 대리 가입과 인증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들고 닉네임을 적은 포스트잇과 얼굴이 동시에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야 했다. 심지어 대리 가입을 막기 위해 가입을 신청한 정확한 시간이 보이도록 모니터 화면을 캡쳐해서 보낼 것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간혹 사용자의 실수로 비밀글로 지정해놓지 않은 글들이, 이를 눈팅하던 남초 사이트남성들이 회원들의 대다수인 사이트 회원들에 의해 다른 사이트에 박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복잡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 여성 커뮤니티에 들어왔다. 그리고 섹스와 피임, 낙태와 관련된 글들을 유포하며 문란하고 난잡한 커뮤니티라고 비난했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도록, 남성들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점차 여성 커뮤니티의 여성 회원들도 여성의 몸에 대해 여성으로서의 주체적인 시각을 담은 글들에 대해 남성의 논리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왜 문란하게 행동했는가, 그것은 너의 책임이다, 우리 커뮤니티를 욕먹게 하지 마라, 당장 글을 지워라…. 비난이 거세지면서 글을 쓴 회원이 강제탈퇴(강퇴)를 당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지 십여 년 동안 보이지 않는 감옥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에서 여성으로서의 해방감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내가 왜, 과격하고 거친 ‘메갈리아’를 단번에 이해했고, 그곳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다. 메갈리아는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던 시점에서 남성들의 언어를 사용해 여혐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고 이것을 기자나 학자들이 ‘미러링여성혐오적인 말이나 글, 사상, 행태, 행동을 등장인물이나 화자의 성별만 반대로 바꾸어 보여줌으로써 여성혐오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라 이름 붙였다. 사실 나는 메갈리아가 미러링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미러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초기 메갈리아의 유저들은 온라인에서 여성임을 숨기며 남성의 언어를 썼기 때문에, 여성의 언어라고 해서 남성의 그것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메갈리안들이 한 것은 남성의 언어를 쓰는 그들 스스로가 여성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듯 미러링은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들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여성들이 안전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현상과 함께 나타났다.
여성시대 카페와
옹달샘 사건
미러링하는 여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메르스 갤러리메갤, 디시인사이드의 여러 게시판 중 하나로 2015년 메르스 발병 후 생성되었고 여성혐오적인 표현에 대해 처음으로 집단적인 대응을 시작한 곳’에서 내가 활동하기까지, 계기가 된 두 개의 직접적인 사건이 먼저 일어났다. 첫 번째로, 2015년 6월에 발생한 ‘여성시대 카페 사건’이다. 온라인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자아표출셀프털기, 셀털은 금기시되지만, 이 사건은 말해야겠다. 사건의 발단은 여성시대 카페에 연결된 비공개 소모임에서 카페 회원들이 야동을 공유했다는 주장이 다른 사이트에서 나왔고 해당 글들이 유출된 일이었다. 마치 그런 일을 기다렸다는 듯, 야동을 공유했다는 회원과 카페를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성시대 카페는 복잡한 회원 가입을 해야 하는 비공개 카페이고 글 유출은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글들이 퍼져나갔다. 글을 유출하는 주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온라인에서만 나눌 수 있는 섹스와 관련된 고민이나 자위, 낙태에 관한 글들이 자극적으로 유포되었다. ‘마약 같은 김밥이다’라는 글이 ‘마약하는 여성시대 카페 회원들’이라는 글로 변해 온라인 이곳저곳에 떠돌아다녔고, 어떤 글은 쓰리섬이나 그룹 섹스파티를 했다는 글로 왜곡되어 퍼져나갔다. 남초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여초 커뮤니티들까지 나서 해당 카페를 비난했고 뉴스 기사까지 나게 되었다.
여성시대 카페 회원들은 애초 야동 관련 글을 쓴 회원들을 비난하려는 의도였지만, 이후 비난받을 만한 글이 아닌 것까지 싸잡아 매도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카페 게시판에는 일부 회원의 잘못을 대신 사과한다는 사과문과, 다른 왜곡된 글은 오해라는 해명글이 올라왔고, 일부 회원들은 카페 자정을 하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탈퇴하기까지 했다. 회원들은 오프라인에서 “나는 여성시대 카페 활동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야만 했다. 해명글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남성들은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이화여대를 욕하듯 여성 최대 커뮤니티인 여성시대 카페를 공격하고 혼쭐을 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 사건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남은 여성시대 카페 회원들은 더욱 몸을 사리게 되었다. 이 카페를 탈퇴하고 갈 만한 다른 카페가 없었기 때문에 탈퇴보다 얌전해지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각각의 문화가 다르고 대부분 회원들은 자신의 커뮤니티에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 이 카페의 회원들 또한 여전히 그 곳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다른 이들이 진실을 알아주리라 생각하며 숨죽여 활동했다.
여성시대 카페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개그맨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가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한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여자들은 멍청해서 과거의 성경험을 이야기한다”,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개보년(개 같은 보지년)”, “창녀” 등 극도의 여성비하 발언이었다(이것보다 더 심한 대화들이 있으나 쓰고 싶지 않다). 그들의 대화는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나의 언니는 그 대화를 보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 또한 어디서도 그런 대화를 들어본 적 없었다. 모든 여성 커뮤니티는 그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남성들도 당연히 같은 입장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극단에 있다는 ‘일간베스트일베’와 ‘오늘의 유머오유’는 정신적 동반자가 되어 옹달샘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의 발언은 큰 문제가 아니며 일반적인 남성들의 술자리 대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남성 커뮤니티들은 같은 입장을 내걸었다. “옹달샘의 대화는 아무 문제없다.” 나는 그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런 대화가 일반적인 남성들의 것이라고?
나는 오유에서 활동했지만 옹달샘 사건으로 오유의 실체를 보았고 탈퇴했다. 자칭 선비의 모습이라는 오유는 그 실체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선비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으니까. 몇 달 동안 여성 커뮤니티들이 옹달샘을 비난했고 여성계까지 나섰지만 정작 그들은 단 한번의 기자회견에서 “개그로 보답하겠다”는 사과의 말만 남기고 그 어떤 타격 없이 활동을 지속했다. 그 사건의 여파로 장동민은 무한도전에서 하차한다고 발표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무한도전의 정식 멤버가 아니라 멤버가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 중 한명일 뿐이었다. 장동민의 하차 발표는, 마치 서울대에 원서를 낸 어느 수험생이 서울대를 자퇴하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주제넘은 짓이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땅,
메갈리아
이처럼 여성시대 카페 사건과 옹달샘 사건은 거의 연달아 일어나면서 여초 커뮤니티를 강타했다. 온라인의 다른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분노는 사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내 머릿속에선 당연한 것이 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때 즈음 한국은 메르스 전염병으로 뒤숭숭했고 모두가 알고 있듯 메르스 갤러리에서 역사적인 미러링이 시작되었다.타임라인 참조 나는 ‘디시인사이드디씨’에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활동하던 다른 카페에서 소식을 들었다. “야, 어제 디씨 메갤에서 진짜 웃긴 일이 생겼어. 이거 봐봐.” 많은 회원들이 메갤의 미러링을 보고 즐거워했고 속이 후련해했다. 그렇게 여성으로서 해방감을 느낀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좀 오글거리지만 난 정말 그 시간이 고맙고 그립다. 그 순간이 꿈 같이, 기적같이 느껴진다.
보통 여자들은 여자 성기를 ‘소중이’나 ‘라라’, 혹은 ‘그곳’이라 불렀지만 메르스 갤러리에서는 ‘보지’라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여성 자신의 욕구를 소리쳐 말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여자들이 남자 언어를 그대로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미러링이라 했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여성들도 욕구와 욕망을 가졌고 남성을 성적으로 소비한다는 진실. 여성으로서 우리들은 분노할 줄 안다는 진실. 나는 매일 메갤을 보았고, 메갤이 디시인사이드의 억압을 피해 독립해서 만든 메갈리아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수많은 글들과 논쟁을 보면서 내 생각을 만들어갔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이것은 정말 그릇된 생각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구하면서 나만의 여성주의를 만들어나갔다. 이곳에서 나와 같은 이들은 여성중심의 생각으로 한계 없이 논의를 확장시켜 나갔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세계, ‘메갈리아의 땅’을 만들었다.
메갈리아의 6개월은 가히 폭발적으로 글들이 올라오면서 이야기의 깊이가 깊어지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여성주의의 다양한 이슈가 논의되었고 각각의 이슈에 대한 입장이 좁혀졌다. 메갈리아에서 새로 만들어진 언어와 행동이 다른 커뮤니티로 흘러갔고 남초나 여초 사이트 할 것 없이 논란이 되었다. 남초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메갈리아를 ‘메퇘지’라 조롱하고 비하하려 애썼고, 여초 커뮤니티 회원들은 일베와 다름없으니 언급을 금지하자는 논의가 계속되었다. “미러링이 너무 간 거 아니야?” 라든가 “우리는 우리 카페만의 페미니즘을 하면 되지, 굳이 메갈리아가 필요해?”라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러다 몇몇 여초사이트에서 메갈에 게시된 글이나 메갈에서 쓰는 언어들을 금지언금, 온라인 커뮤니티 규칙 중 하나하게 되었다.
주위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여성의 ‘유리바닥여성에게 부여된 보이지 않는 도덕 하한선’을 부셔나갔다. 우리는 메갈리아에서 닉네임 없이 평등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를 독려하며,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활동하였다. 회원들은 여성혐오에 대해 항의하기, 여성 해방 캠페인, 여성중심의 언어 생산, 개인 여성 차별 경험 말하기, 여성 단체 기부하기 등 다섯 가지 행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다이것은 내가 어느 행사에서 메갈의 활동을 발표하기 위해 정리한 개인적인 분류이다. 우리는 화장실에 여성해방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였고, 여성을 임신시키고 도망간 남자를 ‘싸튀충’이라 부르며 낙태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현실에 저항했다. 또한 트위터 해시태그 프로불편러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 운동, ‘개념녀’ 대회를 만들었다.타임라인 참조 여성혐오를 폭로하면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풍자와 해학을 잃지 않으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었다. 우리의 모토는 ‘남혐은 스포츠다’였다. 남자들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여혐하지 않듯이 우리도 논리와 도덕, 이유를 모두 버리고 남혐하자는 의미이다.
이렇게 남혐을 스포츠로 삼으며 온라인 공간을 누볐으나 곧 온라인의 이중잣대에 부딪혔다. ‘김치녀’는 10년 동안 써도 금지어가 되지 않았는데 ‘한남충한국남자는 벌레라는 뜻’은 금지어가 되었고, 메갈리안의 글들은 ‘클린’한 온라인 공간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삭제되었다. 메갈들은 점차 사회적, 구조적인 여성 차별에 맞서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온라인 플랫폼들의 규칙에 난 틈 사이를 찾아 한남, 한남충, 국산남 등의 언어를 계속 만들어나갔다. 경찰과 식약청이 온라인 데이트 약물 판매를 금지하지 않아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남자가 남자에게 사용한 척 글을 써서 대응했다. 그렇게 하면 그 즉시 문제의 약물 판매가 중단되곤 했다. 플랫폼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모두 달랐고, 나는 그것이 놀랍고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의 성상품화 사진작가에게 항의하는 목소리가 먹히지 않자, 그 작가를 조롱하는 사진이나 성상품화된 남자의 이미지에 그 작가 이름을 태그 거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문제의 그 작가는 사진이 검색되지 않고 존재감이 사라진다이런 방식을 온라인에서는 ‘밀어내기’라고 하는데, 워마드 시기에 활성화되었던 것 같다. 메갈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영향을 미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갔다. 온라인 서명을 하고, 여러 기관에 민원을 넣고 정치인들에게 후원을 했다. 남자들이 어떻게 영향력을 확대하는지 방법을 알아내고 우리도 똑같이 했다. 여성들은 자신의 권익을 지키는 방법을 잘 몰랐고 움직이지 않았으나 메갈은 방법을 찾았고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는 행동하는 메갈리안이 되었다. 단순히 온라인에서 과격한 언어를 쓰는 여성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메갈련이 된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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