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1장
보이텔스바흐로 가는 길
‘최소합의’로 갈등 극복하기
_이동기
‘누구도 독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숙한 시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테오도어 에셴부르크, Teodor Eschenburg 민주시민교육은 이 두 명제에서 출발한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독재자인 사람은 불행하지만 그렇다고 그 스스로 독재자가 될 이유는 없다. 독재자로 태어나는 사람이 없는 바로 그만큼 민주주의자로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민주주의 제도가 갖추어졌다고 해서 곧장 그 사회가 민주주의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의 파국적 역사 경험은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절차, 운동과 가치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민주주의자들’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의 독자적 의미와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성장하며 배운다고 모두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반대다. 이를테면, 인습적인 국가민족 중심의 역사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역사가 엘리트 특권층의 업적, 또는 민족의 광휘나 국가의 위용에 대한 서사라고 확신하며 협애하고 배타적인 역사상과 지배이데올로기로 물든 역사 인식을 갖는 경우도 잦다. 또한 사회과 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을 민주주의 제도 학습으로 환원해 학생이나 학습자들로 하여금 정치 주체로서의 자기결정이나 사회 비판, 정치 참여로부터 오히려 멀어지게 하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 그렇기에 정치 체제에 대한 학습이나 헌정 질서의 수용은 민주시민교육의 기본 내용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시민들의 정치적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 또 ‘인성교육’을 내세워 현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과 참여 역량 증진의 과제를 뒷전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민주시민교육은 특정 사회 세력 범주로서의 집단이 아니라 개별 시민을 전제하지만 그 개인들의 ‘착하게 살기’식 계몽 운동은 아니다. 우리의 현 상황이 이러하기에 민주시민교육의 방향과 원칙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공동체가 꾸준히 법률과 규정을 만들고 때로 헌법을 개정하듯이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에 대해서도 계속 토론하고 비판하며 고쳐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학습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공유·전승하며 민주적 절차와 방식을 학습·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동체의 민주주의 학습 과정은 구성원들 간의 비판과 논쟁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판과 논쟁을 통해 비로소 민주주의는 행위나 제도를 넘어 과정이자 문화가 된다. 주장과 반박, 논증과 설득, 경쟁과 쟁투, 대안과 타협, 조정과 합의, 유보와 미결 등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 과정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와 견해의 다양성을 보장하기에 헌정 질서와 사회 체제의 결함 및 문제에 대한 비판도 용인한다. 정치 체제와 규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지향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때로 권장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기결정과 선택 및 자유에 의거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 규범과 가치를 일방적으로 주입하거나 제도와 절차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 정치문화의 발전을 위해 시민의식을 고양하는 것이지만, 핵심은 특정 질서나 규범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거나 절차와 과정을 잘 인지해 정치 제도의 원활한 작동과 운영을 보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 주체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높이는 데 있다. 민주시민교육은 분석·성찰·비판·평가하는 판단력의 고양을 핵심 과제로 삼으며 정치 행동에 대한 자기결정을 지향한다. 이때 시민들을 특정 정치 진영으로 귀속시키거나 정치 집회나 사회 운동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을 민주시민교육의 궁극 목표라고 오해해서도 안 된다.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수동적인 방관자를 정치 과정에 참여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시민으로 발전시키는 것일 뿐이다. 적극적인 저항 시민의 형성을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본래 성격을 오해하는 것이다. 정치 저항이나 사회 변혁의 집단 주체로 시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정치 과정을 스스로 분석·평가하며 자율적으로 행위를 선택하고 참여방식를 결정하는 역량Kompetenz을 높이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 둘은 더러 만나지만 자주 어긋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민주시민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 정치 과정에 대한 이론적 논의 외에도 교육학적 논의가 따로 필요하다. 학습자와 교육자의 역할과 지위, 양자의 관계 및 그것을 둘러싼 정치문화의 전제, 토론문화의 조건에 대해 논의가 더 필요하다. 교육 내용을 둘러싸고 차이가 발생하면 교육 방법과 원칙에 대한 입장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으로 교육 방법에 대한 입장 차이가 조정되고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교육 내용을 둘러싼 입장 차이를 조정하고 해결할 방책이 마련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교육 방법을 둘러싼 ‘합의’ 문제는 민주시민교육 논의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한다.
교육 갈등의 조정 규칙과 합의문화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눈을 독일로 이끌었다. 서독은 1970년대 후반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둘러싸고 발생한 이데올로기 갈등과 정치 대결을 극복하고 점차 합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바로, 1976년 11월의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가 그것이다. 1970년대 초 민주사회주의를 강령으로 가진 독일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 약칭 사민당과 보수주의적 체제 안정을 지향하는 기독민주연합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CDU, 약칭 기민련의 정치 대결을 배경으로 서독의 진보와 보수 양 세력은 중등학교 ‘사회과’ 교육과 학교 밖 시민교육의 내용을 둘러싸고 격렬한 주도권 다툼을 전개했다. 얼마 뒤 그것에 질린 일부 교육학자들과 시민교육 종사자들이 갈등을 극복할 합의 모델을 발전시켰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통해 독일 민주시민교육은 불필요한 정치 갈등을 줄이고 실제적인 문제에 집중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의의는 독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학교 ‘사회과’ 과목과 민주시민교육을 둘러싸고 파국적 갈등이 지속되고 합의의 기반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성과다.
이 장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그 의미와 의의를 살피는 것에 집중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독일 정치교육의 역사를 개관하고 1970년대 교육 갈등의 정치적 배경을 덧붙인다. 다음 절은 보이텔스바흐 합의 과정과 의의를 소상히 다룬다. 독일에서는 보이텔스바흐 합의 내용을 둘러싸고 정치교육의 이론적 쟁점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이 글에서는 그것을 제한적으로만 다룬다. 마지막 절은 한국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의의를 살피는 것으로 맺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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