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꿈이 한데 모여
─ 식구와 동무들
가장 듣기 좋은 말
어머니가 하는 말 가운데
가장 듣기 좋은 말.
하루 몇 번씩 들어도
듣고 또 들어도
가장 듣기 좋은 말.
“인교야,
밥 무로 온나.”
날마다 먹는 밥인데
질리지도 않고.
이 시에서 “인교야, / 밥 무로 온나.”는 말이 참 정겹게 들린다. ‘밥 먹으러 오너라’ 이렇게 썼다면 정겹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산골 할머니들이 하시는 말씀은 언제 들어도 구수하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어울려 해 질 무렵까지 공을 찼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마다 할머니가 운동장으로 찾아와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 재훈이 오데 있노? 밥 묵을 때가 됐는데 뭐 하고 있노. 재훈아, 밥 무로 온나.”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 할머니가 찾으러 오면 숨기도 했다. 그때는 철이 없어 그랬구나 싶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오늘, 누가 내게 ‘하루 몇 번씩 들어도 / 듣고 또 들어도 / 가장 듣기 좋은 말’이 무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재훈아, 밥 무로 온나.”
_ 고2 강재훈
밥 문나
외할머니는 밥만 먹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다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 밥이 최고였다.
어릴 때부터 쉰 살이 넘도록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는 외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밤새도록 똑같은 잠꼬대를 하셨다.
“밥 문나?”
외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바쁘신지
해가 뜨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
내 손을 잡고 딱 한마디 하셨다.
“밥 문나?”
요즘 우리 친구들은 밥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 밥 대신 수입 밀로 만든 라면, 과자, 빵, 피자, 자장면 따위를 많이 먹는다. 그리고 육식도 너무 좋아한다. 우리 할머니 살아 계실 적에 나를 볼 때마다 ‘밥 문나?’ 하고 물어 보셨다. 안 먹어도 먹었다고 해야만 좋아하셨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며,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밥을 소중하게 여기셨다. 그렇게 밥을 소중하게 여기시던 할머니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할아버지가 자꾸 꿈에 나타난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아무도 “밥 문나?”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할머니 돌아가시고부터 “밥 문나?”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사무치게 그립다.
_고2 김민호
첫 월급
이 나라 저 나라를
밥 먹듯이 돌아다니던 큰아들이
태어나서 32년 만에 일자리 얻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골방에서 거리에서
헤매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는데……
우리 아들이 일자리를 얻다니!
일 나간지
한 달이 지나자마자 전화가 왔습니다
첫 월급 받으면
여태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키워 준 부모한테
속옷 선물해야 한다며
아내는 속옷 대신 중고 스마트폰을
나는 속옷 한 벌을
택배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아들 얼굴 한 번 보고 싶지만
서울에서 산골까지 오려면 차비 들 테니
택배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던 택배가 눈바람을 뚫고
서울에서 산골 마을까지 왔습니다
택배 기사님이 아들보다 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만일 이 시에 나오는 부모라면 어찌했을까? 아들이 32년 만에 취직을 하여 첫 월급을 받아 선물을 하겠다는데 중고 스마트폰을 택배로 보내 달라고 했을까? 새 것도 아닌 중고를? 나는 이 시 가운데 ‘아들 얼굴 한 번 보고 싶지만 / 서울에서 산골까지 오려면 차비 들 테니 / 택배로 보내 달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왠지 가슴이 시렸다. 32년 만에 아들이 취직을 했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얼마나 만나고 싶을까? 그런데도 서울에서 산골까지 오려면 차비 들 테니 오지 말라고 한다. 오라는 말보다 더 가슴에 사무치는 말이다.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내복을 선물로 드려야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내복을 잘 입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는 첫 월급을 받으면(그날이 언제쯤일지 모르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과 용돈을 두둑하게 드리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부모님께 입버릇처럼 말씀 드렸듯이, 내가 커서 돈 많이 벌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아담한 집 한 채 지어 드리고 싶다. 그 꿈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_고3 윤심정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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