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최저임금 만 원,
공감과 연대의 약속
“일하다 보면 배가 자주 고팠다. 어느 날 상을 치우면서 손님이 남긴 튀김이나 초밥을 몰래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 뒤론 서빙하면서 자연스레 손님이 과여 초밥을 남기고 갈 것인가 확인하게 되었다.”
_‘알바들의 1만 시간 단식’ 참가자 A씨
“저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합니다. 알바 노동자에게는 식대가 지급되지 않습니다. 폐기(유통기한이 지나 상품가치가 떨어진 음식)만을 먹으며 9시간 동안 알바를 합니다. 아침과 점심은 잠을 자느라 거릅니다. 하루에 두 끼의 단식이 저절로 됩니다. 야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까지, 폐기를 먹지 않아도 되는 날까지, 함께합시다”
_편의점 알바노동자 B씨
“저는 좋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지만, 9급 공무원을 꿈꿔요. 칼퇴근에 주말에 확실히 쉴 수 있잖아요. 만약 결혼해서 출산을 하면 출산휴가랑 육아휴직도 안정적으로 쓸 수 있고요. 대기업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여유만 있다면 탈조선도 하고 싶고……. 지금은 여행을 가기 위해 과외랑 알바를 하고 있어요.”
_패스트푸드 알바노동자 C씨
대조적인 모습이지만 세상은 이들을 ‘청년’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어서 생각한다. 누군가는 A와 B를 보면서 불쌍한 청년이라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청년 시절을 떠올리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거야”라며 읊조릴지 모른다. C를 보면서는 여행이나 가려고 알바하는 건데 뭘 어쩌라는 거냐며 시큰둥하게 여길 수도,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열정 없는 청년이라며 한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가진 것에 비해 너무 사치스러운 요즘 청년들의 정신 상태를 꼬집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물질적 조건과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욕구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학력 수준이 향상했고, 인터넷과 사회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즐기며, 스마트폰이 없으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학연수와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가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해외의 각종 공연과 미술관 소식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다. 일주일에 6일을 학식을 먹더라도 하루쯤은 좋은 식당과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가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바야흐로 밥만 먹고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소비 성향과 문화 소비 욕구를 떠받치는 중요한 요소인 임금은 너무 낮다. 저임금은 둘째 치고 취업의 가능성마저 희박해지고 있다. 비정규직이 보편화되었고, 대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정리해고의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취업 준비 기간 동안 필요한 비용, 예컨대 대학 등록금과 학원비, 집세와 생활비를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부모라 하더라도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몰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상황이니 당장의 생존이나 소비를 위해 빚을 지거나 저임금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소비를 줄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소비도 하지 않으면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소소한 ‘행복’도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는 상품을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포함된다. 일만 하면서 평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여가를 즐기며 살 것인가. 대기업에 입사한 많은 청년들이 중간에 회사를 때려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온갖 인격 모독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일만 하는 기계로 살아가던 시대는 끝났다. 직장에 헌신하면서 인생을 바치면 분명한 보상이 있던 시대가 무너지면서 미래를 위해 젊음을 희생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가 확보해야 할 두 가지 조건인 시간과 돈은,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두 마리 다 잡아야 하는 우리의 권리다.
생존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열쇠, 여기에 최저임금 만 원이 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투자하면 209만 원을 벌 수 있는 사회, 아침 9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고, 그렇게 주 5일을 일하면 월 156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최저임금 만 원의 시대다. 꼭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행복하고 여유 있는 삶이 아니라, 알바를 하면서 남은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꿈꿔야 한다. 이제 그 꿈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매출액 뒤에 있는 사람들
최저임금을 만 원으로 올리자고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경제는 아마도 기업, 그중에서도 삼성, LG, 현대 같은 대기업을 뜻할 것이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모 기업의 광고 문안이 당당하게 통용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기업의 운명과 나라의 운명은 같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쩔 때는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 아니라 기업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기업의 자리에 국민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뿐더러 국민의 자리에 노동자가 들어가기는 더더욱 어렵다. “국민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에는 수긍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어쩐지 “노동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은 어색하고 거부감마저 생긴다.
대기업에 호의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 해고를 먼저 생각하지 부자들과 대기업을 구조조정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그 자리에서 없어져도 괜찮지만 기업이 사라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위태로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당신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 경제를 망치는 일이라면,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아이폰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이폰을 보면 무슨 생각을 떠오르는가. 미국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상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를 떠올릴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은 미국을 대표하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폰이 실제로 생산되는 곳은 미국이 아니다. 아이폰은 중국의 폭스콘이라는 곳에서 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생산되는데, 이곳은 죽음의 공장이라 불린다. 2010년 폭스콘에서 일하는 노동자 십여 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루 12~14시간씩 휴일 없이 10~15일 연속 노동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이곳. BBC에서 잠입 취재한 영상을 보면 노동자들이 졸면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CCTV와 억압적인 분위기, 과도한 노동 등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다. 우리의 1970년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애플이 수익의 40을 가져가면 폭스콘은 1을 가져가는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노동자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크게 고통받는다. 찬란한 경제 성장의 뒤에는 이들의 고통이 숨어 있다.
이번에는 2014년의 캄보디아로 가볼까? 노동자들의 파업에 군대가 개입해서 그들에게 총을 쏘는 일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 캄보디아는 섬유업계의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았다. 그 이유는 값싼 노동력. 곳곳에서 투자설명회가 열리면서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그랬던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당시 캄보디아의 월 최저임금은 80달러, 우리 돈으로 9만 원가량이었다. 이 돈이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이다. 연장이나 특근을 하면 시간당 500원을 더 받는다. 캄보디아에는 911부대라는 군대가 있는데, 이 군사 기지 내에 약진통상이라는 한국 업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약진통상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2배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여기에 군인들이 개입, 노동자들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적으로 파업을 진압하는 일이 벌어졌다. 911부대의 사령관은 공공연히 약진통상에 30퍼센트의 지분이 있다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다음 날 강경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시위 현장 주변 건물의 처마 위에 올라간 저격수들이 노동자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레〉 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당시 캄보디아 한국대사가 캄보디아 여당 대표에게 이런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정체불명의 아웃사이더들의 불법 행동으로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자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우려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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